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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봉사꾼 국악인 노순례씨
소리봉사꾼 국악인 노순례씨 ⓒ 신성용
무의탁 노인들이 병든 몸을 의지하고 있는 군산시 서수면 '보은의 집'.

흥겨운 민요소리에 노인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장단을 맞추며 소리를 따라하는 모습도 보인다. 우스꽝스런 춤사위에 박장대소를 하며 저마다 흥겨움을 참지 못한다. 병든 몸에 자식에게 버림받거나 홀로되어 얼굴에 그늘이 가득할 것 같은 노인들처럼 보이지 않고 밝고 건강해 보인다.

바로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합동 생일 잔칫날. 이 곳 노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물론 잔칫날 맛있는 음식도 없지 않겠지만 정작 노인들이 기다리는 것은 따로 있다.

오늘처럼 흥겨운 가락을 만들어주는 소리꾼 노순례(46·전주시 덕진구 금암동)씨가 그 주인공이다. 노씨는 민요와 설장고를 연주하는 국악인으로 매월 무료로 공연과 국악 강습을 해오고 있다.

노씨가 공연을 시작하면서부터 보은의 집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집도 절도 없는 처지에 말년에 병까지 들어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노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핀 것은 노씨의 소리봉사 덕분이었다.

비록 한 달에 한 번뿐이지만 이날 배운 가락은 한달 내내 연습삼아 입에 달고 다니니 노인들에게 재미거리가 하나 만들어졌다. 분위기 밝아지고 활기를 띠게 된 것은 물론이다. 건강이 좋아진 사람도 많아졌다. 처음 위문공연 제의를 받고서 괜히 번거롭기만 할 것 같아 주저했던 보은의 집 직원들도 이젠 노씨가 고맙기만 하다.

노씨는 인간문화재나 전문연주인은 아니지만 소리공부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은 상당한 실력을 가진 국악인이다. 초·중학교에서 국악 실기강사로 출강하고 있으며 유치원 국악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징소리만 들려도 달려나가 굿판을 기웃거렸던 그녀는 엄한 가정 분위기 때문에 국악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하다 서른 넷의 나이에 설정고 공부를 시작으로 국악에 입문했다.

그녀가 소리봉사를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이다. 전주시 자원봉사자 모집에 신청한 것이 계기였다. 부자도 아니고 권력도 없지만 가진 재주라도 가지고 남들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이때부터 각 동 경로당을 돌며 무료공연과 강습을 시작했다.

지금도 금암동 '정우경로당'에서 소리봉사를 하고 있다. 얼마 전 경로당 대항 경연대회에서 정우경로당이 입상을 해 보람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씨가 보람으로 여기는 것은 국악을 통해 노인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삶의 의욕을 찾는 모습을 볼 때이다.

'보은의 집' 소리봉사는 자발적으로 나서 시작한 것이다. 또 시내 각 경로당은 그녀의 주 활동무대가 됐다. 학교 강의가 없는 날이며 주저없이 장고를 챙겨들고 나선다. 노씨가 소리봉사에 열정을 가지고 노인들을 특별히 챙기는 이유가 또 있다.

3년전 치매병원인 전주노인복지병원에서 강대행 원장이 친구 시누이라는 인연 덕분에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이 때 치매로 언어장애를 가진 노인이 국악공연을 보면서 말문이 트여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병든 노인들에게서 소리가 얼마나 좋은 약이 될 수 있는가를 직접 확인했던 것이다.

노씨는 지난해 10월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소리봉사이 공을 인정받아 전주시장 표창장을 받았다. 그러나 "좋은 일은 남모르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한사코 취재를 거절했다. 또 소리를 공부하는 학생신분에 언론에 얼굴을 내민다는 것이 "선생님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큰 걱정"이라고 했다.

"표현이 어색할지 모르지만 소리를 듣고 즐거워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늙으면 애기가 된다잖아요. 노인들이 기뻐하는 것만도 보람이지요." 그녀는 자신의 하잖은 소리에 감동을 하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이들에 대한 가족들과 사회적 관심이 갈수록 적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주제넘게 좋은 일은 뭘요. 저도 늙을 텐데요. 품앗이하는 것이지요."

덧붙이는 글 | 시사전북 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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