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인 영국박물관 (British Museum) 부근의 Gower Street를 출발한 시위대의 행진은 선두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피켓과 호루라기, 눈을 끄는 복장 그리고 나팔 (horn) 등으로 무장한 반전평화시위대는 행진 도중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No to war", "Don't attack Iraq", "Give peace a chance" 등의 구호를 합창하며 호루라기와 나팔을 불거나 함성을 지르며 천천히 움직였다. 선두에서 본 행렬은 피켓의 물결이었으며 그것은 인류애의 물결이었다.
이날 거리로 나온 시위대는 경찰 추산 최소 75만, 주최측의 행사장에 설치된 미터기의 액정은 끝 무렵에 이미 200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언론의 당초 추산은 50만명, 주최측은 100만은 자신하고 있었으나 이처럼 200만을 넘는 엄청난 인원에 모두들 놀라는 모습이었다. 집회가 거의 끝무렵으로 치닫던 4시경, 사회자는 아직 후발대가 출발지에서 떠나지도 못한 상태였음을 알려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 시위자는 "Stop insulting poodles"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나와 블레어 수상을 조롱하기도 하였으며 다른 시위자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유럽에 대한 비아냥에 대해 "Old Europe against New Barbarism"이라는 피켓으로 점잖게 꾸짖고 있었다. 그 외에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문구가 눈길을 끌었으며 보는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해 행진을 즐겁게 해 주었다.
자신을 66세의 런던대학의 환경학 교수라고 밝힌 한 노인은 신경통으로 다리를 절며 힘들게 걷고 있었는데 어떻게 시위에 참가하게 되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쟁은 위험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테러는 통제되어야 하지만 이라크를 폭격해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선 테러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전쟁은 이 목적을 이룩하는 방법이 아니다.(War is dangerous. Many people are lost in war. Terrorism should be controlled, but not by bombing Iraq. The causes of terrorism shoud be removed. And war is not the way to achieve this goal)" 라고 말했다.
12시경에 출발한 선두는 2시경에 하이드파크 입구의 웰링턴 아치에 도달했으며 임시로 설치된 대형 행사장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날의 반전 평화집회에는 런던시장, 전의원, 외국의 전 대통령 등의 유명 정치인과 미국 제시 잭슨 목사도 참가하였으며 인권 운동가, 연예인들도 참여하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특히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dom to Palestine)"이라는 피켓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 행사를 공동주관한 "영국의 무슬림 연합(Muslim Association of Britain)"의 한 여성활동가인 마하 알카티브(Maha Alkatib)(30)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계획과 그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불법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 무장해제는 있을 수 없다. 어떻게 다른 나라에 예방적 선제공격이 가능하냐?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 이 전쟁은 미국이 이라크의 기름을 차지하고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글라스고우에서 열린 노동당의 봄대회에서 토니 블레어 수상은 한 발자욱 물러서서 UN 무기사찰단에게 시간을 더 허용하는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위에 대한 불쾌감은 감추지 않았다.
이날 반전평화 시위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이라크를 조기에 공격하려던 미국과 영국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