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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억가의 원경
송용억가의 원경 ⓒ 안병기
화려하고 사치스런 시류에 감정을 내맡긴 채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는 아무래도 그저 소박하기만한 동춘당의 풍경 보다는 거기서 몇 발짝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대전시 민속자료 2호인 송용억가(宋容億家)의 봄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올지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송용억 가의 정면 사진
송용억 가의 정면 사진 ⓒ 안병기
5월이 되면 송용억가의 앞뜰과 뒤뜰에는 영산홍과 매화꽃과 백목련, 자목련, 백모란과 붉은 모란등 온갖 꽃이 피어납니다. 삶이 쓸쓸하거나 막막한 봄날에도 송용억가의 만화방창한 풍경들은 사람의 마음을 붕붕 뜨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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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찍어 갈무리해 두었던 송용억가의 영산홍 사진
작년 봄에 찍어 갈무리해 두었던 송용억가의 영산홍 사진 ⓒ 안병기

작년 봄에 찍어 갈무리해 두었던 송용억가의 백모란 사진
작년 봄에 찍어 갈무리해 두었던 송용억가의 백모란 사진 ⓒ 안병기
작년 봄 마음 밖으로 정처없이 빠져나가 까딱햇으면 길을 잃을 뻔한 저를 오래도록 붙들어 매둔 것도 바로 이 송용억가를 휘감고 있었던 싱그러운 봄의 흥취였답니다. 수령 3, 4백년을 훌쩍 넘긴 너댓 그루 영산홍이 피어내는 아름드리 꽃들이 소시적 당신처럼 요염하게 피어나 내 눈은 더할 나위없이 황홀했었지요.

한때는 내 온 생애를 걸고 당신을 저 영산홍처럼 활짝 피어나게 하는 기름진 거름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는 생각이 나를 공연히 쓸쓸하게 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홀씨가 날린다
겨울이 가고 새가 운다
홀씨는 눈 뜬다
눈 뜬다, 노란 꽃이 핀다
아이 하나가 지나간다
아이는 꽃을 본다
꺾는다,
던진다,
맑은 물이 빠져 나온다
꽃은 분해된다
흔적이 없다

그 봄 하루 동안
다시 많은 꽃이 피어난다
없다, 아무 일도
문득 있던 것이 문득 사라진다
끝없이 태어난다.


이진엽 시 <그 봄 하루 동안> 전문


집 주인 송용억(92세) 노인. 귀가 어두워 필답으로만 대화가 가능하다.
집 주인 송용억(92세) 노인. 귀가 어두워 필답으로만 대화가 가능하다. ⓒ 안병기
그때 우리는 아직 젊은 나이라서 시간은 결코 제 걸음걸이를 늦추는 법이 없음을 알 리 없었지요. 우리가 막상 삶이 안겨주는 막막함과 덧없음에 눈떴을 때에는 이미 우리 생의 봄날이 다 흘러가버린 뒤였구요.

아직 피지 않은 영산홍
아직 피지 않은 영산홍 ⓒ 안병기
쓸쓸함에 젖어 조상현이 부르는 단가 <이산저산>의 한 대목을 가만히 흥얼거려 봅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을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 없이 가 버렸으니, 왔가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언덕에서 내려다 본 송용억가
언덕에서 내려다 본 송용억가 ⓒ 안병기
왜 사람들은 쓸쓸하면 언덕에 오르곤 하는지요? 근처 언덕에 올라 내려다 본 송용억가는 무사태평에 잠겨 있습니다. 어쩌면 나도 많은 날들을 저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삶의 맹목성과 부질없는 허덕임을 견디어냈는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그래요. 다가오는 봄에는 저 영산홍처럼 불게 타오르는 꿈을 안고 살겁니다. 사람 사는 일 언제나 봄만 같을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영산홍 꽃그늘에 홍건히 마음을 적시고 나면 아무리 삶이 고단할지라도 봄 한 철이야 무난하게 흘러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삶이 왜 이리 적막하냐고 투정부리는 당신도 한번은 여기 들러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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