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2월 18일 조선일보 칼럼
12월 18일 조선일보 칼럼 ⓒ 조선일보 PDF
차장님께서 오늘자 <조선일보> 동서남북란에 쓰셨던 '시위 현장의 어린이들'이라는 칼럼을 보고 몇 자 저의 의견을 적어보고자 편지를 씁니다. 변명으로 들으셔도 좋겠지만 저와 아이들의 경험, 그리고 같이 느낀 바를 중심으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코앞의 대선과 국제문제에 여로 모로 바쁘신 줄 알고 있사오나 단 한 번이라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이 글 읽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지난 주 범대위가 밝혔던 토요일 시위계획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를 밝혔다시피 80년대를 대학에서 보내며 광주의 아픔과 군사독재의 질곡을 통과한 세대이지요. 온 몸으로 고난의 시대와 불화하며 투쟁한 선후배와 친구들을 떠올리면 부끄러울 뿐이지만요. 지금의 나에게 미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아니 그것보다 앞서 그들이 행하고 있는 이 땅에서의 오만함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반전반핵가를 부르며 "양키고홈"이라는 가사에 가벼운 전율을 느끼던 그 80년대도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정리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광주의 만행 뒤에 미국의 조종이 아니 최소한 묵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또한 이 땅에 핵무기를 배치한 미국이 있다는 문건을 돌려읽으며 분노했던 기억도 새삼스러웠습니다.

잠깐 처리할 잔무가 있어 출근한 토요일 아침에 회사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태극기 걸었어'라고 묻는 제 질문에 아내는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오늘이 범대위가 정한 국민행동의 날이어서 태극기를 걸었으면 한다는 제 말에 아내는 그럼 걸어야지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한 김에 여기 저기 관련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제가 살고 있는 수지에서 출발하는 집회 참가 안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슴 속에 출렁이는 뜨거움이 순간 복받쳐 올랐습니다. 광화문까지는 너무 멀어 내가 할 일은 태극기를 거는 일 정도로 다 했다고 느끼는 저에게 밀려온 자책감이었습니다. 서둘러 일을 정리하고 집으로 가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겠노라고. 혼자 가겠냐고 아내가 물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제가 양 차장님이 하셨던 고민과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이.

"이 아이들이 정말 무엇을 알까. 일각의(일각이라고 하셨지요?) 주장처럼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이, 궤도차량을 몰던 미군 병사들이 저지른 의도적 살인(殺人)인지, 아니면 단순한 교통사고인지에 대한 판단이 있을까"하셨지요?

제가 양 차장님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앞의 단 한 문장뿐입니다. 이 아이들이 정말 무엇을 알까라는 부분요. 모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알고 있었습니다. 일곱 살 딸애도, 열한 살 아들아이도 또 그날 저희 집에 놀러 왔던 아들의 친구도 효순이 미선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앎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습니다만 제가 제 의사를 밝혔을 때 친구와 더 놀고 싶어하던 일곱 살 딸애도 컴퓨터 게임이 허락된 토요일을 다른 일로 소요해야 한다고 언짢아하던 큰 아이도 선뜻 동참의 의사를 밝혀주었습니다.

양 차장님이 말씀하셨던 일각의 의도적 살인이라는 판단까지는 더 많은 조사가 선행이 되어야 밝혀질 문제이니깐 거기까지 동의한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모든 가능성에 대하여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 위하여 SOFA가 개정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일각이라고 하셨는데요. 혹시 그 일각이라는 것이 우리 국민 70% 정도가 믿는 사실을 혹시 귀사만 믿지 않으시려하는 건 아닌지요.

14일 시청앞 광장에서 집회를 가진 추모행렬이 광화문 사거리를 가득 메운 채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10만 여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14일 시청앞 광장에서 집회를 가진 추모행렬이 광화문 사거리를 가득 메운 채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10만 여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단순한 교통사고라는 미군 법정의 선고를 진정으로 동의하시는 것인지요. 일곱 살 아이도 알고 있는 사실을 다만 철없는 아이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치부하신다면 그 아이들에게 전쟁을 통해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세계전략부터 한반도에 끼친 미국의 역사적 과오와 역할에 대하여 설명하고 주한 미주둔군이 어떻게 이 땅에 왔었는지 다 이야기해주고 이해를 얻는다고 한들 그 아이의 판단이 양차장님의 생각대로 제대로 된 이해라고 판단하시는 것인지요.

광화문까지 가는 길은 가깝지 않았습니다. 오리역에 차를 주차하고 전철을 탔습니다. 다시 복정에서 갈아타고 잠실에서야 2호선을 탈 수 있었습니다. 시청역에 도착한 시간이 3시 반 남짓, 큰 아이한테 놀러 왔던 아이의 친구가 자신의 부모님께 참가를 허락 받고 동행한지라 다른 참가자나 다른 일행을 기다린다거나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여 다른 참가자들과 따로 움직이기로 하였습니다.

도착하니 광화문에는 벌써 집회가 시작되어 막 일부 순서가 끝나고 있었습니다. 신문지를 준비하지 못한 제 불찰을 뉘우치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아이들을 앉히려고 할 때 앞에 앉아 있던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깔고 앉았던 신문지를 덜어 아이들과 저에게 주었습니다. 전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느꼈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가지는 연대의식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추위가 한풀 꺾여 따뜻한 기온이라고는 합니다만 아직은 겨울 날씨인지라 아스팔트는 차가웠지만 서로가 각자보다는 나누어 줄 수 있는 무엇을 찾아내는 이 연대야말로 참여하지 않은 이들로서는 도저히 느끼지 못하는 뜨거움이기도 합니다.

양 차장님 말씀대로 SOFA의 잣귀가 우리나라만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 해도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모든 헤게모니를 그들이 쥐고 전권을 행사하는지 고민해보셨는지요. 교통사고 사망사건의 과실과 미국의 사법제도가 우리와 다른 점들에 대해 어른들이 따져보고 그런 어른들의 말이 통하는 사회가 애초에 아니라고 하셨는데 혹시 그런 것에 대해 자책해 보시기는 하셨는지요.

문제는 교통사고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사법제도 관례에 따른다고 해도 과연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으면 탱크라도 구속시켜달라는 우리 국민의 요구가 다만 악에 바친 비명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 것인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인지, 그간에 수없이 있어왔던 강간 살인 등의 강력 범죄부터 대민 교통사고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판단이 전부일 수밖에 없는 잘못된 관행을 법을 개정시켜 없애고자하는 시위가 그렇게 반미감정의 볼모로 아이들을 삼는 것인지 고민해보셨는지요.

아이들이 유일하게 아는 노래인 아리랑을 따라 부를 때 반짝이는 눈망울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는 노래가 아닐 때는 집회 팸플릿을 흔들며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촛불을 켜고 촛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나머지 한 손을 감싸는 아이들의 가슴에 밝혀진 또 다른 촛불 하나를 발견했다면 감상주의자 아빠의 지나친 착각일는지요.

아이의 균형 잡힌 세계관을 걱정해 주시기도 하셨군요. 기회주의적인 균형보다는 아이들이 무엇이 옳고 그름을 알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진정으로 싸울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이것 또한 80년대를 잘못 통과한 아비의 속죄의식일까요?

지난 14일 시청앞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가한 군중들이 광화문 네거리로 이동하면서 도중에 <조선일보>를 향해 왜곡보도를 중단하라고 외치고는 항의의 표시로 수 백개의 계란을 <조선일보> 선전광고판에 던졌다.
지난 14일 시청앞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가한 군중들이 광화문 네거리로 이동하면서 도중에 <조선일보>를 향해 왜곡보도를 중단하라고 외치고는 항의의 표시로 수 백개의 계란을 <조선일보> 선전광고판에 던졌다. ⓒ 조아세
귀사를 향해 던져진 계란 속에 아이들의 계란도 보였다고 하셨군요. 전 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거기에 참가한 부모들은 아이들 손에 계란을 쥐어주었다고 하더라도 왜 저기다 계란을 던져야하는지 아이들에게 알려주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계란을 던진 수많은 사람들은 귀사가 진정으로 참회하셔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아이들도 그렇게 믿게 될 것입니다.

지난 7일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시위에서 한 시민이 어린 딸을 목에 태우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7일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시위에서 한 시민이 어린 딸을 목에 태우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작은 아이를 무등 태웠습니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대열에 파묻혀 작은 키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이를 위하여 무등을 태웠습니다. 어깨와 허리가 아파왔지만 이런 것이라 믿었습니다.

자 제대로 보아라. 저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행진하며 또 무엇을 외치는지. 웃으며 옆의 대오에 있던 학생들이 무등을 탄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뭐가 보이니 꼬마야? 잘 안보여요. 누가 우리를 막고 있는지요.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싸워오셨다면 전 제 아이들에게 잘못된 세상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싸울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잘 봐 두어라 아들아 딸아. 아빠가 설사 잘못된 세상을 다 바꾸지 못하고 물려주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넌 너의 아이들과 함께 또 다시 싸워나가야 할 것이니.

양 차장님! 제발 다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마시고 바꾸어서 생각을 해볼 줄도 알았으면 합니다. 혈압이 높으신 어머님을 걱정해 신문을 돌리던 제 나이도 생각해보니 제 아들 또래가 아니었을까 기억해냅니다.

우리 국민의 일각인 70%가 믿고 또 일곱 살 제 아이도 불쌍한 언니들의 죽음을 원통해 하는데 왜 우리나라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한다던 귀하와 귀사가 왜 모르고 있는지 설명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