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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노무현 정부의 문화부장관에 이창동 감독이 내정되었다”는 TV뉴스를 접했다. 기자는 이 뉴스를 접하면서 두 번 안도했다. '정치인이 아닌 문화인이 문화부장관이 되었다’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에 우선 안도했다. 또한 ‘문성근이 아닌, 다른 사람이 문화부장관이 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안도했다. 문성근은 약속을 지켰다.
지난 대선 그의 연설은 기자를 사로잡았다. 한국사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을 그는 연출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대의명분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보신주의(保身主義)가 판치는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는 TV찬조연설 막바지에 분명히 말했다.
사람들이 “문성근씨, 언제 출마하세요?”라고 묻는다고. 그는 대답했다. “선거가 끝나면 영화인으로 돌아가겠다”고. 기자는 정말 행복했다. 그건 그가‘누구를 지지하는가’와 연관짓기 이전의 문제다. 그건 ‘페어플레이’였다.
어린 시절 나의 영웅, 박철순
내 방에는 한 남자의 사진이 액자에 걸려있다. 그 남자의 닉네임은‘불사조’다.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불멸의 새,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새. 사람들이 불사조라는 닉네임을 붙여준 그 남자의 이름은‘박철순’이다. 기자는 이 남자보다 더 근사한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야구선수다운 야구선수이고, 관중과의 약속을 지킨 페어 플레이어다. 그는 ‘마지막까지 그라운드에 남아 진정한 스포츠맨이 무엇인가’를 어린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어린 시절, 기자도 “무언가를 하든 꼭 그처럼 하리라”다짐했다.
고등학교 시절, 보충수업을 빼먹고 간 야구시합에서 기자는 ‘마이웨이’를 들었다. 해태와의 경기였는데, 오랜 투병기를 이기고 완투를 한 그는 승리투수가 되었다. 야구전문가들이 “이제 그의 야구인생은 끝났다”고 입을 모으던 시절이었다. 잠실 경기장에는 프랭크 시네트라의 ‘마이웨이’가 울려 퍼졌다.
문성근과 박철순의 공통점
세월은 흘러 나이가 들면서 세상이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공명정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이 어릴 적 읽었던 전래동화처럼 권선징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자는 세상과 싸울 수 있는 무기를 골라야 했다. 그것은 바로 ‘글’이었다. 아직도 그 꿈에 다가가는 길은 멀지만, 진실한 ‘글’과 ‘말’만큼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위대한 야구선수는 박철순 말고도 많다. ‘나고야의 태양’도 있고, ‘바람의 아들’도 있다. ‘광(光)속구’를 던지는 박찬호’도 있고, ‘Born to Kill (BK. ‘삼진을 잡기 위해 태어난 남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김병헌도 있다.
하지만 왜 박철순일까. 그는 관중과의 약속을 지킨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야구선수로서 관중이 원하는 모습을 알고 있었다. 늘 진실은 필드에 서있는 사람들이 더 잘 아는 법이다. 다만 탐욕과 타협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를 막을 뿐. 박철순은 마지막까지 필드에 남았고, 진실한 야구를 했다.
그는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의 고집을 지켰다. 이제 문성근에게서 그러한 고집과 약속의 정신을 본다.
문성근의 고집은 아름답다
“부처님도 자리에 따라 설법을 달리 했다”는 말을 기자는 두 번 들었다. 한 번은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였고, 한 번은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였다. 이제 그런 말은 그만 집어치어라. 진실하게 고집을 지키려고 하고, 말을 바꾸려면 반성을 해라. 그것만이 페어플레이다.
문성근의 고집은 아름답다. 만약 그가 이번에 문화부장관이 되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가 되었을 것이다. 어떤 변명으로 상황을 얼버무린다 해도 그건 옳지 않은 일이다. 심정적으로는 기자도 문성근만큼 문화부장관에 어울리는 명사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말은 지켜지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
상황논리에 따라 교묘하게 재해석되어지고, 다른 뜻으로 변질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한국사회는 화자의 입장을 고려하는데 너무나 이해심이 많다. 이제 괜한 말장난은 집어치우고, 약속을 지킨 남자에게 박수를 보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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