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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차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장 에그버트 됙, 아래 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제네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는 현지시각으로 15일, 8시간에 걸쳐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제2차 한국정부보고서를 심사하는 회의가 열렸다.

▲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의 정부 대표 발표 모습
ⓒ 인권하루소식
한국정부대표단으로는 보건복지부의 문경태 기획관리실장을 포함해 교육부, 노동부 등 각 부처 관계자 10여명이 참석했고, 한국정부가 비준한 국제인권조약 관련 심사회의에서는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옵저버로 참석하였다.

한국 정부는 지난 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고, 94년에 1차 보고서를 2000년에 2차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위원회는 96년 한국정부보고서를 심사한 후 20여 개 항목의 권고를 했고, 이번 심사회의는 지난 7년 동안 이루어진 아동권의 진전사항과 유엔권고사항의 이행여부를 검토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잊혀진 권리

위원회 위원들의 질문은 '유보조항 철회여부, 체벌금지, 협약의 이행을 위한 점검과 조정을 담당하는 상설적이고 다각적인 체계의 마련' 등 1차 보고서 심사 후 권고했던 사항의 이행여부에 집중됐다.

이에 대한 정부대표단의 답변은 여전히 "시기상조다", "고려 중"이라는 데서 진전이 없었다. 대표적인 예로 협약 비준시 유보했던 조항에 대한 철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협약에서 3개 조항을 유보했는데 그중 하나가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시 아동이 부모를 만나볼 수 있는 권리'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국내법에 관련규정이 없다'는 대답을 되풀이했다. 이는 1차 심사 때도 했던 답변으로 7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고려 중"이라는 것은 2차 보고서 심사를 받기까지 '잊고 있었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다.

또한 1차 보고서에는 한국 정부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국내 이행사항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아동권리에 관한 국가위원회'를 설립했다는 거짓보고가 들어있었다. "그 위원회가 왜 2차 보고서에서는 사라졌냐"는 추궁에 정부 대표단은 "1차 보고서를 준비하기 위한 임시위원회였을 뿐인데 전달과정에 오해가 있어서 아동권리 이행사항을 점검·조정하는 상설기구인 것처럼 보인 것 같다"는 궁색한 해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도 아동권리의 이행사항을 조정하기 위한 상설적인 정부 체계는 없으며, 이를 만들 것을 "고려 중"이라는 답변이었다. 체벌금지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이 없거나 아예 대답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한국 담당인 시타렐라 위원은 "한국 정부가 1차 보고서의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고 구체적인 실천이 뒤따르지 않았다"며 "1차 때 했던 위원회의 권고를 또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동권에 대한 인식 부재

토론 과정 전반에서는 아동의 인권에 대한 인식 부재가 대안창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아동 참여의 권리, 학교와 가정 모두에서의 체벌금지, 반차별 캠페인, 경찰과 법원에서의 아동의 의견청취, 입법을 책임지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아동권 교육, 호주제의 폐해와 아동의 성명선택권' 등 위원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담긴 문제의식을 정부 대표단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언어 문제가 아니라 아동권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다.

아동이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라고 보기에 제기되는 질문에 '왜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의아해 하며 '한국의 현행법과 제도는 이렇다'는 식의 단편적인 답변이 계속되자 토론이 진전될 수 없었다. 또한 대안에 있어서도 '국가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국가가 할 일을 얘기하기보다는 '여론이 성숙되지 않았다', '사회적 인식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여론에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국가의 책임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보였다.

국가인권위에 대한 기대

위원들은 2001년에 신설된 국가인권위의 역할에 높은 관심과 기대를 보였다. 한 위원은 "국가인권위의 위원 중에 아동권에 정통한 전문가가 있느냐"며 위원 인선과정에 관심을 보였고, 아동의 진정이 얼마나 접수됐으며, 아동권에 관한 소위원회의 신설이 가능한지, 국가인권위가 충분한 예산과 권한을 갖고 일할 수 있는지 등에 관심을 보였다. 국제인권조약의 국내이행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솔직하고 열린 자세 돋보여

이번 정부대표단의 태도에서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일단 부인하고 보자'는 태도를 벗어나 잘못이나 부족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위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과 대안을 구하는 태도는 심사회의의 취지를 받아들인 열린 자세였다. 이점에 대해서는 위원들도 긍정적인 평가를 보였다.

대표단의 책임자인 문경태 실장은 회의 직후 시타렐라 위원에게 "1년 후에 한국에 초청하겠다. 협약의 이행 사항 여부를 와서 점검해 달라"고 했고, 이에 시타렐라 위원은 "당연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또한 정부대표단은 민간단체와 평가토론회도 열겠다고 했다.

아동권의 이행이 3차 보고서 제출 때까지 또다시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대표단의 이런 약속부터 이행돼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보고서 심사에 따른 위원회의 권고사항은 1월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인권하루소식 2003년 1월 18일자(제22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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