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날 집을 비웠습니다. 길을 가는 내내 무엇보다 봉순이네 식구들 걱정이 컸었지요. 혹시 줄이 풀려 사고라도 친 것이 아닐까. 길동이와 부용이는 괜찮은데, 염소 사냥의 전력이 몇 번 씩 있는 봉순이와 꺽정이가 걱정거리였습니다.
집 앞에 차를 세우자 꺽정이 짓는 소리부터 들립니다. 가장 안쪽에 메어져 있는 꺽정이가 귀는 제일 밝습니다. 곧이어 부용이, 봉순이 소리가 들리고, 길동이는 제 어미 봉순이가 짖는 것을 본 뒤에야 따라 짖느라고 가장 늦게 짖기 시작합니다.
녀석은 벌써 2년 가까이 돼 가는데도 어미 곁에서 함께 키우다 보니 덩치는 곰 만한 놈이 하는 짓은 아직도 강아지입니다. 개나 사람이나 부모 밑에서는 결코 어른이 되기가 쉽지 않은 탓이겠지요.
집안으로 들어서자 개들이 온통 난리를 치며 반깁니다. 평상시에는 차분한 봉순이 마저 오줌을 찔끔거리고, 길동이는 흥분했는지 똥을 쌀 듯 엉거주춤 앉아서 힘을 주며 꼬리만 부지런히 돌려댑니다. 일주일동안이나 집을 비웠다 돌아왔으니 반가울 만도 하겠지요.
"잘 들 있었니, 집 잘 보고 있었어? 배는 안 고팠어?"
녀석들 하나 하나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갈 때 주고 간 사료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넉넉히 주고 갔지만 그래도 혹시 모자라서 배를 곯을까 걱정했는데, 사료에는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니네들 왜 밥 안 먹었어? 주인이 없다고 슬퍼서 굶었니, 기특한 녀석들. 물은 조금 먹었구나, 그렇게 여러 날 굶고도 쌩쌩하네."
대체 왜 사료를 먹지 않았지? 상한 것도 아닌데. 잠깐 생각에 골몰해 있는데, 흥분이 가라앉은 꺽정이가 사료를 먹기 시작합니다. 부용이와 길동이도 사료를 씹기 시작합니다. 봉순이는 그냥 멀뚱이 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길동이는 봉순이를 또 따라하려는지 사료를 씹다 말고 봉순이만 건네다 봅니다. 봉순이는 내가 여러 날 집을 비웠다 돌아오면 맛있는 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요.
"봉순아 그냥 사료나 먹어. 오늘은 밥 없으니까." 내 말을 봉순이는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녀석이 어찌나 영특한지 농담과 진담을 가려서 듣기까지 합니다.
그나저나 녀석들이 내내 안 먹던 사료를 내가 돌아오자 먹기 시작한 이유가 뭘까. 그렇게 여러 날을 굶고도 녀석들은 어떻게 저토록 쌩쌩할 수가 있지.
저 녀석들도 식량을 아끼느라 사료를 먹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혹시 주인이 아주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제 몸 안에 저장해 두었던 에너지를 먼저 쓴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람도 그런 경우가 있다 지 않습니까.
아프리카의 서남쪽 칼라하리 사막 인근 지방은 건기가 되면 살아있는 식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남자들은 먼 곳까지 가서 식량을 구해 주린 배를 채우지만 기동성이 떨어지는 여자들은 식량이 넉넉한 시절에 많이 먹어 열량을 엉덩이에 비축해 둔다지요. 마침내 식량난이 닥치면 여자들은 엉덩이에 비축된 지방을 태워 목숨을 이어간다지요. 그래서 그곳의 여자들은 엉덩이가 유달리 툭 튀어 나왔다지요. 사람마저 그러할진대, 개들이라 해서 다르지 않겠지요. 참으로 삶이란 그토록 소중하고, 치열한 것인가 봅니다.
그래, 맛있는 밥 끓여주마. 그 대신 오늘 하루 뿐이야. 계속 맛있게 달라고 조르면 안 돼. 사료를 씹던 꺽정이와 부용이도 그만 멈추고, 개 네 마리가 다 내 얼굴만 간절히 쳐다봅니다.
알았다 알았어. 정육점에서 사온 돼지 비계 한 덩어리에 된장을 풀고, 거기다 라면까지 집어넣고 개밥을 끓입니다. 맛있는 개밥 끓는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합니다. 구수한 개밥 냄새에 허기를 잊었던 내 배도 요동을 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