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대단히 불쾌한 일이겠지만, 위에서 소개한 말은 정작 50년 전 미국 대통령인 아이젠하워가 선제공격을 통해 소련을 무장해제시키자는 강경파들의 제안에 대한 반응이다.
아이젠하워가 단호히 예방전쟁 도입을 반대한 지 정확히 50년이 지난 지금, 21세기 미국의 첫 대통령은 선제공격 전략을 국가 공식 문서에 명시하면서, '사악한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해 미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기 전에 '예방적' 차원에서 이들 정권을 제거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하고 있다.
히틀러와 비유되기를 거부하면서 예방전쟁을 단호히 반대했던 50년 전의 미국 대통령이 오늘날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처럼 '바뀐 미국'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평화 만들기'의 첫걸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미국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지난 세기 미국도 상당히 낯설어할 만큼, 제국주의적 속성을 보이고 있다. 물론 미국이 냉전시대에는 소련과 함께, 그리고 탈냉전 이후에는 독점적으로 패권적 지위를 누려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분명 제국주의와는 달랐다.
과거 미국은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부분적인 주권의 제한을 수용했지만, 오늘날의 미국은 스스로 만들어온 국제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면서 국제사회에서 '초법적인 존재'로 군림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오늘날 달라진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전쟁머신'으로서의 미국의 독주를 막고 미국을 '정상화'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국주의로 치닫는 미국을,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봐줄 만했던 '온건한 패권국가'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의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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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가 빚어낸 군사패권주의
오늘날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키워드를 새겨둘 필요가 있다.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 그리고 미국 우월주의와 미국 예외주의가 그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화법에서 잘 드러나고 있듯이 오늘날 미국 정부는 세계를 철저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구조로 보면서, "악을 제거하라"는 신의 명령을 받은 미국과 미국을 따르는 나라는 선이요, 나머지는 악이다라는 극단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조차도, 오늘날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를 동일시하는 부시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부시 행정부의 기독교 원리주의적인 세계관이 '도덕적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보면 큰 오산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 유명한 "악의 축" 발언을 비롯해 틈만 나면 "주민들을 굶겨 죽이면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이를 다른 나라와 테러집단에게 확산시키는 정권"에 대해 도덕적인 증오와 극단적인 적대관을 피력해왔다.
이에 따라 김정일 정권과 후세인 정권은 최우선적인 "정권 교체(regime change)"의 대상으로 거론되어 왔다. 이들과 도저히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 이라크, 이란에 못지 않은, 때로는 더욱 심각한 도덕적 결함을 갖고 있는 나라들을 정권 교체가 아닌 정권 '지원'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실질적인 확산의 주범으로 일컬어지는 파키스탄 정권, 테러국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스라엘 정권, 이라크 정권 못지 않게 쿠르드족을 억압하고 있는 터키 정권 등은 역설적으로 오늘날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들이다. 부시 대통령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선악의 구분 잣대가 실은 부시 행정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의적인 선과 악의 대결적인 세계관이 날로 악화되고, 그 부정적인 영향이 극대화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시 대통령 개인의 종교적 세계관이 역사상 가장 잘 준비된 군사주의와 만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인물들을 보면, 그야말로 '군사주의의 드림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국방장관을 지낸 바 있고 아내와 함께 군수산업체을 두루 거친 딕 체니 부통령. 그는 부시 정권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막후 실세로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딕 체니가 막후 실세라면, "테러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국 정부의 '섹스 심벌'이라고 할 수 있다. 탁월한 말재주와 유머 감각을 소유한 럼스펠드는 이미 1970년대에 국방장관을 지낸 인물로, 전세계적인 반발을 불러오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와 우주의 군사적 선점 계획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
이 밖에도 아버지 부시 때 국방부 차관을 지내면서 선제공격과 군사패권주의를 오래전부터 주창해온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미일동맹 강화론의 선봉장인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협상보다는 군사력으로 북한과 이라크를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이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각족 국제군비통제 조약을 무력화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존 볼튼 국무부 차관 등도 오늘날 미국의 군사주의를 이끌어오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클린턴 행정부 때를 '잃어버린 8년'이라고 인식하면서 탈냉전이후 미국의 군사패권주의 추구 방향을 부시 정권의 출범 이전부터 가다듬어 왔고,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자 자신들이 꿈꿔온 미국과 세계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외교안보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부시 대통령 주위로 병풍을 치고는, 부시의 종교적 세계관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군사력에 있다는 점을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의 만남을 통해, 미국의 매파들은 "꿈의 향연"을 벌이고 있지만, 세계와 미국의 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의 만남, '일방주의'
또 한가지 최악의 만남은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와의 만남이다. 우월주의와 예외주의는 동전의 앞뒤와도 같은 것으로써, "미국은 우월하기 때문에 예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모범이자 다른 나라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이상이기 때문에 미국식 체제는 가장 우월하고, 이러한 미국을 보호하고 미국식 체제를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규범으로부터 미국이 제한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미국보다 열등한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 규범을 지켜야 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미국만은 예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부시 정권은 미국 스스로도 공들여 만들어온 각종 국제조약과 규범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MD 구축에 제한을 둔 ABM 조약의 탈퇴, 생물무기금지협약(BWC) 검증의정서 채택 거부,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인준 거부, 기후협약 탈퇴, 국제사법재판소(ICC)에서의 미국 예외주의 관철, 북한, 이란, 이라크 등 비핵국가에 대한 핵선제공격 전략 채택 및 신세대 핵무기 개발 추진 등 불과 2년동안 보여온 부시 정권의 국제규범 무시는 오늘날 대량살상무기 확산 억제를 비롯한 국제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가 "주권의 제한"에 있다는 상식조차도 오늘날 부시 행정부하의 미국에서는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의 만남에 의한 '군사패권주의'와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와의 만남에 의한 '일방주의'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과거의 경우에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이 '도'를 넘어설 때, 내부적으로 이를 교정/조절해왔던 특유의 체제 유연성과 자기정화 기능마저 오늘날의 미국에서는 마비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운동권이나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쓸 법안 표현들이 오늘날에는 미국 언론은 물론이고 미국 정부 관계자조차 쓰고 있다는 것은 오늘 미국 내부의 비판 정신의 쇠퇴와 자기정화 기능의 마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방주의', '패권주의', '군사적 패권', '제국주의' 등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을 비판하는 단어가 아닌, 부시 행정부의 상당수 관리들 스스로도 즐겨 쓰는 표현이 된 것이다.
오늘날의 미국에 대한 위와 같은 분석이 타당성을 갖는다면, 기존의 사고와 틀로 한미관계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이 세계전략의 하위 개념에 따라 이뤄진다"는 명제가 맞는 말이라면, 부시 행정부가 추구하는 미래와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는 상당한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미관계의 미래를 설계하기에 앞서 미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93-94년 핵협상, 98-99년 미사일 협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의 강력한 지렛대로 군사적 카드를 활용해왔다. 핵, 미사일 등을 제외하면 미국과 협상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또한 미국의 전임 정부가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 전략을 대외정책의 최고의 우선 순위로 삼아온 상황에서, 북한의 이와 같은 전략은 '가능한 최선'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 역시 오늘날의 미국이 과거의 미국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핵카드 등 '군사주의'로 맞서면 군사패권주의는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중요한 전환기의 시대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남북한 모두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안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주권과 자율성의 많은 제약을 받아온 남한이 대등하고 수평적인 한미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서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체제생존을 모색하기 힘든 북한이 미국과의 '다른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도,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일은 남북한 모두 지난 반세기동안 익숙해온 관성과의 '부분적이지만 본질적인 결별'이지 않을까 한다.
덧붙이는 글 |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