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발생한 서울 구의동 '자전거 판촉' 폭력사태에서 볼 수 있듯 새해 들어서도 조중동 메이저 3개 신문지국들의 경품 전쟁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신문판촉을 위한 고가경품 사용과 지국 분할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지국을 빼앗긴 전직 조선일보 지국장이 공정거래위원회와 신문협회의 외면 속에 외로운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전직 <조선> 지국장의 비극은 일선 지국의 경품제공과 무가지 살포의 이면에 본사-지국 관계에서 본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이 자리하고 있고, 이 같은 '노비문서'에 대한 근절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거리로 내몰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병점지국(경기도 화성시)을 운영해오다가 작년 11월 지국 운영권을 잃은 고광일(47)씨는 지난 10일 대검찰청에 공정거래위원장과 사단법인 한국신문협회를 상대로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진정서에 따르면, 고씨는 작년 11월20일 조선일보 경기남부지사장 배모씨로부터 통지문 한 통을 받게 됐다. 통지문에는 "고씨가 약정위반사항이 과다하여 더 이상 계약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돼 지국 운영에 관한 계약을 해지한다"고 적혀 있었다.
고씨는 11월21일 지사에서 사람이 와서 업무 인수인계를 요구했을 때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지사에서는 같은 달 23일부터 병점지국에 대한 신문 공급을 끊어버렸다. 조선일보는 고씨가 끝끝내 넘기지 않으려고 했던 4천여명의 독자 명단을 다른 경로를 통해 입수했고, 인근 지국이 이 지역 신문보급까지 맡은 상태이다.
1989년 7월부터 13년간 지국을 운영해온 고씨에게 이러한 상황 전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해약통지서에는 "신문의 아파트 투입률이 저조하게 나타나는 등 지국을 부실하게 운영했고, 지국 인수인계 규정도 위반했다. 어느 정도 돈이라도 받으려면 본사에 협조하라"는 해촉 사유가 나열되어 있었지만, 고씨는 이 같은 조치를 고가경품을 돌리라는 본사의 지침을 따르지 않은 데 대한 '괘씸죄'로 이해했다.
최근 <오마이뉴스>를 찾은 고씨는 "2001년 9월경에 이미 본사 지국 담당으로부터 '발신자 전화기를 판촉물로 쓰라'는 전화 통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신문부수 확장을 위한 판촉물 공세가 전국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경품이 동원되자 다른 신문지국에서도 경품 공세에 가세했고, 과열경쟁 때문에 이때 이미 지국에서 운영하는 자금으로는 도저히 본사가 요구하는 확장 부수를 맞출 수 없었다고 한다.
고씨가 날로 늘어나는 마이너스 통장에 대출을 받고, 사채까지 끌어쓰는 상황에서 작년 5월부터는 경기도 화성에도 자전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무한 출혈경쟁을 포기한 그는 같은 해 5월23일부터 11월4일까지 인근지국의 경품제공과 장기무가지 투입사례(동아일보 82건, 중앙일보 3건)를 적발해내 신문협회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지국끼리 무리한 경쟁을 하지 않고 공권력이 제대로 단속만 해주면 일선 지국장들도 한숨 돌리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그러자 다른 지국들도 병점지국의 위반 사례들을 찾아내 고씨 역시 1416만원의 위약금을 신문협회에 내야할 처지에 놓였다. 고씨는 "98년에도 신문지국간에 경품 경쟁이 불붙어 본사에서 250만원의 위약금을 대신 납부해주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못본 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조선일보의 광고대행 및 판촉용역 전문회사 조선아이에스(IS)가 11월 들어 수도권 각 지국에 "69만∼113만원대의 김치냉장고를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는 우대상품권과 7만7천원짜리 휴대전화(싯가 37만1천원 상당)를 판촉에 활용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지국에 발송했지만, 고씨는 이에 응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고씨는 "9월6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자전거 경품 문제를 보도했을 때, 내가 익명으로 '지국장 1인당 빚이 5000∼6000만원 정도 된다'고 얘기했는데, 나중에 본사에서 병점지국이 어디냐고 색출 지시가 내려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작년 11월 이후 하루아침에 생계 터전을 잃어버린 고씨는 법원에 지국 해약취소 가처분신청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
그러나 재판 결과만을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어서 청와대, 문화관광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감사원에도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들 정부기관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가서 알아보라"고 회신을 보내왔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신문협회에 민원이첩을 하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또 신문협회에도 수 차에 걸쳐 진정서를 보냈지만, 아직 한 통의 회신도 받지 못했다고.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고씨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신문협회 그리고 조선일보가 짜고서 일선 지국장들을 등 쳐먹는 게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조선> 경기남부지사장 배모 씨의 얘기는 또 다르다. 배씨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고씨가 13년간 일해온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개선이 안되고 있었다. 지역에서 조중동 3개 신문중 우리가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독자관리가 잘 안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배달 사고가 났을 때 독자가 바로 연락할 경우 재배달을 해주는 당직 체제도 점검해봤는데, 옛 병점지국은 독자들 전화도 제대로 받지 않더라는 것이다.
배씨는 또 "처음부터 지국을 교체하려고 한 게 아니라 병점지국이 신영통지역도 커버하고 있어서 분리할 것을 권유했는데, (고씨와의) 분리 협상이 잘 안된 것도 한 사유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남부지사에서 고가 경품을 쓰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단지 신문들이 부수 확장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으니 구독률을 높여달라고 말한 적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3년전 <조선일보>와 판매계약을 체결할 당시 60부를 8백만원에 인수해 아내와 함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문을 돌린 그로서는 지금의 현실이 기가 막히기만 하다.
1995년 2월의 어느 새벽 갑자기 내린 폭설로 고씨의 아내가 탄 차가 전복됐는데, 고씨가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아내는 전복된 차안에서 신문을 꺼내며 울고 있었다고. 아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함박눈을 맞으며 지국으로 오던 고씨는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술회했다.
"신문을 돌리느라 컴퓨터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고씨는 작년 11월25일 인터넷에 띄운 글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흔히 지국장은 날계란에 비유한다.
깨지면 교체되는 것이고...
어렵게 정말 어렵게 지국운영이 될 때에는 너의 사업이니까 알아서 하라면서,
막상 지역개발이 되여 허리 좀 펴려고 하니까
열심히 본사에 협조하지 않은 당신은 떠나라....
본인은 죄가 너무 많다.
본사에 평소 협조하지 않은 죄.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자전거, 김치냉장고, 최신핸드폰을 판촉물로 신문확장을 하지않은 죄.
빚을 져도 그건 온전히 지국장의 몫이지만 너무 죄가 많다.
어느 해 늦은 봄날 아내의 투정이 지금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새벽배달과 낮에는 지국업무로 봄꽃이 다 져도 몰랐다는 말에
이웃 분이 언제 피었다 지는 것인데 모르냐고 웃더라는 말이 참 가슴에 남았었나보다.
그렇게 세상모르고 살아온 세월에 여러 가지로 감회가 새롭다.
못난 남편 만나 사고로 허리를 못쓰는 아내에게도 면목이 없고,
건강상태가 안좋은 것도, 나는 죄가 너무 많다.
죄 많은 본인은 이렇게 병점지국을 온전히 타의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빼앗기고 말았으나 이젠 웃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