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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19일 성남공항에 도착한 부시 미국 대통령.
지난해 1월 19일 성남공항에 도착한 부시 미국 대통령.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뉴욕타임즈>는 3월 1일자 신문에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부시 행정부 내의 기류를 자세히 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신문은 행정부 내 안팎에서 협상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을 정점으로 한 백악관은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신문은 대표적인 예로, 부시 대통령이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의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는 의회 청문회 발언에 대해 흥분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을 들고 있다. 아미티지의 대북 대화 발언 직후 부시 대통령은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 등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놓고, "북한과의 일대일 직접 대화 등 모든 대화를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2월 중하순 비공개로 열린 퍼그워시 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미국 국무부 관리도 막판에 돌연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북핵 문제를 비공개로 집중 논의하기로 한 퍼그워시 회의에는, 당초 북한과 미국 관리들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두 나라 사이의 비공개 대화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 모두 내부 사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대화는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이라크 침공하면 북한 재처리 시작할 것"

<뉴욕타임즈>는 또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몰두하기 위해 그동안 북핵 문제에 대해 '위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정부 내에서 위기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정보국(DIA)의 로웰 야코비 국장은 "(북한 핵문제는) 10여년 사이에 동북아에서 미국의 국익에 가장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고, 모하메드 알바라데이는 북한의 재처리를 시작하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북한의 재처리 여부 및 그 시점에 모아지고 있다. 북한이 8천여개에 달하는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하면 5개 안팎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를 북한이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red line)'이라고 일컬어왔다.

문제는 며칠 전 원자로를 재가동해 '핵 시위'를 강화했던 북한으로서는 남은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재처리 시설 재가동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이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낼 수 있는 카드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오히려 미국의 군사 행동을 포함한 초강경 조치를 불러올 수 있는 '악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북한으로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미국 정보기관은 북한이 재처리 준비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북한이 1월부터 핵연료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연구소 인근 열공급 보일러시설에 석탄을 운반하는 것이 목격됐고, 2월 초에는 보일러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목격되는 등 재처리시설 재가동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핵 전문가들은 이 보일러가 사용후 연료봉을 둘러싼 보호막을 녹이는 데 사용되는 질산용액의 온도를 안정시키는데 사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재처리 개시 시점이 "수 주 내로 다가오고 있다"며, 그 시점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뉴욕타임즈>는 보도했다. 이것이 북한 재처리 돌입의 1차적인 시점이라면, 북한의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탈퇴가 '국제적으로도' 효력을 발생하는 4월 10일 직후는 2차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북한이 재처리에 들어가면, 부시 행정부로서도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클럽 가입의 문턱까지 도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외화벌이용'으로 미국이 지목한 테러집단이나 깡패국가들에게 수출을 시도할 것이라고 미국은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종의 조치'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는 경제 제재 강화 및 해상 봉쇄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이에 반발하고 있어 그 효과가 미비할 뿐더러, 북한이 제재를 선전포고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한반도의 위기가 급격히 고조될 것이라는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력을 사용하자니, 동맹국과 우방국은 물론 미국 내에서 지지 확보도 어려울 뿐더러,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협상 밖에 없지만, 정작 협상에 나서는 것을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고 악행을 보상하는 것이라고 선언한 마당에 미국이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낮다. 부시 행정부의 고집스러움이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를 벗어나기 힘든 함정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을 따를 것?

부시 행정부가 안팎의 강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지 않는 배경에 대해 <뉴욕타임즈>의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신문은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점차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핵무기 제조 단계에 들어가면, 러시아, 중국, 한국 등도 결국 (미국 주도의) 집단적 행동에 나설 것으로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은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보도는 향후 우리의 대응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과 미국은 물밑에서 '사활을 건' 외교전을 펼쳐왔다. 미국은 한국의 지지와 동참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 중국, 러시아를 대북 제재 전선에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한국은 북미간의 직접 대화외에 대안은 없다며 주변국이 미국을 설득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한국과 미국의 이러한 외교전의 성과는 안개 속에 있다. 일단 일본은 점차 미국으로 기울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북미간의 직접 대화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결과를 낙관하기도 힘들다. 자칫 남한도 동북아에서 고립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북한이 금지선을 넘지 말도록 강력히 요청하는 한편,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안을 만들어 국민과 국제사회에 제시함으로써 안팎의 정치외교력을 튼튼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정치권도 설사 대북송금 특검제 문제를 북핵 문제 해결 이후로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한반도 위기 상황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초당적인 협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 역시 이념적 대결과 갈등을 수습하고 '반전·반핵'이라는 두 가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북-미간의 대화 촉구'라는 한 목소리를 내야할 때이다. '밖'이 불안할 때, '안'마저도 흔들리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체념과 분노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위기를 수습하는데 모아야 할 소중한 힘과 지혜가 '안'으로부터 유실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호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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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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