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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빈승(貧僧) 도우스님의 실천궁행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경남 창령의 화왕산 자락 작은 암자에 기거하는 빈승 도우 스님은 콩팥은 하나요, 간은 반쪽이며, 골수는 부족하다고 한다. 동체대비(同體大悲)라, 이 모자라는 인간같은 스님은 그래도 부처님의 자비 상호(相好)로 사바(沙婆) 중생들을 대하여 화안히 웃기만 한다.

사연인 즉은, 참선으로 면벽하고 탁발로 제도(濟度)하며 풍진세속(風塵世俗) 중생번뇌(衆生煩惱)를 파멸(破滅) 해탈(解脫)하려는 보우 스님은 말기 신부전증 환자에게 콩팥 하나 떼어주고, 말기 간경화증 환자에게 간 반쪽 떼어주고, 혈액종양 환자에게 골수 반틈 나눠주어 찰나의 삶을 영겁의 삶으로 고양 승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부처님이 비천한 나를 문도(門徒)로 삼아 가르침을 전해주고 나 또한 지존무쌍(至尊無雙)을 화두로 삼아 깨우침에 이르노니, 어찌 독존자비(獨尊慈悲)의 그 길을 피해갈 수 있으랴?"

"자네, 오른손 식지를 들어보게."

이것은 지금까지 그가 이야기해오던 금불각이나 등신불이나 만적의 분신공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달포 전에 남경 교외에서 진기수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고 내 입으로 살을 물어 뗀 나의 식지를 쳐들어 보았다. 그러나 원혜대사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더 말이 없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겐지, 이제 그만 손을 내리어도 좋다는 겐지 뒷말이 없는 것이다.

"……."
"……."

태허루(太虛樓)에서 정오를 아뢰는 큰 북 소리가 목어(木魚)와 함께 으르렁거리며 들려 왔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等身佛)>의 결미 부분

죽음의 번뇌에 휩싸인 누이를 위해 소신공양한 만적의 업이 연이 되어 나에게 기(起)한 것으로 이해된다.

연기(緣起)란 어휘는 산스크리트어 'pratityasamupada'를 한역한 것이다. 여기서 'pratitya'는 '…때문에(緣)', 'samupada'는 '태어나다(起)'란 뜻을 지니다. 따라서 연기(緣起)란 '… 때문에 태어난 것', '…을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라는 말이다.

즉 '모든 존재는 그것을 성립시키는 여러 원인이나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원인이나 조건을 말미암아서 형성되는 것'이란 것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다음과 같은 붓다의 교설이 기록 전승되고 있다.

어느 날 탁발하러 온 아슈와자트 비구의 수행자다운 모습에 감동을 받아 사리뿌드라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며 어떤 진리를 배웠는지?' 등에 대해 물으니 그는 "모든 것은 원인에서 생긴다. 부처님은 그 원인을 설하셨다.(諸法從緣起. 如來說是因) 모든 것은 그 원인에 따라 소멸한다. 이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다.(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고 답하였다.

일찍이 보리수 아래에서 고(苦)를 화두로 하여 수행하던 고타마 싯다르타는 관계상의(關係相依)의 연기법(緣起法)으로 고해를 떠도는 중생적 삶의 '고'의 원인을 찾아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해탈열반(解脫涅槃)의 무아(無我)를 이루려 했다.

12연기의 고리 (無明무명- 行행- 識식- 名色명색- 六處육처- 觸촉- 受수- 愛애- 取취- 有유- 生생- 老死노사)의 근원인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한 신(身), 구(口), 의(意)의 행업(行業)은 인간을 무지(無知)와 욕망(慾望)으로 인한 모든 괴로움을 수반하게 한다. 하지만 인간학의 좋은 행업은 또 하나의 에네르기아(Energia)가 되어 또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또 하나의 묵상(默想)의 화두가 되어 깨달음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고 가르치신다. 외외 석가불(巍巍釋迦佛)!

중생들의 사고(四苦)에 대한 부처의 자비(慈悲)의 마음이 연(緣)하여 병든 누이를 위한 만적의 소신성불(燒身成佛)이 기(起)하였고, 또 이것이 인연(因緣)이 되어 나의 불심귀의(佛心歸依)가 기성(起成)된 것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행업은 더러운 진흙탕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을 피어나게 하는 것이다.

경남 창령의 화왕산 자락 작은 암자에 기거하는 빈승(貧僧) 도우 스님의 화안히 웃는 모습이 나를 화안히 웃게 만든다. 그 분과 나의 연기 상의(相依)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분이 나에게 수(受)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 자신의 깨달음의 눈물이 연(緣)이 되어 나의 기쁜 눈물이 기(起)한 것이다.

옴마니 반매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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