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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당내 후보경선에서부터 단일화 그리고 정몽준의 ‘지지철회’선언까지 ‘대통령 노무현’이 탄생하는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엎치락뒤치락 대선경쟁에 열을 올렸던 것은 대선후보들만이 아니었다.

똑같이 새로운 정치를 꿈꿨지만 서로 다른 정치참여 방향을 모색했던 동시대 젊은이들 중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과 민주노동당 당원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남 모를 불화(?)까지 생길 ‘뻔’했다.

만약, 노무현 후보가 권영길 후보가 얻은 득표수만큼의 차이로 낙선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12월 19일. 기자는 민주노동당 당원과 노사모 회원을 찾아 신촌과 광화문을 오가며 ‘논쟁이 있는 인터뷰’에 나섰다.

[인터뷰 1] 1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망원초등학교 투표장

"권영길 후보가 당원들에게 보낸 음성메시지를 듣고 잠이 안오더라고요. 게다가 새벽 5시 반까지 투표장에 와야하니까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늦으면 어쩌나 싶어서..."

서울 마포구 망원초등학교에서 만난 민주노동당원 이정희(32)씨는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선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다스리느라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 5시에 이곳으로 와서 줄곧 ‘민노당 투표참관인’ 활동을 하느라 고단하기도 했을 것이다.

▲ 민노당 투표참관위원인 이정희 기자
ⓒ 오용석
- 오늘 선거결과가 어떨 것 같나?
"당에서는 최소 5%로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100만표를 최소한으로 생각한다."

- 정몽준씨가 ‘지지철회’를 선언한 후 노후보가 기자회견에서 민노당의 도움을 요구했는데?
“다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다. 이미 재벌과 손잡았고 애초 제시했던 정책을 자꾸 번복했다. 표를 얻기위해 시시때때로 정책을 바꾸는 것은 기존 보수정당이 해왔던 그대로다.”

- 이번 대선결과가 어떻게 나왔으면 하는가?
"권 후보가 최대한 많은 득표를 했으면 한다. 5% 아니 10%이상 득표했으면 좋겠다. 물론 당선은 상대적으로 나은 노무현 후보가 했으면 한다."

- 만약, 권후보가 얻은 득표수 만큼의 차이로 노무현 후보가 낙선했다고 가정할 때 민노당에 비난이 쏟아질 우려는 없는가?
"비난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난은 비난일 뿐, 노무현의 민주당과 우리당은 그 자체로 다르다. 물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 노사모와 같은 정치 ‘서포터스(supporters)’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나?
"새로운 정치를 꿈꾸고 사회개혁에 대한 열망과 소속감으로 똘똘 뭉친 것은 민노당 당원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노사모에는 '대안'이 없다. 노무현이 당선되든 낙선되든 대선이후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대안이 없다는 것은 '정치적 비젼'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노사모는 노무현이라는 사람하나에 대한 지지모임일 뿐이다. 정몽준과의 결합에서 보듯이 노무현은 재벌과 한편이 됐다. 민주당 또한 기존 보수정당과 다를 바 없다. 노사모가 그 틈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 노사모에서는 대선이후 국정감시 활동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것도 대안이 아니라고 보는가?
“정치에는 정치로 참여해야한다. 하지만 노사모가 벌이는 선거운동은 결코 정치가 아니다. 감시활동은 시민단체도 할 수 있다."

- 노사모와 민노당당원들의 정치운동에 차이가 있다면?
“노사모를 움직이는 것은 노무현이다. 권영길을 움직이는 것은 민노당 당원들이다. 만약 노무현이 민노당 대표로 출마했다면 당선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재벌정당과 손잡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원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인터뷰 내내 전화를 받느라 바쁜 이정희 기자
ⓒ 오용석
- 수동적 정치참여와 능동적 정치참여의 차이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노사모는 관전자일 뿐이다. 관전자가 아닌 ‘플레이어(player)’로서 정치판에 목소리를 내야한다.”

- 개인적으로 노사모를 어떻게 보는가?
“팬클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일시적인 모임으로 생각한다. 노무현 당선여부를 떠나 지난 월드컵이후 국민들이 공허감에 빠진 현상과 같이 노사모도 당분간 그럴 것이라고 본다. 바로 그 점에서 당원으로서 정치판에 직접적으로 활동하는 것과 다르다.”

- 반드시 당이 아닌 '동호회'식 활동 또한 앞으로 정치참여 방식으로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부인하지는 않는다. 우리당도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는 좀더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선거운동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노사모와 같이 개인 한사람에 대한 지나친 의존방식은 안된다.”

- 대선이후 민노당의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번 대선과정에서 한총련과 국민연합 등 많은 조직들이 합류했다. 정치적 견해가 다양해진 조직의 질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만 다음 총선에서 반드시 1석 이상 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이번 대선에서 제시한 공약중 국민에게 가장 호소력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부유세신설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꿈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민노당은 이번 대선에서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을 경험했고 그 방법을 알게 됐다.”

이정희씨는 대안언론단체에서 현직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노사모에 대한 견해도 민노당에 대한 확신도 나름대로 논리적이었다. 물론 논리적이라고 해서 그의 주장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견해가 민노당 당원들이 바라보는 노사모에 대한 시각과 문제점에 대해서 명확히 짚어준 것만은 분명했다.

[인터뷰 2] 19일 오후 6시 50분, 서울 광화문 사거리

저녁 6시 50분. 광화문역에 도착한 열차의 문이 열리는 순간 노란색 풍선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노무현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이길 것’이라는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노사모를 비롯한 노후보 지지자들이 하나둘 광화문 사거리로 모여들고 있었다. '1219 네티즌 정치혁명’의 주역들이 광화문 사거리를 접수한 것이다.

▲ 1219 정치혁명의 거리 광화문
ⓒ 오용석
“이겼다! 이겼다!” 광화문 사거리 동아일보 사옥 옆에 내걸리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며 노사모 동작구 '짱'인 양영숙(30. 노사모 ID : 여왕벌)씨가 목놓아 외쳐댔다. 비록 출구조사 결과에서 이겼다고는 하지만 득표율이 오차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에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사모를 위해 3개월전부터 생업(학원강사)까지 포기하고 뛰어들었다던 양영숙씨는 이미 기쁨 그 자체였다.

▲ "노무현이 이긴다. 너무 좋아~."
ⓒ 오용석
- 정후보가 돌연 ‘지지철회’를 했는데?
“나도 어제(18일) 명동유세장에 있었다. 분위기는 좋았다. 말 몇마디에 기분상했다고 하는데 뒤에 무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노후보가 큰 짐하나를 덜었다고 볼 수도 있다.”

- ‘지지철회’선언 후 노후보가 기자회견에서 민노당의 도움을 요구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이번에 노후보가 당선돼서 개혁적 분위기를 만들면 진보세력이 (정치권에)진출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 TV토론 때 권후보가 노후보를 공격한 것에 대해 노사모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과거로 가느냐 한발 앞서 나가느냐의 시점이다. 우리(노사모)는 진보세력이 그걸 이해해주기 바랬다. 하지만 ‘서울이전’ 문제로 권후보가 자꾸 공격하는데 정말 실망했다.”

- 노사모의 성격을 일종의 정치 '서포터스’라고 보아도 되는가?
“그렇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팬클럽’이라고 불러주었으면 한다.”

- 노사모가 서포터스 모임이라고 했는데 ‘붉은악마’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대상이 다르다. 스포츠는 즐기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정치는 우리의 일상이다. 노사모는 일상에서 서민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줬다. ‘희망돼지’가 그 예다.”

- 노사모가 노후보 당선에 얼마나 기여했다고 보는가?
“그건 밖에서 봐주기 나름이다.”

- 노사모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3개월전 국민경선을 지켜보고 나서다. 힘없고 돈없는 사람도 심지만 곧으면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동받았다.”

▲ 인터뷰 내내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여왕벌'
ⓒ 오용석
- 그렇다면 민노당원들처럼 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참여하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
“여기(노사모) 사람들은 우리나라 당문화를 그 자체로 싫어한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마찬가지다.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서인지 당원으로 활동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부담스럽다.”

- 이번 대선이후 노사모가 해체된다고 하던데?
“노후보가 당선되면 아마도 해체할 것이다. (국정운영하는데)짐이되지 않기 위해서다. 당선 후에도 계속 노사모가 활동하게 되면 자칫 정치적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해체되면 어떻게 되는가?
“일단 지역모임을 해체하고 축구나 인라인스케이트 등 취미생활 동호회로 분산해서 유지할 것이다.”

-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다시 모여 활동하겠다는 뜻인가?
“그때도 노무현같은 인물이 나온다면 다시 모일 것이다. 총선같은 경우에는 특정후보 낙선운동을 할 수도 있고 ‘추미애’같은 의원들 팬클럽을 만드는 활동이 있을 수도 있다.”

- 노무현같은 인물이란 어떤 인물을 말하는가?
“쉬운 길을 포기하고 서민을 위해서 어려운 길을 택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소신과 용기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앞으로 그런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 민노당 당원들이 정책이나 정견에 중심을 두고 활동한다면 노사모는 인물중심이다. 이유가 있는가?
“괜찮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리고 민주당에도 여러 계파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런 민주당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 노무현은 지지하지만 민주당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믿음에만 투자한 것이다. 만약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이 제대로 안하고 민노당이 제대로 하면 난 민노당을 지지할 것이다.”

- 대선이 박빙의 승부로 흐를 때 민노당 지지자들과 있었던 마찰(?)은 서로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보는가?
“반드시 그런거 만은 아니다. 민노당 지지자들이 판단을 잘못했다고 본다. 지금은 한발짝 내딛는게 중요한 때다.”

- 만약, 민노당이 얻은 득표수 차이로 노후보가 낙선됐다면?
“솔직히 원망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민노당의 욕심이 역사의 후퇴하게 만든 결과였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권후보를 지지하는 친구들에게 노후보를 도와달라고 권유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노후보에 대해 오해할까봐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양영숙씨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맺는다.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양영숙씨가 바라던 대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민노당 당원인 이정희씨도 원하던 100만표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3.9%라는 득표율에 어느정도는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지금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것도, 민노당이 100만표에 가깝게 득표한 것도 이들 사이의 대립을 풀어줄 수는 없다고 본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그들 사이에 벌어진 틈이 단순한 ‘오해’라고 보기엔 너무 넓어 보였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에게 인터뷰를 허락한 이정희, 양영숙씨 개인의 의사일 뿐 전체 민노당원과 노사모 회원의 의사인 것은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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