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10여 년이 지났지만 마음의 장벽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서독 사람은 통일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고 동독 사람은 아직도 자신을 이등국민이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동독인들의 마음에 그런 게 많이 쌓여있고 그러한 갈등이 외국인에게 표출되는 거 같다. 서독인도 면대면 직접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내면에 항상 존재한다.
직장에 동독 출신 동료들이 많이 있다. 전에 동독에서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통일되면서 자기가 능력에 맞지 않은 하위직에서 근무하면서 물론 실업자보다는 낫지만 불만이 많이 누적되어 있다.(부인 정정희 여사)
통일이 되고 물리적인 담은 없어졌지만 내면에 흐르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여전히 있다. 전에 살던 곳 근처에 장벽이 있었다. 보리밭도 있고 가끔 아이들과 산책을 하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게 무너질 것을 상상도 못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게 없어졌다.
그것이 사라졌지만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마음의 논리를 많이 개발하는 게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 접촉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자로서 남북학자들의 만남에 관심을 갖고 있다."
-사회통합, 주민통합의 측면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이제 시작이고 한 세대가 지나야 하지 않겠는가. 젊은 세대의 경우 가정에서의 부모를 통한 사회화의 영향이 있겠지만 한 세대가 지나야 하지 않겠나 싶다. 경제적인 것도 경제적인 것대로 여전히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의 경우 그래도 많이 나아진 거 같기는 하다. 통일 후 동서독 지역 학생들이 많이 상대방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뮌스터에서 나도 그런 학생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런데 항상 그들 안에 무엇인가 그 안에 남아 있었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 초빙교수로 와서 처음 느낀 것이 학생들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규율이 있었고 선생에 대한 예우도 달랐고 서독 학생하고는 많이 달랐다. 앞으로 점점 비슷해 지지 않겠는가 싶다. 동독 학생중에는 아무래도 서독보다 동독에서 공부하려는 사람도 많이 있는거 같다. 일단 거기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는게 중요한 이유인 거 같다.
우리의 경우 전쟁 경험이 있고 많은 시간이 분단 속에서 흘렀다. 빨리 다층적인 대화와 접촉을 통해 관점을 바꾸어 보지 않고 갑자기 통일이 되어서는 싸움만 하고 더 많은 갈등이 생길 것이다. "
-통일은 결과가 아닌 진행형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렇다면 남북한의 통일도 이미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는가.
"지금의 남북한의 관계, 상황도 하나의 통일의 커다란 흐름의 과정이다. 어떤 결정된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둘이 하나되는 것만 통일이라고 한다면 통일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만나는 그 자체,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 그런 것들이 갈라진 것을 하나로 합하는 과정이라면 조금 문제가 있어도 통일의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둘이 합친 것이 통일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이 우리 논리의 한계다. 더 이상 1 더하기 1은 2라는 사고로는 곤란하다. 그 하나 안에 숨어 있는 다른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아직은 우리의 사고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지금은 하나의 초석을 내딛고 있는 과정이라고 본다. 통일을 남북이 딱 하나가 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네 가지로 보았으면 좋겠다. 남이 크고 북이 작은 것도 있고 거꾸로 북이 크고 남이 작은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히 하나가 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서로가 걸려있는 모양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두 원이 걸려 있는 때라고 본다."
-독일은 민족 문제이자 국제문제인데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자세가 있다면.
"체제가 있으면 환경이 있듯이 우리의 분단체제에도 환경이 있다. 또한 환경이 가운데 우리를 제약하는 요소가 아주 많다. 물론 지금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 문제만 따로 떼어내어 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역시 남북이 화해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남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장은 변화하기 힘들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강대국이 있는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의 국가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결국은 '우리 내부의 주체적 역량이 우리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그런 합의가, 남북간에 국민간에 있을때 우리가 주체적으로 통일지향적인 방향으로 환경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최근에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노무현 정부가 북미간에 중재자로서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보수 세력에서는 우리가 당사자인데 왜 우리가 중재를 서느냐고 비판을 했다. 그러나 중재 자체도 매우 주체적인 역할이다. 노무현 정부가 볼 때 이는 단순히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러한 측면에서 남한이 그러한 역량이 있으면 북미간에 주체적인 역량으로 등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항상 체제와 환경은 상호 연계되어 있다. 국제 환경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 환경에 대응하는 남북의 주체적인 역량이 없으면 결국 국제 환경의 룰 속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중국.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사실 전쟁만 나지 않았으면 하지 통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없다. 그게 그들에게 제일 편안하다. 모두가 자기의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이는 상황에서 우리도 주체적인 평가와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의 남북 통일의 국제적 환경을 평가한다면.
"통일의 상황이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20년쯤 후면 중국도 경제적으로 상당히 성장할 것이다. 계속 경제 침체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경제 대국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결국 한반도가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점점 좁아진다.
세계화의 흐름도 그렇다. 세계화의 과정에서 민족이라는 의미가 없어지지 않지만 민족통합을 이야기하기가 힘든 분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하루라도 빨리 남북간에 서로 화합할 수 있는 삶의 형식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2. 대북정책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에 간략히 평가한다면.
"햇볕 정책이나 6.15 공동 성명에서 제시한 원칙은 상당히 훌륭한 것이며 절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경제적,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남북은 공동 성명을 통해 중요한 원칙에 이미 합의를 보았다. 김대중 정부가 나름대로 좋은 통일 철학을 갖고 있고 북한도 이것에 주파수 마칠 수 있었다는 것에서 굉장한 진전이었다고 본다.
햇볕 정책은 굉장히 훌륭했는데 문제는 다른 분야에서 실정이 거듭되고 아들 문제 등이 터지면서 대북 분야에서의 성과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신자유주의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지만 경제 위기도 잘 극복하고 나름대로 긍정적인 것도 많았는데 가신 정치 구습을 깨뜨리지 못한 구시대 정치가 한계였다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기를 포함한 개혁을 했어야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적당히 타협하는 식으로 가다가 나중에 언론개혁에 손을 댔고 결국 실패했다. 재벌 문제도 그랬다. 노무현 당선자는 언론개혁이 급선무라는 것을 알고 대처하는 거 같다. 처음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6.15 남북정상회담 전후에 이루어진 대북송금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데.
"동서독 시절 볼프강 아메롱이라는 당시 서독 경제인 연합회 회장은 -우리의 정주영씨와 비슷한- 앞장서서 동독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이 사람이 그렇다고 사상적으로 친동독도 아니었고 철저한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우파였지만 민족관, 정치관을 떠나 경제가 돌아가야 자기들도 사업이 된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이 구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과 아주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보수적인 정치가였던 바이에른주의 슈트라우스였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동독 경제가 부흥해야 상호 정치, 경제 관계가 원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통치행위로 해 놓은 것을 시민단체까지 월법적이라는 표현을 쓰며 몰아부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실 남북간의 예민한 문제인데 가령 이것을 토론을 통해 얼마를 준다고 하는 식이라면 이것은 북한에도 달갑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된다. 모든 것을 다 털어놓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동서독간에도 엄청난 돈이 고속도로를 닦는 과정에, 또 이후에 통행료를 내는 식으로 지불되었다. 이는 금강산 관광하고도 비슷한 것이다. 한국 정치가 밀실정치였으니까 그것도 그럴 것이다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이런 문제는 좀더 큰 차원에서 다루어져야지 다 내놓고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한다면 이것은 북한을 끝없이 의심하고 있는 미국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것 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아직까지 노무현 당선자의 특별한 대북정책은 없는 거 같고 기존의 6.15 공동성명의 기조를 유지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며 대북, 대미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이라크 전쟁을 앞에 두고 실과 바늘처럼 이라크 문제와 북한 문제가 같이 나오고 있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다. 우리 자체의 역량이 이제는 어느 정도 된다고 본다. 옛날 미국 51번째 주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노무현 정부는 자기 소리를 내야 한다.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미국에게도 '노'라고 할 수 있어야지 언제까지 '예'라고만 할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는 세대로 틀리고 3김의 마지막이 정리되면서 새로운 해방 이후 세대로서 자신감을 갖고 민족문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객관적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판단하실 수 있을 거 같은데 사회학자로서 한국 사회에 대해 평가한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거 같다. 내 세대들은 공부를 마쳐도 별로 일할 곳이 없었는데 그런 시간을 지나 한국 사회는 근 30여년 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온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렇게 빠른 성장을 이루면서 초석을 다질 시간이 없었다. 이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분에서 나타난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희랍어에 에포헤(Epoche)라는 단어가 있는데 길을 가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기점을 의미하는데 곧 정지라는 말이다. 방향전환을 하려면 항상 정지, 스톱이 필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 학문에 있어서도 학자의 학문적 성장을 위해서는 긴 과정이 요구된다. 한 사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시민사회의 역량이 커지면서 인원 자연과 같은 보편적인 논리를 옹호하는 등 사회가 많이 발전했다고 본다. '빨리 빨리'라는 논리에서 이제는 인간을 생각하는. 이웃을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제 시작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의 국가 중심의 사회개발전략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속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만금 사건이 그런 예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더 다져지고 네트웍이 되어서 사회 전체가 안정감을 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 나머지 부분은 인터뷰 제2부에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구섭 기자는 북한 이탈주민의 남한사회 적응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고, 현재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 재학중이며 동서독 통합의 관점에서 통일 이후 실시된 성인교육이라는 주제로 박사과정(교육학)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