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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 <조선>에 '하늘이 울리고 땅이 떨릴(驚天動地)' 일이 벌어졌습니다. 네티즌들이 대부분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지만 말입니다.

[조선데스크]에 실린 진성호 사회부 차장대우의 '노무현식 언론개혁'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오마이뉴스>와 단독 회견한 것을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개혁을 비판한다고 쓴 글이지요.

▲ '오마이뉴스'를 명시한 조선일보 2월 25일자 <조선데스크>
그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논평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차장대우'가 쓴 글이어서 그랬을까요? <오마이뉴스> 문성 기자가 '가판구독 금지시키는 게 잘못인가'는 글에서 잠깐 언급했고, <우리모두> 김현'님이 '<방씨조선>의 내부고발자 진성호 사회부 차장대우'라는 글에서 <조선>이 노무현 언론관을 비판한답시고 제 언론관을 폭로하고 말았다고 썼습니다. 모두 좋은 글들입니다.

하지만 그 글의 역사적 의의는 따로 있습니다. 핵심은 '<조선> 논설팀'이 처음으로(기사에서는 가끔 인용사례가 있었지만...편집자 주) 인터넷 매체의 기사를 인용하고 논평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감이 오지 않습니까? 드디어 <조선>'이' 인터넷 신문 기사'를' 비판했단 말입니다. 처음으로 주격 조사와 목적격 조사가 바뀐 것이지요.

지난 몇 년간 네티즌들은 <조선>을 모니터해 왔습니다. 매일같이 기사 및 논설 비평을 홍수같이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전혀 대꾸하지 않습니다. '무시' 전략입니다. 이한우 논설위원이 평기자 시절에 토론을 좀 하려는가 싶더니 금방 물러나 버렸습니다. 자꾸 상대해 주면 '오히려 키워' 준다는 게 명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 매체를 키워주지 않겠다'는 <조선>의 각오는 인터넷 매체들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인터넷 매체들의 급증하는 영향력이 적어도 <조선>이 '의도적으로' 도와준 덕분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를 무시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선>인들은 대선 기간에 뼈저리게 느꼈겠지요. 그들은 이미 대선의 주요 '플레이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랑비에 옷 젖듯 <조선>에도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들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일반 기사나 독자 투고에 국한된 일이었습니다. <조선>의 사설/오피니언 난만은 철옹성이었습니다. 사설이든 칼럼이든, 거기서 인터넷 매체의 기사가 논평되기는커녕 매체들의 이름조차 실명으로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대<조선>의 논설 팀이 그런 '같지도 않은 언론들'의 이름조차 불러줄 수 없다는 강렬한 의지가 읽혔습니다.

<오마이뉴스>가 '2억달러 대북송금' 기사로 특종을 잡았을 때 <조선>의 인터넷 매체 무시전략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 기사를 받아쓰면서도 <조선>은 출처를 뭉개버렸습니다. (<오마이뉴스>가 대북송금 관련 2번째 특종 '2억달러는 중도금...모두 5억달러 줬다'는 보도를 했을 때는 '오마이뉴스'라고 명기했지만....편집자 주) 언론계에서 이런 일은 아주 심각한 윤리 문제입니다. 남의 기사를 내 이름으로 '표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사소송 뿐 아니라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표절'은 '도둑질'이니까요.

그러나 <조선>, 특히 <조선>의 논설 팀에게는 그런 게 전혀 문제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는 <오마이뉴스>같은 인터넷 매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절정'이 그렇듯이, 그 이후에는 내리막이 있을 뿐입니다. 물이 뜨거워지다가 임계점에 달하면 수증기로 날아가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조선>입니다. 인터넷 매체와 그 기사를 무시해 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지요. 마침내 [조선데스크]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라는 실명과 그 기사를 인용했습니다. 인터넷매체가 드디어 <조선>의 사설/오피니언 난의 철옹성을 뚫은 것이지요.

사실 인터넷 매체의 이름이 <조선> 사설/오피니언 난에 처음 나타난 것은 그보다 이틀 전의 일입니다. 23일 사설의 첫머리에 <오마이뉴스> 이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이것이 인터넷 매체가 고유명사 자격으로 <조선> 사설에 등장한 첫 번째 일입니다. <조선> 인터넷 판이 제공하는 검색 기능을 통해 재삼 재사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런 게 뭐 그리 대단하냐구요? 맞는 말입니다. <조선> 사설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대통령 당선자의 '단독 회견'을 논평하면서 그 회견자를 명시하지 않을 방법이 있었겠느냐고요? 그것도 상식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런 상식이 <조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 오마이뉴스를 '한 인터넷신문'으로 표기한 조선일보 2001년 2월 21일자 사설.
<조선> 사설은 대통령 당선자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 인터넷 매체와 단독 회견을 했어도 그 매체의 이름을 쓰지 않았습니다. 2001년 2월 <오마이뉴스>가 김대중 대통령을 단독 회견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사설의 첫 두 문단은 이렇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 인터넷신문과의 회견에서 언급한 언론개혁 관련 부분은 최근 언론사 세무조사 배경과도 무관치 않고 앞으로의 언론대책 의중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다. 김 대통령은 ‘정부는 실정법에 의해 경영상의 문제만을 하고, 편집 문제와 공정보도 문제는 여야, 언론계, 시민단체가 국회에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어느 매체와 인터뷰하든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간신문과 지상파 방송에 세무조사와 공정거래 조사를 집중하는 미묘한 시점에서 대통령이 사이버 매체를 통해 언론의 핵심인 「편집과 공정성의 문제」를 논했다는 것은 결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더욱이 언론의 위상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한 것은 대통령의 소관사항도 아니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조선> 사설, 2001년 2월21일).

그 단독회견은 <오마이뉴스>가 한 것입니다. 창사 1주년 기념 회견이었는데 김대통령이 호응한 것이었지요. 정부는 이미 그보다 한달쯤 전에 4개 인터넷 신문의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취재를 허용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도 인정한 인터넷 매체의 실체성을 <조선> 사설만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 인터넷 매체' 혹은 '사이버 매체'로 부를 뿐입니다.

그로부터 만 2년 후, <조선>은 다시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렸습니다. 이번엔 노무현 당선자가 <오마이뉴스>와 단독 회견을 가진 것입니다. 이번에는 <조선>논설팀이 태도를 바꾸(어야 하)기로 결심(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2월23일 <조선> 사설입니다. 다음은 그 첫 문단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22일 ‘오마이 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언론관과 실천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 당선자는 “정권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끊고 원칙대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과거 정권들처럼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소주파티 등 향응을 제공하며 보도를 빼달라는 식으로는 대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선> 사설, 2003년 2월23일)

2년전 <조선>에서 '한 인터넷신문'에 불과 했던 <오마이뉴스>가 이제사 제 이름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어떤 오기(傲氣)가 읽힙니다. <오마이뉴스> 이름에 작은따옴표를 쓴 것이 그것입니다. 작은따옴표는 흔히 생소하거나, 중요하거나, 혹은 필자의 동의사항이 아님을 표시할 때 사용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역할을 인정받은 신문이 생소할 리 없겠습니다. <조선>이 <오마이뉴스>를 중요하다고 여길 리도 없지요. <오마이뉴스>의 따옴표는 필자의 심기가 불편함을 표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불과 이틀 후에 나타난 [조선데스크]에서는 그 작은따옴표도 사라졌습니다. 다음은 그 첫 두 문단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많은 신문·방송들을 놔둔 채 인터넷매체인 오마이뉴스와 당선자 신분으로 22일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노 당선자가 대통령 당선 이후 국내 언론과 국정현안 전반을 놓고 당선자의 집무실에서 면대면 정식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이 매체는 밝혔다.

"오마이뉴스가 23일 톱뉴스로 보도한 노 대통령 인터뷰 메인기사 헤드라인은 이랬다. “청와대·정부 신문가판 구독금지/기사 좀 빼달라는 ‘소주파티’ 안해/정권과 언론의 유착관계 끊겠다.”" (<조선>, [조선데스크]노무현式 언론개혁, 2003년 2월25일)

<오마이뉴스>에 따옴표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이름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고, <오마이뉴스>의 단독 인터뷰가 "톱뉴스"라고 자상한 설명까지 붙였습니다. 또 같은 글에서 다른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그 기사까지 길게 인용됩니다. 이 정도면 인터넷 매체에 대한 <조선> 논설팀의 태도가 완전히 정상화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03년 2월25일. 기억해 둘만한 날입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인터넷 매체의 실체성을 <조선>논설팀의 입으로 직접 선언해 준 날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2003년 2월25일자 [조선데스크] 
노무현式 언론개혁 ........ 秦聖昊 

노무현 대통령은 그 많은 신문·방송들을 놔둔 채 인터넷매체인 오마이뉴스와 당선자 신분으로 22일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노 당선자가 대통령 당선 이후 국내 언론과 국정현안 전반을 놓고 당선자의 집무실에서 면대면 정식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이 매체는 밝혔다. 

오마이뉴스가 23일 톱뉴스로 보도한 노 대통령 인터뷰 메인기사 헤드라인은 이랬다. “청와대·정부 신문가판 구독금지/기사 좀 빼달라는 ‘소주파티’ 안해/정권과 언론의 유착관계 끊겠다.” 

3개의 헤드라인을 뒤에서부터 하나씩 훑어 보자. 먼저 세 번째 헤드라인. 노 대통령은 “새 정부에서는 기존의 정권과 언론의 유착 관계를 완전히 끊고 원칙대로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기존의 DJ정권과 유착관계가 있는 언론은 어디일까. 또한 앞으로 노 정권과 권언유착 가능성이 농후한 매체는 어디일까. 

오마이뉴스와 경쟁관계에 있는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은 24일 톱뉴스로 ‘노무현정부와 인터넷언론’이란 글을 띄웠다. 

“‘인터넷=노무현’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만큼 거의 모든 인터넷언론들은 친노무현적 성격을 보였다. (중략) 앞으로 노 정권은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은 아예 외면한 채 방송과 인터넷에 크게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청와대 비서진 구성 등에서 그러한 의도가 읽힌다. 또한 권력에서 흘러나오는 고급 정보의 흐름이 이 같은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중략) 벌써부터 일부 방송은 이전의 보도 태도를 벗어나 돌연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가 하면, 모 인터넷언론은 관영, 모 인터넷매체는 반관반민이란 농담까지 나돌고 있다고 한다.” 이 기사는 “노 당선자(대통령)가 ‘뜻이 맞는 언론과 함께 하겠다’는 요지의 발언도 했다고 한다”고도 소개했다. 

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지금 정권과 인터넷, 혹은 방송매체와의 유착이 혹시라도 진행 중은 아닌가 하고. 만약이라도 노 대통령이 당선에 ‘마이너스’가 됐다고 느끼는 매체는 기피하고, ‘플러스’ 역할을 했다고 판단되는 언론만 상대할 때 그는 스스로 권·언유착의 수렁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역으로 특정 언론도 정치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순간부터 타락은 시작될 것이다. 

두 번째 헤드라인. 기사 빼달라고 소주파티를 하지 말라는 말을 노 대통령이 언론개혁 인터뷰에서 굳이 해야 했을까. 이건 정부 내부 사정 아닌가. 따로 내부적 지시만 하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 헤드라인. 노 대통령은 언론 개혁과 관련해 가시적인 조치로 정부부처 가판신문 구독 금지를 얘기했다. 이는 노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개인적 편견을 드러낸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가판신문은 기사 보고 빼달라는 로비를 하라고 만드는 게 아니다. 초저녁, 내일 아침 뉴스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만드는 것이다. 조간신문 종사자들은 가판을 낸 후 판갈이를 거듭하면서 최종 독자에게 가는 ‘배달판’ 품질을 더욱 높이기 위해 애쓴다. 오죽하면 편집 기자들이 ‘풍차 돌리기’(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기사 배치를 바꿈에 따라 업무강도가 높아져 생긴 말)란 말을 쓸까. 가판이 나온 후 신문사 편집국은 동료들이 쓴 기사의 품평회장, 기사 밸류 판단의 난상토론장으로 변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가판을 낸다. 밤이면 뉴욕 번화가인 5번가나 UN본부 앞 일부 가판대에서는 따끈따끈한 다음날자 신문을 만날 수 있다. 영국, 독일 등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이들 신문들도 로비를 겨냥해 가판을 발행하고 있다고 노 대통령은 생각하는 것일까. 

권력은 정권이 가지고 있고, 신문은 보도할 따름이다. 스스로 각자 역할에 충실하면 그뿐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의 본분인 비판을 ‘비합리적인 공격’으로 표현하진 말았으면 한다. 그건 여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태도다. 노 대통령은 언론을 탓하기 전에 국정 운영부터 잘해야 할 것이다. 그때 조선일보 기자도 기사를 통해 당연히 박수를 칠 것이다. 진심이다. 
(사회부 차장대우 shjin@chosun.com ) 

                          

<조선> 사설, 2003년 2월23일자
盧 당선자의 부정적인 언론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22일 ‘오마이 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언론관과 실천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 당선자는 “정권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끊고 원칙대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과거 정권들처럼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소주파티 등 향응을 제공하며 보도를 빼달라는 식으로는 대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의 가판(街版)신문 구독을 전부 금지하고, 그대신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정정·론 보도를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세무조사나 뒷조사를 통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법일 뿐더러 효과도 없다는 견해다. 

노무현 정부가 언론과의 비정상적 유착관계를 끊고 원칙대로 해나가겠다는 것에 이의를 달 필요는 없다. 정권과 언론이 서로 의지할 생각을 말라는 충고도 충분히 수용할 만하다. 로비를 근절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겠다는 것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에 취임할 노 당선자의 언론관은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바탕하고 있는 데다, 신문에는 강한 개혁을 요구하면서 방송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이 사실을 정확히 보도해야 한다면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도 예외일 수 없다. 

가판 구독을 금지한다는 발상도 언론의 속보성과 정보성을 무시한 일방적 제동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노 당선자가 인터넷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론을 주도해온 신문을 ‘족벌체제’ ‘기득권체제’라고 지칭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으로 모는 것은 공인의 발언으로는 격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청와대 언론홍보 비서진을 방송출신들로 채우고 있어 소수정권으로 출범하는 차기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MBC와 KBS사장, 방송위원 경질까지 겹쳐있어 차기정권에서 ‘방송의 독립성’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노 정권이 언론과의 관계를 정정당당히 하겠다는 의지는 이해가 되지만 신문매체를 너무 백안시해서도 안될 것이다. 



<조선> 사설, 2001년 2월21일자
DJ의 '편집권 독립과 공정보도'  

김대중 대통령이 한 인터넷신문과의 회견에서 언급한 언론개혁 관련 부분은 최근 언론사 세무조사 배경과도 무관치 않고 앞으로의 언론대책 의중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다. 김 대통령은 ‘정부는 실정법에 의해 경영상의 문제만을 하고, 편집 문제와 공정보도 문제는 여야, 언론계, 시민단체가 국회에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어느 매체와 인터뷰하든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간신문과 지상파 방송에 세무조사와 공정거래 조사를 집중하는 미묘한 시점에서 대통령이 사이버 매체를 통해 언론의 핵심인 「편집과 공정성의 문제」를 논했다는 것은 결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더욱이 언론의 위상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한 것은 대통령의 소관사항도 아니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세무조사는 적법한 것이라니 그렇다 치고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편집권 독립과 공정보도 문제다. 이 문제를 언론자율에 속하는 것이라던 김 대통령은 종래의 말을 바꾸어 국회에서 다루되 여야와 언론계, 시민단체가 논의하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소유구조 개편’과 ‘편집권 독립’ 등을 골자로 한 ‘정기간행물법’을 국회에서 다루되 여기에 언론계와 일부단체가 관여해 법을 개정하라는 요지다. 현재의 언론사간에는 영향력이 편중돼 있는데다 사주의 입김으로 편집의 독립성이 침해받고 있고 따라서 논조가 공정치 않으니 혁파하라는 것이다. 

우리 언론사를 돌아볼 때 편집권의 독립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권력을 쥔 세력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압력을 가해 편집권이 침해된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 정부는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었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그 「권력」이 편집권의 독립과 공정보도를 들고 나온다니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사주로부터의 편집권 독립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수십만명의 언론종사자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며 이제까지 사주의 영향이 있었다면 그것은 사주를 통한 권력의 압력이었음을 우리의 경험으로 증언할 수 있다. 

공정성의 문제는 결국은 독자가 판단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정도다. 상품으로서의 신문은 자율적인 편집과 시각으로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독자가 판단해 선택하든 안하든 하면 되는 것이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자기들에 불리하면 「불공정」의 방망이를 들 것이다. 

또 언론의 자유경쟁을 객관성과 보편성이 보장되지 않은 특정 ‘시민단체’로 하여금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독자의 고유권한을 무시하는 것이다. 언론은 타율로 규제할 때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한다. 김 대통령의 주장은 이 정권 특유의 조합주의적, 포퓰리즘(대중영합)적 발상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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