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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들에 둘러싸인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전경들에 둘러싸인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 송인걸
"추운겨울을 길바닥에서 났는데 이제는 여기서도 내쫓다니.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우리는 어떻게든 우리 집을 찾아낼 거여!"

대전 용두동 철거민 225일째 노숙, 차가운 겨울바람이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긴 밤은 춥기만 하다. 27일, 오늘도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용두동 철거민들은 오후 5시경 이른 저녁을 먹었다.

저녁식사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준법질서'라는 글씨가 새겨진 모자를 눌러쓴 중구청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행정대집행 명령서를 읽어 내려갔다.

철거민들은 "밥 먹는데 뭐 하는 짓"이냐며 행정대집행 명령서를 찢었고, 중구청 직원의 "시작해"라는 소리와 함께 철거민들의 임시숙소는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중구청 앞 길거리 임시숙소마저 빼앗긴 철거민들
중구청 앞 길거리 임시숙소마저 빼앗긴 철거민들 ⓒ 송인걸
겨우내 뜨거운 물통 하나 품에 안고 추위를 달래야했지만 철거민들에게 임시숙소는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그런데 며칠 전 내린 비로 천장이 새고 허물어져 보수공사를 한 철거민들의 집은 그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100여명의 철거반에게 처참히 뜯겨졌다.

60, 70대 노인이 대부분이던 철거민들은 밥과 반찬을 던지며 저항했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철거반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던 일부 주민들은 실신해 119 구급차로 후송되기도 했다.

'중구청 앞 철거민 임시숙소 철거'는 채 15분이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식기며 옷가지, 이불,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지만 그것이 전부인 철거민들은 또 한 번 피울음을 쏟아냈다. 중구청 직원의 멱살잡이에 저항하느라 조끼가 다 찢어졌다는 박상순(여.54)씨는 이불 밑에 넣어둔 병원비 200만원을 찾고 있었다.

100여명의 철거반이 동원된 철거는 15분만에 끝이 났다.
100여명의 철거반이 동원된 철거는 15분만에 끝이 났다. ⓒ 오마이뉴스 정세연
"우리 주민 할아버지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수술비가 없대. 수술 안 하면 위험한 상황이라 우리 아들한테 200만원을 꿨는데. 어제 받아서 오늘 입금을 했어야는디 못해서 이불 밑에 넣어놨드만 저 놈들이 죄다 가져갔어. 내 돈 찾아내라니까 저기(철거민들의 부서진 세간을 실어놓은 차) 가서 찾으래. 저기서 무슨 수로 찾어 그래."

"서민을 위한다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나 됐다고 늬들(중구청)이 경찰하고 용역까지 동원해 강제 철거를 해. 노무현 정권 개혁이고 뭐고 다 틀렸어. 길바닥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여."

철거민들의 부서진 세간은 기무대 자리에 버려졌고, 철거가 끝난 이후에도 전경 300여명은 철거민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당장 갈아입을 옷 하나 남지 않은 철거민들은 분노했다. 30여명의 철거민들은 물과 흙을 뿌리며 분노를 터뜨렸고 이내 중구청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몇 채 남지 않은 이불을 챙기고 있는 철거민들
몇 채 남지 않은 이불을 챙기고 있는 철거민들 ⓒ 오마이뉴스 정세연
철거민들은 중구청 앞 도로에 누워 시위했고, 대전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이내 전경들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그리고 공대위 김동중 집행위원장과 주민 한 명은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현행범으로 체포, 연행됐다. 1시간 이상 계속된 철거민들의 저항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오늘밤에는 당장 어디서 주무세요?"라는 물음에 철거민들은 "여기(길거리)에서 자야지 뭐. 아니면 중구청 마당으로 가든가"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철거민들의 긴 하루가 힘겹게 저물고 있었다.

한편 중구청 관계자는 "그동안 보도 무단 점거로 주민들의 통행 불편이 컸던데다 이날 오후 철거민들이 텐트의 증축 작업을 벌여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강제 철거에 나섰다"며 "철거를 위해 2차례에 걸쳐 계고장을 보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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