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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디에서나 대통령 선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국가적 대축제를 앞둔 상황에서, 그 축제에 참여해야 할 국민들이 자유롭게 그것에 관심을 보이고 서로 토론 형식의 이야기를 활발하게 나눈다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남의 눈치를 보듯 애써 관심을 감추며, 정치 얘기가 마치 시궁창의 벌레라도 되는 양 극력 기피하며 사는 것은 민주 시민으로서 옳은 처사가 아니다. 본디 정치가 혐오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정치 또는 정치인 모두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정치에 대한 혐오와 왜곡의 숲을 더욱 깊고 울울창창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증과 냉소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정치 이야기가 자칫 이웃과 이웃 사이에 반목과 갈등만을 조장하기 쉬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겠다는 식의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일 것이다.

지난 15일 저녁에는 고장 문학회의 송년 모임에 참석했다. 겨우 여덟 명이 참석한 그야말로 조촐한 모임이었다.

때가 때인지라 또 자연스럽게 대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유력 후보들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다보니 또다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거의 자연발생적인 사항일 터였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이 된다고 해서 그의 병역비리 의혹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만약 그가 당선이 된다면, 검찰 수사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 병역비리 의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거라는 얘기였다.

이회창 후보의 입에는 '법과 원칙'이라는 말이 거의 달려 있다시피 하는데, 그가 목청껏 법과 원칙을 외칠 때마다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떠오르곤 한다는 말도 나왔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이 되면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리라는 논법 앞에서 나는 괜히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었다. 병역 의무라는 일생 일대의 과제를 맞게 된 젊은이들이 만일 병역거부 운동이라도 벌이게 된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고, 또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들이 파생하면서 국가 에너지 낭비도 적지 않게 발생할 터이니, 생각하면 은근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잠자코 있던 중년의 시인 한 분이 입을 열었다. 오십 줄에 들어선 시점에서 문학회 참여 활동을 시작했고, 이태 전쯤에 한 문예지의 신인상 관문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증을 표시해 온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은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시비 자체에 대해서 혐오를 느낀다고 했다. 혐오감이 너무 커서 이제는 신물이 날 정도라고 했다.

그의 논법은 이러했다.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시비는 이미 5년 전에도 있었던 일이 아니냐. 검찰 수사도 다 끝났는데, 그렇게 계속 물고 늘어져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톡 까놓고 말해서 자식을 군대 안 보낸 사람이 이회창 한 사람뿐이냐. 웬만큼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이라면 군대 빠지는 건 누구나 시도를 하는 일이고, 우리 주변에도 재주를 부려서 군대 안 간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굳이 그걸 따지면 사회적으로 무슨 득이 있느냐. 사회공동체에 위화감만 조성하는 짓이 아니냐.

그러자 그 시인에게 다른 문인들의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이 집중되었다. 그럼, 부정한 방법으로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용인해 주어야만 사회공동체에 위화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냐. 우리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옳은 일이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우리 현실이 그럴수록 옳고 그름을 더욱 명확히 분별하고자 하는 노력이 문인에게는 더 필요한 것 아니냐.

이회창씨가 대통령 후보만 아니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인데, 그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문제가 되었고, 지금도 계속 문제의 불씨로 남아 있는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았느냐.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어야 하고 아무런 법적 도덕적 문제가 없어야만 나라를 잘 이끌 수 있다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느냐.

당신처럼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시비 자체가 신물이 날 정도로 혐오스럽다고 해서,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그 시비를 그만 합시다 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겠느냐. 해방 이후 50년이 지나도록 친일파 청산을 못했는데, 50년이 지나도록 친일파 어쩌고 하는 것은 신물이 날 정도로 지겨우니, 이제 우리 친일파 단죄와 논쟁을 그만 합시다 한다고 해서 친일파 문제가 일시에 말끔히 사라지겠느냐.

나는 재주껏 병역 의무를 면제받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잘나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행복해지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그런 현실과 타협하듯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를 그 시인에게 물었다. 그 신물나는 시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의롭게 되겠는지도 물었다.

시비 자체에 대한 혐오감보다는 무릇 의혹에 대한 문제 제기가 사회와 역사를 조금이라도 발전시켜 갈 수 있는 원동력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인의 이해나 동의를 구하는 일은 물론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으면서도 나는 열렬히 그에게 뭔가를 설명했고, 그러자니 말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목울대가 아렸다.

변변찮게나마 작가라는 명색을 걸치고 고향 땅에서 정신문화운동을 한다고 하는 나 자신이 다시금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재미있다 싶으면서도 괜히 뭔가가 아득해지고 암담해지는 느낌 때문에 내 가슴속에서 또 한차례 '문학 무용론'이 슬며시 고개를 쳐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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