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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은 대개 상습적이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힌다.
가정폭력은 대개 상습적이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힌다. ⓒ 김정혜
지난 1월 28일,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려 온 아들이 강도로 위장하여 잠든 아버지를 야구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한 이모씨(28)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서울지방법원 형사 제21부는 이모씨에게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로 "아버지가 잠들어 아무런 반항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범행을 일으킨 점과 계획적인 점"을 들었다.

이모씨의 아버지는 지난 30여년간 부인과 아들 이모씨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인을 20여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하고, 며느리인 이모씨의 처를 성폭행하여 이혼에 이르게 하였다. 또한 새로 만나게 된 이모씨의 애인 역시 성희롱하는 등 오랜 시간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 사건을 지원하고 있는 서울여성의전화는 이번 판결에 대해, "그 동안 당한 극심한 폭행과, 학대에 대한 가족들의 증언과 선처호소 등을 참작하여 재판부는 더욱 적극적인 해석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모씨의 감형 및 정신적 피해와 후유증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몇몇 사건에 비하면 징역 7년은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1년 폭력을 당한 직후 잠든 남편을 살해한 N씨는 집행유예 5년을, 97년 가정폭력 상황에서 남편을 살해한 K씨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모씨는 사건 이후, 구치소에 면회 온 어머니에게 평온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편안하시죠? 저도 편안합니다." 30년간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존속살해범이 되어서야 비로소 "편안"해진 이모씨를 이해하는 데, 재판부는 너무도 인색했다.

다음은 이번 판결에 대한 서울여성의전화의 성명서 전문이다.

덧붙이는 글 | 가정폭력 피해자 이모씨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부당하다.

1월 28일(화), 서울지방법원 형사 제 21부에서는 아버지 살해 사건 피고인 이모씨(28세)에 대한 1심 선고 재판이 있었다. 재판부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피고인에게 7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 피고인석에서 재판을 받은 이모씨는 지난 30여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어머니와 더불어 가정폭력상황을 견뎌왔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주변인을 20년동안 성폭행해왔으며, 아들의 처(며느리)를 성폭행하여 이혼하게 만들고, 이후 만나게 된 아들의 애인 역시 성희롱하여 아들에게 신체적인 폭력뿐만이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인 피해도 가져다 주었다. 
 
  재판부는 그동안 폭력상황에서 이모씨가 갖게 된 정신적인 피해 및 후유증에 대하여 세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모씨는 아버지에 대한 엄청난 분노, 증오, 두려움이 혼재되어있으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는 사실앞에 무력감을 느끼고,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이들은 모두 30여년동안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었다. 30여년의 세월은 이모씨의 전 인생(人生)이었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된 지 5년, 수십년간 은폐된 가정폭력사건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된 사실을 접하면서 다시금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존속살해로 7년을 선고한 재판부의 판결에 대하여 가정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버지가 잠들어 아무런 반항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범행을 일으킨 점과 계획적인 점'을 양형의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검찰수사에서 살해목적이 없었음에도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에 모든 것을 인정하였던 이모씨의 사건과 관련한 과거의 판결을 볼 때, 91년 폭력을 당한 직후 남편이 잠든 사이 살해한 N씨의 경우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아버지 살해의 경우에도 95년 18년간 가정폭력에 피해자인 아들 J씨는 공포에 질린 엄마의 연락을 받고 달려가서 아버지를 살해, 항소심 선고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97년 피해자인 K씨(61세)의 경우 가정폭력상황에서 남편을 살해, 항소심선고 집행유예5년을 선고받았다. 최근의 경우로는 작년 12월, 71세 K할머니의 경우로,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난 판례가 있다.

  재판부는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어머니와 가족들과 더불어 폭력현장에서 가정을 가정답게 만들고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모씨의 지난 노력을 참작하여야 하며, 또한 살인목적이 없었으나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에 모든 사실을 시인한 점과 그동안 당한 극심한 폭행과 학대에 대한 가족들의 증언과 선처호소 등에 대해 참작하여 재판부는 더욱 적극적인 해석을 내려야 한다. 
  
  이에 서울여성의전화는 이 사건과 함께 가정폭력사건의 사회적 책임을 물으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이모씨의 가정폭력, 성폭력에 대한 피해를 참작하여 감형을 촉구한다.
  1. 재판부는 이모씨의 정신적인 피해 및 후유증에 대하여 철저히 조사하라. 

2003년 1월 30일 사단법인 서울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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