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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
ⓒ 민주노동당
21세기의 첫 대통령 선거였던 16대 대선이 막을 내렸다. 이번 대선의 결과를 가지고 이러저러한 시각에서 다양한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 진보운동에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와 사회당의 김영규 후보라는 두 명의 대선후보가 출마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역사상 최초로 두명의 진보운동 후보가 출마한 16대 대선이 남긴 명암'이라는 주제로 평가해보는 것도 흥미있는 대목이 될 듯하다.

사실 그 동안 한 명의 후보를 내는 문제에 대해서도 노선상의 문제(독자후보냐 비판적 지지냐)나 재정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버거워했던 진보운동진영이 두 명의 후보를 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올해의 16대 대선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진보운동 최초로 두 명의 대선후보가 출마한 16대 대선의 결과는 민주노동당에게는 희망을, 사회당에게는 좌절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먼저, 대선의 직접적인 결과인 득표율을 보자.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957,148표(3.9%)를 얻어 3위를 한 반면, 사회당의 김영규 후보는 22,063표(0.1%)를 얻어 6명의 후보 중 6위를 하는 데 그쳤다.

표의 결집현상이 가장 극심한 대선이라는 점, 모든 언론에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간의 양자대결구도로 몰고 간 상황이었던 점, 더군다나 대선 막판 노무현 후보의 공조 파트너였던 국민통합21의 정몽준이 극적인 '헛발질'까지 했던 점 등을 고려해볼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득표는 비록 100만표에 미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얻은 134만표에 전혀 뒤지지 않는, 오히려 그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면 사회당 김영규 후보의 경우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얻은 26만여 표의 1/10에도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6명의 대선후보 중 6위를 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다.

▲ 권영길 후보의 대선필승결의대회 장면
ⓒ 민주노동당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후보를 내세운 3차례의 TV합동토론회를 비롯해 수십 차례의 TV정책토론회에 참석하면서 국민대중 속에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모습을 확실히 각인시켜내는데 성공했다. 반면 사회당의 김영규 후보는 단 한 차례의 군소후보 합동토론회에 초대받았을 뿐 언론에 자신을 알릴 기회조차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 사실상 자신의 존재사실마저 제대로 알려내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공과 실패는 단지 언론보도의 차이에서만 기인하지는 않는다. 사회당은 재정적인 조건에서도 민주노동당에 뒤처진 관계로 두 차례 낼 수 있는 가정에 배달되는 공보물조차 단 한차례, 그것도 두 쪽 짜리 공보물을 내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두 쪽 짜리와 네 쪽 짜리 공보물을 냄으로써 비록 기성보수정당에 비해서는 턱없이 뒤처질 수밖에 없었지만 최소한의 선전활동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지역에서의 선거운동에서도 두 당은 확연한 차이를 보여줬다. 민주노동당은 전국 105개 지구당, 3만여 당원을 확보하고 있는 정당답게 대선시기에는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구에 선거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선거운동을 펼쳐나갔다. 반면 사회당은 지역에서 선거운동하는 장면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 사회당의 김영규 후보
ⓒ 사회당
당연히 선거결과에 대한 양당의 평가도 상이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의 '최대 승리자는 노무현 당선자도 아니요, 노사모도 아니요, 바로 민주노동당'이라는 적극적인 평가를 하기조차 한다. 자신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난 50여년간 지속되어온 보수일색의 정치구도가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마침내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고 대결하는 새로운 정치구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숙원이었던 진보정당 최초의 원내진출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진보정당 최초의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사회당의 평가는 결코 희망적일 수 없다. 김영규 후보는 '득표수에 관계없이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후보가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민중후보'에서 '사회주의 후보'로의 성장발전!" 그 자체로 보면 일견 발전이자 성공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득표율의 상승이라든지, 선거활동 과정에서 대중적 열광이나 호응을 이끌어냈다는지 하는 구체적인 징표와 결합하지 못할 때, 그것은 단지 자족적이고 자기 위안적인 평가에 불과한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선사상 최초로 진보운동진영에서 두명의 대선후보가 출마했던 16대 대선이 끝난 지금 지난 1년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 김영규 후보의 선거운동 장면
ⓒ 사회당
민주노동당은 '분단구조하에서 지난 50여 년의 긴 세월동안 지속되어온 보수일색의 정치구도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의 공동대응이 필수적이므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통합해서 이 상황을 돌파해나가자'는 입장이었던 반면, 사회당은 '정책과 노선이 일치해야 단일정당을 형성할 수 있으므로 민주노동당이 진정 통합을 주장한다면 반조선노동당과 반자본주의 입장을 먼저 밝히라'면서 정책과 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통합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는 6·13지방선거 직전의 통합노력도 실패로 돌아가게 했고,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통합적인 단일후보를 내자는 접근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 바 있다.

대선이 끝난 지금 민주노동당 입장에서 볼 때 사회당과의 통합, 내지는 단일후보를 성사시키지 못했음에도, 원래 민주노동당이 추구하고자 했던 바 '보수일색의 정치구도를 혁파하고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고 대결하는 새로운 정치구도 형성'이라는 일차적인 목표는 사실상 이루어낸 셈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반면 사회당의 경우 '최초의 사회주의자 후보'를 대선에 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진보운동진영의 그 어떠한 좌파와도 손을 잡지 못한 채 외로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본인들은 애써 부인할지 몰라도 일반인의 눈에서 볼 때도 초라할 수밖에 없는 대선의 참혹한 결과를 과연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사회당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추구했던 바 '보수일색의 정치구도를 혁파하고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고 대결하는 새로운 정치구도 형성'에 민주노동당의 왼쪽에 극좌파로 비쳐진 사회당이 있음으로 해서 일반국민으로 하여금 민주노동당에 보다 쉽게 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평가일까?

민주노동당의 존재가, 권영길 후보의 존재가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듯이, 사회당의 실패가 없었다면 민주노동당의 성공도 지금만큼은 아니었을 수 있다는 필자의 가정은 너무 주관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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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2022) <현충원 역사산책>(2022),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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