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라 장이 오는 3월16일 링턴쎈터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링컨센터가 시리즈 연주회로 마련한 전세계적 다섯거장의 리사이틀 중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다. 3월16일 일요일, 오후 3시다. 뉴욕에서 공연을 많이 했지만 대부분이 협연이었다. 이번에는 아예 독주회인 데다 거장 시리즈라 느낌부터가 다르다.
하루 하루가 꽉 짜인 스케줄에 매인 몸이라 차분히 시간 약속해서 인터뷰할 사정이 아니었다. 그러니 어머니하고 집에 돌아가는 사라 장을 셀룰러폰으로 연결해서 셀룰러 인터뷰를 했다. 중간에 전화가 꼭 세번 끊어졌고, 그때마다 전화를 다시 걸고 해서 인터뷰를 마쳤다.
링컨센터 에버리 피셔홀에서 갖는 이번 거장시리즈 독주회에서 사라장은 라벨의 소나타, 생상의 바이얼린 소나타 1번 D단조, 그리고 프랭크의 소나타 A장조를 연주한다. 올해하고 내년 내내 연주회 스케줄이 풀로 차 있는 사라는 이번 3월16일 공연을 앞두고도 3월9일, 10일, 13일과 14일 계속 연주회가 있어서 큰 연주회를 앞두고도 마이크로(?) 스케줄에 소홀할 수가 없다.
"연주여행 중일 때는 하루 네시간 다섯시간 바이올린을 하지만 보통 때는, 특히 집에 머물러 있을 때는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그런 경우, 하루 20분 정도 연습하고 마는 수도 있지요."
하루 생활이 비교적 단조롭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EMI에 전속계약이 돼 있고, 스케줄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 사람들이 매끄러운 일정관리를 하기 때문에 그저 하자는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콘서트 투어에는 어머니 아니면 아버지가 동행하는 데 양친이 모두 같이 가는 때도 있다고.
40대 후반인 아버지 장민수씨는 필라델피아 템플대학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다. 어머니 장명준씨가 세살때부터 피아노를 시켜서 음악을 알게 됐고, 네살때 쿼터짜리 바이올린을 어깨에 얹기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음악재능이 피내림을 했다.
"Oh..., forever!"
아버지가 언제부터 템플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쳤냐고 묻자, 무척 오래됐다는 얘기를 했다. 성격이 명랑하고 활달하다. 거침이 없다. 요즘은 한국이고 미국이고 간에 구김없이들 자라기 때문에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무언가 성취를 맛본 사람들 특유의 자신감같은 것이 전달돼 온다.
미국에서 난 소위 2세지만 한국말을 잘 한다. 액센트도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 발음이 좋아서 그렇지, 사실은 다 알아듣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까 감안하시라는 어머니의 사전주의가 없었더라면 기자도 깜빡 속을 뻔 했다. 아닌게 아니라, 어떤 부분은 질문을 영어로 반복해 줘서야 대답이 나왔다.
필라델피아산(産) 사라장은 네살때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1년도 채 못된 싯점에서 지역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 떡잎부터 달랐다. 그리고 여덟살 때, 주빈 메타와 리카어도 무티한테서 오디션을 받고는 바로 뉴욕필하모니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각각 협연주자로 계약을 했다. 동시에 줄리어드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었다. 사라장의 천재성이 결국 스스로의 앞날을 보장해 줬겠지만, 이후 사라장은 음악세계의 '어린 신데렐라'가 됐고 앞날은 순조롭게 열렸다.
상이란 상은 다 받았다. 그때 그때 상줄 명분만 마련되면 상을 주는 기관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손만 내밀면 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서 이번 공연장소인 에버리 피셔 명의로는 일찌감치 링컨센터에서 'Avery Fisher Career Grant'란 명목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그 직후 1993년에는 그라마폰(Gramophone)에서 '올해의 젊은 예술인' 상을 받았다. 다음 해. 1994년- International Classical Music Awards에서 '올해의 신인상'에 해당하는 'Newcomer of the Year '상을 받았다.
20대초반인 사라장은 이제 세계적인 연주가로 찬란한 조명을 받고 있다. 뉴욕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클리블런드 오케스트라, 로스엔젤러스 필하모닉, 샌프랜시스코 심포니, 피츠버그 심ㅍ니 등 미국국내 오케스트라와는 모두 협연을 가졌다.
물론 유럽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버얼린 필하모닉, 비엔너 필하모닉, 로이얼 컨서즈보우 오케스트라, 라이프찌히 오케스트라,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 런던필하모닉 등 거의 모든 교향악단과 협연을 가졌고, 대니얼 바렌보임, 콜린 데이비스경, 버나드 하이팅크, 제임스 레빈, 로린 마젤, 주빈 메터, 리카어도 무티, 앙드레 프레빈 등 거장 지휘자들과 같이 호흡을 맞춘 것도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급기야 1999년 5월에는 기악연주자 최고의 상 중 하나인 영예의 에버리 피셔상(Avery Fisher Awards)을 거머쥐게 된다. 1992년 4분의1크기 바이얼린으로 연주해서 녹음한 데뷰(Debut)라는 이름의 레코드가 빌보드 챠트에서 베스트셀러 클래식으로 랭크된 이후 불과 7년만에 그 최고봉에 오른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열다섯살 짜리 동생 마이클이 있다. '마이클 장'이니 혹은 테니스 스타 마이클 장으로 혼동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동일인물은 아니다. 단 동생 마이클도 테니스 실력은 수준급이다. 여가를 이용해서 사라도 동생하고 테니스를 한다. 물론 이길 수 없다면서 웃었다.
"Of course, yes."
정경화 뒤를 이을 차세대 바이올린연주자로서의 명성을 의식해서, 정경화씨하고는 잘 알고 지내는지 물었더니, 다시 명쾌하게 답한다. 한마디로 대단한 연주자라는 평과 함께.
지금까지 열서너개의 음반을 내놓은 사라장. 오래 남게된다는 생각을 하면 리코딩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청중의 반응이 피부에 느껴지는 실황연주가 더 매력적이란다. 그래서 요즘은 리코딩과 실황의 매력을 모두 취할 수 있는 실황녹음 CD 제작을 선호한다는 말도 했다.
한식 좋아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연주여행때는 음식을 가리고 그러면 불편하기 때문에 주로 미국식으로 식사를 하지만 특히 과일류를 즐겨먹는다는 사라장. 음식에서라도 한국인을 느껴보고자 했던 기자한테는 약간 실망이다.
혹 음악 외에 다른 길이 있었더라면, 어떤 길을 걷고 싶었었느냐는 우문을 던졌다. 갈데 없는 우문이었지만, 역시나.
"음악을 안 했다?... 바이얼린을 안했거나 연주자 길을 안 택했을 때, 이런 질문 같은 데요, 아마 그랬더라도, 역시 음악 리코딩 관계일을 했거나, 어쨌든 음악하고 관련있는 일을 했을 거예요"라는 것이 사라장의 현답이다.
음악. 시간의 예술이라고 했던가? 같은 예술이라도 배치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도 보고, 그렇게 해서 더 좋은 작품을 빚어볼 수 있는 미술 쪽 공간예술하고는 달리, 그러니 소위, "What if"가 없이 단번에 흠없는 완벽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 가치 자체가 상실되는 것이 음악일지도 모른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기자에게는 멀리 펜실베니아 어딘가에서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인터뷰에 응하는 사라가 인생을 시작하는 어린 처녀로 느껴지질 않고, 원숙하고 위대한 음악성의 대가로 다가왔다.
그렇기 때문에 링컨센터에서 다섯명만을 모시는 대가시리즈에 사라장을 초청했겠지. 사실 엄청난 일 아니겠는가.
"Good luck and thank you."
인터뷰어로서 건넨 안녕인사였지만 진심으로 사라장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비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