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승봉리 마을 전경
ⓒ 최윤미
이렇게 말 많은 사람들은 처음입니다. 저녁 참에 군불로 넣을 나무를 줍다가도, 낮 동안 내다 넌 메주를 돌보다가도, 심지어 좁은 논둑길로 경운기를 몰고 가다가도, “안녕하세요” 한 마디에 수십 마디의 말씀을 되돌려 주십니다.

어디서 왔느냐, 어디를 가느냐, 거기는 이렇게 가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에 승봉도 사람들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까지 듬뿍 얹어서 말입니다. 각박한 도시 인심에 익숙해진 때문인지 잠시 몸둘 바를 몰라하던 마음도 이내 어린 시절을 보낸 외가댁 마을에 돌아온 것처럼 활짝 열렸습니다.

낯선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에 풀어놓게 만드는, 이런 친절한 말들이라면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소나무숲 산책로
ⓒ 최윤미
승봉도 사람들이 이렇게 인심좋고 넉넉한 까닭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때묻지 않은 농심(農心)이 그대로 남았달까요. 지나가던 길손이 하룻밤 묵어가길 청하면 가난한 살림에도 방 한쪽을 내주고, 된장찌개에 꽁보리밥일 망정 밥상을 나눠주던 우리 옛날 농촌의 인심을 승봉도 사람들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승봉도는 사나운 바다와 싸워 살아가야 하는 섬이라기 보다는, 소출이 넉넉한 그래서 모든 것이 넉넉한 농촌 마을을 더 많이 닮아 있습니다.

승봉도 선착장(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승봉리)에 내려서, 5분 정도 걸으면 70호 정도 되는 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옵니다. 빨갛고 노란 지붕을 가진 집들은 띄엄띄엄 있지 않고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이마를 맞댄 채 모여 있습니다.

마을을 중심으로 뒤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논들이 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논 한가운데 대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승봉도 초등학교를 품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150여명 정도 되는 주민들은 벼와 고추, 콩, 포도 등을 기르며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삶을 꾸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 동굴 안에서 바라본 바다
ⓒ 최윤미
“승봉도는 농토가 많아서 1년 농사를 지으면 2000가마 정도 소출이 나요. 그것이면 섬사람들 전부가 10년을 먹고도 남을 정도지요. 그래서 주민들이 타 섬에 비해서는 살림살이가 다들 넉넉한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가. 악한 사람 하나가 없고 모두가 착하고 순수해요. 담장 같은 거 없어도, 피서철에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다닐 정도로 범죄 없기로 유명한 마을이에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임윤직 이장님(67세)의 말씀을 듣고 있자면, 여기 승봉도 같은 낙원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다들 살기가 넉넉하고, 헛된 욕심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으면 거기가 바로 지상 낙원이니까 말입니다.

그런 승봉도를 낙원으로 완성시켜 주는 것은 바다와 들의 모습을 함께 간직한 풍부한 자연입니다. 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소나무 숲은 사이사이에 논과 저수지를 품고서, 어느 쪽 길을 선택하든 해변과 이어지는데 그 숲길은 한가로운 산책과 산림욕을 겸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섬에서 만난 승봉도 홈페이지 운영자인 현승덕씨는 승봉도 여행의 묘미를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 하늘로 닿는 문, 남대문바위
ⓒ 최윤미
“승봉도는 작아서 아름다운 섬입니다. 차가 없어서 걸어서 다니다 보면 섬의 구석구석에 감춰진 아기자기한 멋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섬다운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지요. 해안선을 따라서는 동굴이나 특이한 바위들이 숨겨져 있는데 그것들은 물이 빠졌을 때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운이 따라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휴식과 색다른 경험을 줄 수 있는 섬입니다.”

현승덕씨의 말처럼 승봉도 해안선을 따라, 소나무 숲길을 따라 섬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즐거움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면 금세 원시의 자연이 펼쳐지는데, 동굴안에서 내다 본 바다는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이웃섬 자월도와 촛대바위, 그리고 점점이 떠있는 배들은 깜빡 현실감을 앗아가기에 충분했습니다.

▲ 모래가 고운 이일레 해변
ⓒ 최윤미
하지만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서린 남대문 바위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마을 주민 여러분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로 쭉 가면’ 분명히 나와야 하는 건데 미로 같은 숲길을 헤매고, 해안선 끝까지 돌아가 목을 있는 힘껏 빼고 살펴보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김영근(61세) 아주머니께 듣고서야 알 수 있었는데 사리, 조금, 간조 등의 용어를 들어 설명해 주셨지만, 요약하자면 승봉도의 해안선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대문 바위 역시 물이 빠졌을 때만 걸어서 갈 수 있기 때문에 열에 아홉은 찾는데 실패한답니다.

이 사실을 듣고서 다음날 물때에 맞춰 찾아간 남대문 바위는 퍽 멋져 보였습니다. 조선시대 어느 때에 다른 섬으로 시집을 가게 된 한 여인이 자신의 연인에게 사랑을 맹세하고 함께 이 문을 넘어 영원한 사랑을 택했다는 그 전설 탓일까요.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찾아오는 연인들이 심심치않다고 합니다.

▲ 저무는 승봉도의 하늘
ⓒ 최윤미
그런 연인들에게라면 이일레 해변도 사랑을 키우기에 좋은 곳입니다. 마을을 가로질러 섬의 한켠으로 빠져나가면 나타나는 길이가 1300미터에 달하는 깨끗한 해변입니다. 마을에서 느낄 수 있었던 농촌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곳인데, 황윤상(72세) 할아버지의 말씀을 빌리면 이 해변은‘물이 깨끗하고 10미터, 20미터까지 나가도 야트막해서 아이들이 놀기에 참 좋다’ 합니다.

워낙 섬이 작고 날씨와 뱃길이 맞아야 승봉도에 올 수 있는 탓에 여름철에도 그다지 붐비지는 않는답니다. 가족 단위로 조촐하게 찾기에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주민여러분, 오늘도 건강하시고 활기찬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대부도에서 9시 30분에 배가 있으며, 내일은 영농교육의 날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마을 경로당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퇴비 거름을 신청하실 분은 신청해 주세요.”

승봉도에서 돌아오던 날,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이장님의 아침방송을 들으며 승봉도에 다가올 봄을 생각했습니다. 매서운 겨울 속에서 다가올 봄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는 승봉도. 그 섬에 모내기를 할 무렵, 산과 들이 초록으로 뒤덮일 무렵 승봉도의 봄은 넉넉한 사람들의 인심만큼이나 풍성하고 따뜻할 거라 생각해 봅니다.

▲ 승봉도 지도
ⓒ 최윤미
승봉도 가는 길 - 인천 연안부두에서 34㎞ 떨어진 승봉도는 쾌속선을 타면 1시간 30분, 일반 여객선을 타면 2시간 30분이면 자월도, 소이작도, 대이작도를 거쳐 닿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왕복 하루 1편 밖에 없지만 여름철에는 3∼4편 정도 운항합니다.

승용차는 가져갈 필요가 없으며, 승봉도 여행정보는 승봉도 홈페이지(www.myseungbongdo.co.kr)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보 쌍용 3월호 <그 섬에 가고 싶다>에도 실려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