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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여름, 내 사랑의 불꽃은 꺼졌습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와 악수하고 예식장을 등졌을 때 세상이 무너져 내렸죠. 영화 <졸업>에서와 같은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다리는 추를 매단 듯 무거웠지만 어떻게든 그 자리를 벗어나야 했었죠. 수백미터 떨어진 지하철역까지 가기 위해 몇 번이나 쉬어야 했습니다.

그녀를 잊으려면 내가 없어져야 했죠. 아마도 그 해 한국의 알콜소비량은 무지하게 늘었을 겁니다. 처음엔 짓밟혔다 증오했고 나중엔 스스로 끈 것이라 자위했던 그 불꽃을 영원히 어둠 속에 버려두리라 생각했죠. 상대를 저주하고 자신을 자책하며 내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에서 무한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내 삶의 마조히즘은 그 즈음에 완성되었을 겁니다.

간혹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시 풀무질을 시작할 때마다, 떠난 뒤의 어두움에 대한 공포와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죠. 그래서 나는 이리저리 도망 다녔습니다. 도망은 공포와 그리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였죠. 그러면서도 나는 그 불꽃을, 그 따스함을 무척이나 그리워했고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도망과 갈구, 그래서 마조히즘은 새디즘이라는 동전의 반대면인가 봅니다.

▲ 책표지
ⓒ 청미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25살 보통 청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소설, 영화로 만들어졌던 그런 연애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재탕, 삼탕해서 맛도 느낄 수 없을만큼 식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통(Alain de Botton)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 사랑과 철학을 접목시키려는 그의 ‘객기’가 아니라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세세하게 묘사된 심리는 색다름을 줍니다(보통은 남성이라 여성의 심리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여성의 심리가 더 궁금합니다).

심리묘사라고 해서 연애에 필요한 테크닉을 가르쳐주는 책은 아닙니다. 보통은 그런 책에 ‘쾌락파시즘’이라는 재미있는 딱지를 붙여줍니다. 그런 책들에 나열된 인간의 ‘자연적인’ 반응과 과정은 “원시주의에 대한 향수와 사라진 에너지에 대한 애도”일 뿐이고, “그들은 오르가슴을 권유할 때조차 좌절감에 사로잡힌 관료적인 구문을 통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66쪽)고 비꼽니다.

지은이

지은이/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알랭 드 보통은 1969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런던에 살면서 런던 대학교에서 대학원생 철학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낭만적 운동(The Romantic Movement)>(1994), <입맞추고 말하기(Kiss & Tell)>(1995), <프루트스가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나(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1997),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2002)의 저자이다. 그의 작품은 14개 국어로 번역이 되었다.
옮긴이/ 정영목: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사람고 상징>, <감성과 이성>, <마르크스>, <신의 가면 III: 서양신화>, <권력을 경영하는 48법칙>, <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 <제스처 라이프>, <도시의 과학자들>, <눈먼 자들의 도시>, <흉내>, <펠리컨 브리프>, <쥬라기 공원> 등이 있다.
/ 소개글
보통은 자신의 연애담을 현란한 인용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이론에 고삐를 매어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요. 그에게는 사랑이 곧 철학이요, 정치입니다.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거부반응도 보이는군요(제가 보기엔 잘못 이해한 것 같군요). 그래도 그 시도는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만나 그 만남을 ‘운명’으로 채색하고, ‘이상화’합니다. 끊임없이 상대를 '해석'하면서 같은 점을 찾아내지요(사실 그런 기호는 해석할수록 늘어나기 마련이지요). 사랑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지요. 그러다가 막상 상대방이 자기에게 다가오면 불에 데인 것처럼 꿈쩍 놀라기도 하고, 사랑과 자유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시기를 맞기도 하지요. 때론 회의주의에 빠짐으로써 자기를 되돌아보기도 하지요.

아쉽게도 세상의 많은 사랑들은 파경을 맞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 역시 파경을 맞고 잠시 ‘낭만적 테러리즘’에 빠졌다 자살까지 기도하지요. 물론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에 이 책을 쓴 것이겠지요.

보통은 그 짧지만 긴 과정을 통해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사랑이라는 그 모순된 감정에 대한 교훈. 그 얘기를 들어볼까요?

“사랑의 모순들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교훈, 지혜에 대한 요구를 지혜가 무력해지는 상황과 조화시킬 수 있고, 첫눈에 반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그 불가피성과 조화시킬 수 있는 교훈. 사랑을 평가할 때에는 교조적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로 달아나지 말아야 하고, 두려움의 철학이나 실망의 윤리학을 구축하지 말아야 했다.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게 겸손을 가르쳤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확실성에 이르려고 몸부림을 쳐도[그 결론에 번호를 붙여서 단정하게 배치해놓는다고 해도] 분석에는 절대로 결함이 없을 수 없다는 교훈, 따라서 아이러니로부터 절대로 멀리 벗어날 수가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284~285쪽).

보통은 사랑하려면‘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선행되어야 하고, 상대방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통해 자신을‘성숙’시킬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렇지요. 당연한 얘기지요. 누군들 마음이 없고 성숙하고 싶지 않을까요.

올 겨울이 예년보다 더 추운 것도 아닌데 마음은 더 쓸쓸한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서일까요? 아니면 사로잡혀 있던 기억에서 벗어나서일까요? 이제는 또다시 어둠 속에 던져지더라도 새롭게 불꽃을 피워보고 싶군요. 그런 마음다짐에 보통의 책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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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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