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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수계의 석교
청계천 수계의 석교
중학교(中學橋)이다. 본문에는 이 다리의 이름이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고 난간의 모양 등만 잔뜩 설명하고 있으나 <서울육백년>(1996)에 수록된 사진자료를 통해 이것이 '중학교'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중학교
중학교
경복궁의 동편을 흘러 청계천으로 흘러가기까지에 걸쳐있는 다리 중의 하나이며 구체적인 명칭은 적시되어 있지 않으나 도리(桁)에 '戶橋辛未改造'라고 새겨져 있다 하였으니 '호교(戶橋)'라고 불러야 할 듯싶다.

호교 추정
호교 추정
무교동(武橋洞)에 있는 다리라고만 되어 있어 그 명칭은 알 수 없다. 하천폭이 넓어져 한쪽은 '콘크리트' 부분으로 덧붙인 상태이다.

무교동 소재
무교동 소재
대광통교(大廣通橋) 즉 광교(廣橋)이다. 이 다리의 사진자료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으나, "전차 통과로 다리폭이 넓어져야 했으므로 교각은 콘크리트 기둥으로 고쳐져 난간만 원래 모습대로 남아있다"고 적어놓은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대광통교
대광통교

대광통교 난간
대광통교 난간
장통교(長通橋) 즉 장교(長橋)의 모습이다. 다리의 양끝에 도로에 걸쳐있는 부분은 그 폭이 넓다.

장교
장교

장교 세부
장교 세부
수표교(水標橋)이다. 청계천에 놓여 있는 다리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다리 서쪽 편으로 하천 가운데에 '수표(水標)'가 설치되어 있었다.

수표교
수표교

수표
수표
하교(河橋)이다. 양쪽 끝에는 '콘크리트' 다리가 덧붙여졌다.

하교
하교

하교 세부
하교 세부
효교(孝橋)이다. "다리의 양옆에는 최근 하천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가운데 부분은 예전 그대로 두고 콘크리트를 덧붙였다"고 설명한 구절이 보인다.


효교
효교

효교 세부
효교 세부


스기야마와 '조선고건축잡신'에 대하여

스기야마 노부조(杉山信三; 1906-1997)는 일본 교토(京都) 태생으로 교토고등공예학교 도안과를 나와 교토부고사사수리(京都府古社寺修理) 기수와 조선총독부 기수를 지냈고, 해방 이후에는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 헤이조궁적발굴(平城宮跡發掘) 조사부장, 긴키대학(近畿大學) 교수, 교토시매장문화재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그가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에 펴낸 <조선의 석탑>은 비교적 인용빈도가 높은 조사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984년에는 <한국의 중세건축>이라는 저술도 남겼으며, 91세 되던 1997년 12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일찍이 그가 1935년 9월 이후 <사적과 미술>에 연재한 '조선고건축잡신'은 1940년 12월에 이르기까지 모두 12회에 걸쳐 6가지 주제의 글을 담았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대충 이러하다.

'제1신 경운산 청평사; 제2신 천마산 관음사 부 대흥사; 제3신 경성의 석교; 제4신 부여오중석탑파; 제5신 조선의 격협간; 제6신 창녕의 보물을 보다' 등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연재물에는 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해당 조사지역에 대한 비교적 세밀한 사진자료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나름의 자료가치는 없지 않아 보인다. / 이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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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와 문화재관련 자료의 발굴에 심취하여 왔던 바 이제는 이를 단순히 취미생활로만 삼아 머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알리고 싶은 얘기, 알려야 할 자료들이 자꾸자꾸 생겨납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얘기이고 그것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 세상에 거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에 관한 얘기들을 찾아내고 다듬고 엮어 독자들을 만나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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