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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 나갔다가 돌아가는 길, 완도 수협 공판장에 들러 물고기 몇 마리를 삽니다. 완도만 해도 대처라, 물산이 풍부합니다. 감생이, 참돔, 금조구, 가재미, 넓치, 농어, 장어, 없는 물고기가 없습니다.

섬으로 돌아갈 사람이 물고기를 사간다는 것이 일견 우스워 보이지만, 실상 웃을 일은 아닙니다. 보길도만 해도 완도에 비해서는 작은 섬이라 물고기들이 흔한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보길도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포구에 나가면 늘 고깃배에서 막 잡아온 횟감을 싸게 살 수 있으려니 기대를 하고 왔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갑니다.

외지인들은 고깃배가 들어오는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울 뿐더러, 물때에 맞춰 나간다 해도 물고기를 사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고깃배들이 잡아오는 물고기가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물고기를 잡는 고깃배들도 몇 척 되지 않으니 섬사람들도 물고기를 사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주민들이 수입이 불안정한 물고기 잡이보다는 안정적인 해조류 양식을 더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완도는 그래도 큰 섬이라 고깃배들이 많습니다. 수협 공판장에서 사면 값도 많이 싼 편입니다. 횟감으로 쓸 살아 있는 감성돔 몇 마리를 피를 빼서 아이스박스에 담고, 보길도 행 여객선에 오릅니다.

내가 낚시를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낚시를 해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지 않는 이상 좋은 횟감을 낚기는 어려워 벗들이 찾아올 때면 더러 물고기들을 사다가 직접 회를 뜹니다. 몇 년 사이에 회 뜨는 솜씨가 제법 늘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주 그 길로 나가라고 농반 진반으로 떠밀지만, 언감생심이지요.

오늘 저녁에는 기막힌 맛의 물고기 회를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런데 이 일을 어쩌지요. 생각만으로도 입에서 녹아 넘어가던 물고기 살 한 점이 목에 탁 걸리고 맙니다.
물고기.

말이 이보다 더 잔인해질 수 있을까요.
말로써 생살을 포 뜨는 말.

고기란 온갖 죽은 동물의 살을 말합니다. 어떠한 동물도 생명을 잃은 다음에는 고기가 되는 운명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먹기를 즐겨해도 살아있는 소나 돼지, 닭들마저 고기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들판의 소를 보고 "저기 쇠고기 한 마리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들은 살아 있어도 고기라 부릅니다. 얼마나 잔인한 호칭이며 무자비한 인식입니까. 가혹하지 않은가요. 살아있는 생명에게 고기라니. 고기란 호칭은 물고기들 또한 살아 있는 생명체란 사실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생명 죽이기를 재미 삼아 하는 낚시나 사냥 같이 난폭한 취미도 생기는 것이겠지요.

인간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해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몸을 살리기 위해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죽은 몸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희생당하는 생명에 대해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고기, 물고기... 배가 화흥포항을 떠나 소안도 앞 바다를 지납니다.
저 푸른 물 속의 수많은 물고기와 바다 풀과, 생명체들. 인간 또한 저 광대한 바다 앞에서는 한 마리 물고기에 지나지 않겠지요.

바닷 속의 물고기와 물고기란 호칭을 안쓰러워 하는 물고기 한마리, 거센 물결, 푸른 바다 위를 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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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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