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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목요집회때 아빠 사진을 보고 있는 작은아이
민가협 목요집회때 아빠 사진을 보고 있는 작은아이 ⓒ 김소중
아빠 없는(?) 아이들과 함께 지낸 겨울이 벌써 네 번째입니다. 남편이 구속되던 당시에 3학년이었던 큰아이는 올 3월이면 어엿한 중학생이 되고 갓 두 돌짜리였던 작은 아이는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한창 아빠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아이에게 아빠는 상념일 뿐입니다. 큰아이는 동생이 불쌍하다고 합니다. 아빠와 그 흔한 놀이공원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은 아이는 '아빠에게 쓰는 편지에 늘상 어디에 가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라고 쓰고는 합니다.

집에 있는 앨범에는 우리 가족이 단란하게 찍은 가족사진이 없습니다. 그래서 행사 때 쓰일 사진은 우리 세 모녀가 찍은 것에 남편의 4년 전 사진을 합성해서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 연유로 그 사진 속의 남편은 아내보다 항시 젊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아빠와 단란하게 길을 지나는 가족이나 남편과 쇼핑을 하는 아내의 모습에 무던해질 때도 되었건만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고 가노라면 가슴에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휑'하고 지나가곤 합니다. 그럴 때면 입버릇처럼 '꿋꿋하게! 씩씩하게'를 중얼거립니다.

양심수의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더더욱 남편은 국정원의 그림표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가끔은 하영옥의 아내 역할이 힘겹고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도와주고자 애쓰는 사람들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갖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조바심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만큼 작아지는 나의 모습에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 즈음에 아이들도 잘 키워야 하고, 남편 면회도 다녀야 하고, 남편과 관련된 일들도 보아야 했고, 돈벌이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잠'이었습니다. 졸음운전으로 차를 폐차시켜야 했고 요행히 목숨만은 건졌습니다. 남편은 저의 교통사고 소식을 접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했고 탈옥하고 싶었다 합니다. 한 친구에게 '아내를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괴로워하였다 합니다.

죽음을 살갗으로 느끼고 나니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편안한 마음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남편과 그 주변의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고 저 자신의 모습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나를 도와주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남편의 동지만이 아닌 나의 동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던 것이지요.

살아가는 것이 고통을 참아내고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야 한다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고 그 삶을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한, 그에게 절대로 행복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진리도 알겠더군요. 예전의 남편이 저에게 하였던 말들이 제가 이제야 깨달아가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랑은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기다린다'하였습니다. 국정원에 의해 하나의 조직이 되고 가족이 된 우리 양심수의 아내들은 어느새 매섭고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었고 서로 힘을 합쳐 거대한 바위처럼 단단해졌습니다. 이전의 눈물 많고 가녀리던 모습 대신 환하고 밝게 웃음 지으며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최후의 양심수가 감옥 문을 박차고 나오는 그 날까지 우리는 열심히 뛸 것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입김은 가장 추울 때 뜨겁다 하더군요. 한겨울을 우리들의 열기로 녹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우리의 동지입니다. 우리나라가 민주국가로 제대로 서기 위해서라도 남편을 위시한 모든 양심수들은 전원 석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국가 보안법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합니다. 월드컵에서, 대선에서 보았던 우리 민족의 올바른 정신이 양심수 석방운동에도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야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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