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김대식 교수에게.
어제(20일) <조선일보>에는 희한한 시론이 하나 실렸다. <조선일보>에 희한한 글 올라오는 거야 다반사지만 이 글은 여느 다른 글들과는 수준과 방향이 격을 달리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시론의 제목이 '주한미군 사령관에게'인데 주한미군 사령관님께 우리의 서울대학교 교수님께서 보낸 편지 형식의 글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정말 희한하다 못해 시쳇말로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우선 첫 문장에서 "우선, 한국인의 절대다수는 미군의 주둔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인의 절대다수가 미군의 주둔을 바라고 있으며 그것이 '사실'이다? '절대다수'라면 몇 %일까, 80%일까, 90%일까.
무슨 근거로 그것을 '사실'이라고 밝히는 무모함을 저지르는 것일까? 내가 본 통계에서는 60% 정도가 철수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기억되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가 보다. 그러면 그가 인용하는 수치는 어디에서 나온 수치일까. 혹시 <조선일보>나 주한미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일까?
그는 "김정일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군의 주둔 여부와 관계없이, SOFA의 개정과 무관하게 우리는 김정일의 북한군과 싸울 것입니다"라고 한다. <조선일보>에 익숙한 탓일까, 느닷없이 "김정일이 전쟁을 일으킨다면"이라는 '~라면 논법'이 나온다.
그는 북측의 현 상황에서, 남측과 미국이 전혀 도발을 안하는데도 '김정일이' 정말로 먼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만일 김대식 교수가 도둑질을 한다면"처럼 어처구니 없는 논법이 아닐까. 북측이 저렇게 미국에게 불가침조약을 맺자고 처절하게 요구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 말이 "미군의 주둔 여부와 관계없이, SOFA의 개정과 무관하게" 북한군과 싸울 것이란다. 이쯤에서부터 벌써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미군의 주둔여부' 그리고 '소파개정 여부'와 우리가 북한군과 싸우는 것과는 무슨 인과관계가 있길래 이렇게 비장하게 언급을 하는 것일까.
김대식 교수가 과연 교수인지, 그것도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서울대의 교수일까 하는 의구심이 몇 줄 걸러 한 번씩 들게 하는 그의 글솜씨,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맹점이 여기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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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옳은 소리를 몇 줄 이상 한 곳도 있긴 하다. 바로 "...우리 자신이 한국인들을, 연변 동포들을, 외국인들을, 특히 피부가 우리보다 어두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습니다"라는 부분이다. 이렇듯 사려 깊은 듯한 그가 어째서 이렇게 수준 낮은 소리를 늘어놓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의 글의 반 가량은 우리의 젊은 세대의 반미와 미군철수가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유머 감각의 부족, 군중심리 같은 유아적 발상이라며 주한미군 사령관님께 '일러바치는 데' 할애되었다.
그런데 그의 기발한 착상이 눈에 띈다. 젊은 세대의 반미가 약간 '코믹'하고 군중심리적 요소가 다분하다며 든 예가 '포경수술'이었다. 젊은 세대가 남자들뿐인지 포경수술 운운하는 것도 '코믹'하지만, 젊은 세대가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이 부분은 사실확인을 더 해봐야 할 것이다) 반미를 하는 이유가 (필리핀과) 남한만이 군중심리적으로 미국을 잘못 모방하여 포경수술을 받은 데 있다는 그의 주장도 영 '코믹'하게 보인다.
이 부분은 정말 압권인 것 같다. 그러나 내 수준으로는 이런 심오한 사회심리병리학적(맞나?) 분석에 도저히 평을 할 수 없으니 모르는 체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잘못하면 본전도 못 뽑는 수가 생길테니 말이다.
그는 젊은 세대에게 "생각하는 방법, 스스로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는 방법, 진정한 유머감각을 전혀 가르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라고 주한미군 사령관님께 고백을 하고 있으나, 나는 김 교수 같은 젊은(?) 세대에게 "스스로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방법, 진정한 균형감각을 전혀 가르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다음이다. 젊은이들의 '군중심리적 반미'를 '코믹'하게 얘기하다가 느닷없이 "젊은이들을 부추기는 미국전문가 교수는 어떤가요?"라며 화살을 돌리더니 "미 명문대 박사지만 영어를 못 해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시키려면 헤매고, 물론 미국 친구 한 명 없습니다. 오직 한국에서 교수하려는 일념으로 도서관에서만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밤에는 비슷한 한국인들과 모여 미국을 욕하고요. 그러니 미국을 모르면서 싫어할 수밖에요"라며 경멸을 날린다.
이 대목에서는 잠시 숨을 가다듬어야겠다. 나도 미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열도 오르고 모욕감도 들고, 무엇보다도 '주한미군 사령관님'께서 이 글을 보시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참담함도 들지만, 잠시 나의 과거를 뒤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주어 고맙긴 하다.
이 글을 보니 김 교수도 미국 명문대에서 공부를 한 듯하다. 그런데 그의 주위에는 '영어를 못해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시키려면 헤매'고 미국친구 한 명 없는 학생들만 있었나 보다. 오직 한국에서 교수자리나 하나 따려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 학생들만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도 경멸스러웠던 모양이다.
내 경험으로 얘기하자면 맥도날드 같은 데를 가본 적이 많지 않아서 김 교수처럼 잘은 모르지만 뭐, 우물쭈물거릴 수도 있다. 미국인들이야 생활의 일부로 체화되었으니 줄도 긴 마당에 일사천리로 주문할 수 있겠지만, 우리로서는 메뉴 선택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정말로 영어를 못 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어 그리 대단한 수치인가.
그리고 그가 말하는 미국인 친구에 대해서도,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키플링의 "Oh, east is east, west is west. Never the twain shall meet"라는 말처럼 그들은 우리와 생각하는 바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심하게 얘기하면, 우리가 끊임없이 무언가 관심을 베풀어주고 도움을 제공하지 않으면 친구가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무언가 '쓸모'가 있지 않은데 미국인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경우라는 것이다. 지금의 한미관계라는 것의 본질을 생각하면 그 답이 보이지 않는가.
근본적으로 미국인은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다. 20년쯤 전 미국에 유학을 가서 기숙사에서 처음 만난 미국인에 대한 기억은 바로 엊그제 기억처럼 생생하다. 나는 그때 우리나라가 그래도 외국 나가면 대접을 받는 줄 알았다. 그때 나는 자존심 높고 무서울 것이 없는 당당한 한국 청년이었다. 그러나 우물 안 개구리였다. 세상을 우리의 눈으로만 보고 판단할 줄 알았지 남이 어떻게 우리를 보리라는 것은 몰랐으니까.
그때 기숙사에서 방을 같이 쓰게 된 미국인이 우리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우습게 아는 것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위상에 대한 환상이 금가기 시작했다. 눈이 깨었다고 할까? 그후 몇 년을 있으면서 느낀 것은 한국인이 미국인의 관심의 대상이 전혀 못 된다는 것이었다. 듣기 기분 나쁜 말일 수 있으나 현실이다. 지금도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들과 친구가 되려고 한다면 자존심을 굽히고 들어가야 할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의 친구 만들기가 어디 그런가? 그렇기 때문에 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김 교수처럼 같은 랩에 있으면서 오랜 시간 토론 같은 것을 같이 하다보면 친구가 되는 수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혼자 생각하고 풀어내야 하는 생활을 하는 마당에 시간이 우선 나질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을 마치 김 교수는 자기의 입장에서 다른 많은 미국인 친구 없는 유학생들을 거의 경멸을 하고 있다. 이게 배운 자로서 할 일인가, 게다가 신문의 시론으로 쓰는 것이 제대로 된 일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리고 "오직 한국에서 교수하려는 일념으로 도서관에서만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폭력이다. 유학생들이 대부분 돌아와서 교수를 하고 싶어는 한다. 김 교수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유학생들은 도서관에서만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일단 학업을 따라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것을 꼭 "교수하려는 일념으로" 그랬다고 깎아내리는 것은 지나치다.
이쯤에서는 김 교수는 어떻게 미국유학 생활을 했는지 궁금하다 (만일 미국에서 공부한 것이 맞다면). 김 교수는 맥도날드에서 유창한 영어로 미국인 점원을 제압하고, 물론 미국인 친구가 줄줄이 있고, 한국에서 교수하고픈 마음도 없이 운동장에서 농구하고 테니스 치면서 놀았어도 서울대 교수가 되었나. 밤이면 미국인 친구들과 모여 미국을 칭찬하고, 미국을 그렇게 잘 알아서 '친미주의자'가 되었는가.
그건 그렇고, 김 교수는 지금 주한미군 사령관님께 무얼 고자질하자는 것일까? 젊은이들에게 반미를 부추기는 미국전문가 교수는 미국에서 그렇게 공부를 한 사람이니 별로 개의치 말라는 것인가.
이제 그의 '고자질'이 도가 지나쳐 간다. '김정일이' 남한을 적화한다고 해도 미국은 안 망하지만, 미국에서 불법으로, 공짜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추악한 (김 교수는 영어의 ugly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엄마들과 한국인 때문에 미국이 망할지도 모른다며 주한미군 사령관님께 '일러바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이 진짜 김정일이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단다.
"이게 진짜 김정일이 바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지요. 미국 공립학교에 가서 '여기 살러 왔다'고 거짓말하고 방학 동안 영어 배우게 하는 한국엄마들이 늘고 있습니다."
우선 이 말이 진실인지는 둘째치고, 그래서 주한미군 사령관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는 주문인가.
"세금을 낸 것도, 조상이 미국 독립전쟁 때 싸운 것도 아닌데 불법으로, 공짜로 상당히 억제될 수 있을 것이다. 당당히 다니다가 의아해 하는 순진한 미국인 선생님들을 뒤로하고는 유유히 돌아옵니다."
내가 한국어가 부실해서 그런지 해독이 잘 안 된다. 누구 나에게 이 말의 의미를 좀 해석해주기 바란다. 이제 잘못하면 주한미군 사령관님께서 본국에 보고서를 올려 불법을 저지르는 추악한 한국엄마와 한국인들을 잡아들이게 생겼다.
"저는 김정일이 부시보다 머리는 확실히 좋고, 한국인이지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역사상 '유례가 적은' 독재자입니다. 자기 국민을 굶겨 죽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소에 넣었습니다."
이건 어느 '반공 백일장'에서 베낀 글인가. 요새는 중학생도 글을 이렇게는 안 쓸 것이다.
"미국이 마지막 수단으로 북한의 핵시설을 재래식 무기로 폭격하려 한다면 적어도 남한인 한 명은 찬성합니다."
"전쟁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김정일과 싸울 의사가 있는 남한군에 자원 입대할 것입니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며, 미국에 호의적이고, 반 김정일주의자입니다(I am pro-South Korea, pro-America, and anti-Kim Jong Il)."
남한인구 4700만 명 중 혼자가 되더라도 미국의 북핵시설 폭격을 찬성한다니 욕은 나오지만 소신 하나는 대단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런 교수의 입을 빌려 '미국의 북핵시설 폭격 찬성'이란 여론을 조성해서 무엇에다 쓰려 하는 것일까?)
김 교수, 전쟁 나면 부디 자원입대하기 바란다.
혹시라도 주한미군 사령관님께서 한글을 모르셔서 불편해 하실까 영어로 써 드리는 자상함과 자신에게 어떤 박해가 가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pro-South Korea', 'anti-Kim Jong Il'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김 교수, 정말 대단하다.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김 교수, 혹시 그 시론이 <조선일보>에 실렸다고 사람들의 칭찬을 들었는가? 부러워하던가? 김 교수는 물리학에는 일가견이 있을는지는 모르나 세상살이에는 수준 미달이다.
그러니 그 어줍잖은 지식과 지혜로, 조선일보를 이용해 (아니 이용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관계임은 분명하다. 그 어떤 경우에도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은 김 교수에게 있다) 엉성한 글로 '시론' 망신시키며 스스로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시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자보와 하니리포터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