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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산성 서벽. 성벽이 가장 뚜렷한데다 높이만도 3m에 이른다.
비봉산성 서벽. 성벽이 가장 뚜렷한데다 높이만도 3m에 이른다. ⓒ 최연종
화순에 5개의 산성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게 비봉산성(飛鳳山城)이다. 비봉산성은 능주면과 도곡면의 경계인 비봉산(195.5m)에 있다.

조광조 유배지에서 20여미터쯤 가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곧장 산성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니 오랜만에 많이 내린 눈이 곳곳에 남아있어 겨울의 정취에 흠뻑 젖어들게 한다. 이런 나지막한 산에 과연 산성이 있을까... 괜한 조바심이 난다.

화순에 있는 여느 산성들이 해발 300여미터에 있는데 비해 비봉산은 정상이 고작 200여미터에 불과하니 그럴만도 하다. 비봉산 8부 능선쯤에 이르면 넓고 반반한 터가 나오는데 전에 사찰이 있었다고 전한다.
산죽나무가 유난히 많은 걸 보니 얼마 전까지도 이 곳에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빈터에서 내려다 보니 능주 소재지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어 가슴이 후련해진다.

정상을 향해 가다보면 우물을 만난다. 우물 주위를 눈들이 뒤덮고 있어 우물인지 분간조차 힘들다. 주변에는 민가 한채가 해방 전까지 있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몇 개의 주춧돌만이 남아 있다.

"사찰주위로 대나무가 하도 많아 '대절'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민가 주위로는 수령이 꽤 오래된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벌목으로 사라지고 말았지요" 향토사학자 오정섭(78, 능주면 석고리)씨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한 말이다.

산죽나무 사잇길을 따라 가면 비봉산성.
빼곡히 쌓여진 돌들이 튼튼한 성벽을 이루고 있다. 어림잡아 150여미터는 되는데다 높이도 3m는 족히 될성싶다. 비봉산성 서벽으로, 성벽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다. 서벽을 타고 오르면 서벽과 남벽이 만나는 곳에 봉우리가 있는데 주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망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벽도 300여미터나 된데다 성곽도 뚜렷이 남아 있는 편. 비봉산성은 능주읍지에 고려 태조 원년(918년)에 쌓았다고 기록돼 있다.

1256년 몽고 침입때 쌓았다는 설과 임진왜란때 쌓았다는 설이 있으나 아마 이때 보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동학란 때 동학군의 거점으로 사용됐다고도 전한다. 비봉산성(전남도 기념물 제194호)은 산 정상을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테뫼식으로 형태는 마름모꼴에 가깝다.

총 길이는 900여미터로 현재 500여미터가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귀중한 우리의 자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봉산에 얽힌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비봉산은 새들의 낙원이었다. 하지만 민가와 가까워 온갖 새들의 배설물로 악취가 심하고 밤이면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못 이룬 완악한 한 농부가 비봉산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이때 숫봉황새가 불에 타 죽었는데 암컷 한 마리가 이레 동안 먹지도 않고 구슬프게 울며 숫봉황새 주위를 빙빙 돌다 피를 토하며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순절한 봉황의 넋을 가엾이 여겨 함께 묻어 주고 이 산을 비봉산(飛鳳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불이 난 뒤로 능주에 재앙이 그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대를 쌓았으니 봉란대(鳳卵臺)다. 마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한 이 대(臺)가 생긴 뒤로 재앙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전한다.

봉란대는 영벽정 건너 들판 가운데 솟아 있다.
능주의 주성(主城)으로서 봉황새의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비봉산성. 봉황새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음미하며 한번 올라 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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