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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동성으로 언론과 정치권은 이것을 인터넷의 폐해로 몰아붙이고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현상은 오히려 전형적인 기존 언론들의 '냄비근성적' 폐해라 할 만하다. 사실 나는 이 '살생부'를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이것보다 더 심한 내용의 '살생부'를 본 적은 있다. 그냥 재미로 보고 웃고 넘어간다. 만든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어차피 후련하고 재미있으라고 하는 짓들이다. 거기에 무슨 음모가 있을 리도 없고 보는 네티즌도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다.

그야말로 온갖 잡다한 것이 바다와 같이 널려있는 인터넷의 공간에서는 이건 길 가다 채인 돌뿌리나 마찬가지다. 여론이라는 것이 신문이나 방송이 독점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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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올라오는 의견도 많은 사람의 동의나 지지를 받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전파되어 그것 자체가 여론이 된다. 동의 받지 못하고 말이 안 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스스로 소멸되고 만다. 그것이 인터넷 여론이다. 기존 언론보다 더 많은 검증을 거친다.

선거가 끝나면 신문지상에도 사실 '공신'과 역적'들이 등장한다. 다만 아주 완곡하게 표현될 뿐이다. 누가 열심히 뛰었다느니, 누가 측근 실세로 부상했다느니, 누가 물먹게 되었다는 둥의 분석기사가 등장한다. 각종 신문들이 이번 선거가 끝난 뒤 '노무현의 사람들'식으로 분석한 기사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간혹 언론에 의해 물먹어 '공신'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사람도 나온다. 말이 '살생부'지 기존 언론이 해 왔던 그런 분류를 네티즌여론답게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뿐이다.

사실 네티즌은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개개인으로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일 따름이다. 한때 기존 언론으로부터도 찬사를 받기에 바빴던 '앙마'가 참으로 본질과 상관없는 하찮은 실수를 들추어낸 친미세력들로부터 난도질당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현미경을 대고 꼬투리를 잡으려면 한도 없이 캐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큰 강물이 흘러가듯이 순리대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큰 강물에 작은 쓰레기가 하나 떠서 간다고 강물이 오염되었다고 난리 굿을 벌이는 사람들인 것이다. 조선일보는 오늘 자 사설에서 '‘네티즌’이란 것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사람까지 등장한 세상'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런 식의 인터넷 정치 동원 한층 극성을 부릴 것이란 예상이 많은 지금, 인터넷의 정치적 기형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중앙일보는 '정권 재창출 과정의 활동을 기준으로 '죽이고 살릴' 명단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우려할 일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며, '익명성과 동시 다발의 위력적인 전파력을 특성으로 한 인터넷을 이용한 방식으로 인민재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흡사 왕조시대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며 '이 문서에서 정치보복의 냄새가 짙게 묻어 나고 있음을 경계한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당 개혁작업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이 리스트가 활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큰 걱정을 한다.

네티즌을 대단한 정치집단으로 묘사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주류 언론을 통하지 않은 여론은 오로지 음모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살생부'는 그냥 이런 것이 인터넷에 있구나하고 넘어가면 된다. 당사자가 허위 사실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경찰에 고소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언론과 정치권이 냄비 끓듯이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인터넷은 온갖 폐해가 가득한 곳으로 몰아놓고는 왜 인터넷 공간을 뒤지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제발 인터넷은 인터넷일 뿐이니 기존 언론은 따라하지 말자. 노무현 당선자를 두고 인터넷 정치를 한다고 뭐라 하더니 이제 '인터넷 딴지걸기 언론'이 되기로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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