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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절에는 두 개의 대립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7개 종단이 주관한 남북공동행사와 `반전평화 공동실천' 및 `여중생 공대위' 공동주최의 광화문 촛불시위가 있었다. 이번 촛불시위에는 약 5천명이 모였다고 보도되었다. 이에 대항하여 시청 앞에서는 3.1절을 기념하여 대북 호전적인 `미군철수 반대 반핵 반전 반김 궐기대회'가 열렸고, 여의도에서는 역시 호전적 수구적 기독교 목사들이 주도한 기도회가 열렸다. 여기에 각각 약 10만명 정도의 군중이 동원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 지난 1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반핵 반김 3.1절 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
ⓒ 3.1사진공동취재단
이 두 개의 운동 흐름에 동원된 숫자만을 보면 민족민주진영이 동원한 5천명은 냉전수구세력이 동원한 10만명에 턱없이 모자란다. 다만 이 숫자의 비교에 있어서 놓쳐서는 안될 요인은 남북공동행사와 촛불시위가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됨으로써 민족민주진영의 세력이 양쪽으로 분산되어 제대로 세를 모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호전적 수구세력들이 동원한 10만명의 숫자가 엄청난 것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3.1절 행사에서 호전적 수구세력에게 밀린 민족.민주세력

호전적 수구세력들이 이렇게 많은 숫자를 동원할 수 있었던 힘의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는 노무현 정권 출현으로 허탈감과 위기감에 사로잡힌 호전수구세력들이 북핵문제를 이용하여 세력을 다시 결집하는 데 일정정도 성공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군중을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을 냉전수구세력들이 막강하게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50여년 전의 한국전쟁 시의 남북 대결 감정이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6.15공동선언으로 남북의 혈맥이 이어지고 있는 이 시각에도 대북 적개심에 사로잡혀 북진통일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3.1정신에 위배되는 호전적 수구세력들의 사대주의적 행태

그 밖에 여러 요인들을 들을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북진통일을 꿈꾸고 있는 호전세력들이 내건 미군철수 반대 구호와 애국가에 이어 미국국가를 제창한 것에 대해 이는 자주독립을 외치며 일제의 총검과 맞서 생명을 던져 싸웠던 선열들의 정신을 모독한 행위라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아무리 한국전쟁 시에 미군 덕을 보았다 한들 하필이면 자주 독립을 기원해야 할 3.1절 기념일에 그 정신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대주의적 구호와 행동을 보인 것은 아무리 변명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또한 반핵 반전 반김정일 구호 역시 한반도의 오늘의 전쟁위험이 주로 미국 부시 대통령 등장 이후 불거졌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대북 적대감을 부추기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94년의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미간의 평화적 관계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전임자인 클린턴 전 대통령 말기에는 북미공동선언까지 나왔다. 그런데 부시 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악의 축' 발언을 비롯, `불량국가' 규정 등 극단적인 대북 적대발언 끝에 북한의 계속된 핵무기 개발계획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빌미로 제네바합의에 의해 약속된 50만톤의 발전용 중유공급을 중단함과 아울러 중수로 발전시설(KEDO) 공사도 중지시켜 북한체제 붕괴를 위한 작전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김으로써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고조시켰다.

북한은 미국이 제네바합의를 파기하고 전력생산용 중유공급을 중단한 마당에 전력생산을 위해 원자력발전시설의 가동 재개가 불가피하다고 선언함과 아울러, 핵확산방지조약으로부 터 탈퇴를 선언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서 왔다.

북한은 미국과 평화적 관계를 수립해 보려고 여러 가지 약속을 받아냈지만 모두 허사가 된 이상,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미 국회가 이를 비준해야만 핵 개발계획을 포기할 수 있다는 태도를 고집하고, 이 전제 위에서 미국이 하루속히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핵개발계획을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일체의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티면서, 북에 대한 핵 선제공격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초 강경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미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반도 평화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제네바합의체제를 파괴한 책임은 미국 부시 대통령의 북한 말살정책과 이에 강경 일변도로 맛선 북한정권에게 똑같이 돌아간다고 보는 것이 공평한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사태를 보다 깊이 분석해보면,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에게 더 큰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이 땅의 호전적 수구세력들은 하필이면 민족의 자주독립을 소리높이 외쳐야할 3.1절 기념일에 미국에게 대화로써 문제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기는커녕, 미국 국가를 소리높이 부름으로써 일방적으로 미국 편을 들고, 북한에 대해 무조건 핵 개발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였다. 특히 이들이 미국국가를 우리의 애국가와 더불어 제창한 것에 대해서는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라는 의문의 목소리가 일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친일파가 친미파로 둔갑하여 3.1정신을 모독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있는 상황이다.

호전적 수구세력들은 이번 3.1절 시위행사에 반전 평화라는 그럴듯한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마치 자기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세력인 듯이 보이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런 구호와 나란히 `반 김정일'을 구호로 내세움으로써 이들이 실은 북과의 화해 협력을 거부하고 대북 적대심을 키워 북진통일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을 받고있다.

이들은 어렵사리 이룩해낸 6.15 남북공동선언을 파탄시키고 북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부추기고 여기에 편승하여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진지 오래된 북진통일노선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호전세력이며 그들이 내세운 반전 반핵의 구호는 그들의 그런 호전성을 숨기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는 한낱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3.1운동을 계승한다고 하면서 그 정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외세 의존적 사대주의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애국가에 이어 미국 국가를 소리 높여 부름으로써 3.1운동이 피로써 매도했던 외세 추종자들의 정신적 후계자들이 아닌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족민주세력은 역량부족을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6.15선언을 파탄시키려고 하는 이들 대북 호전적 수구세력들이 3.1절에 두 군데서 각각 10만 명 씩 대규모 군중을 동원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같은 날에 약 5천명 정도가 모여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개정과 반전 평화를 요구하는 횃불 시위를 하였다.

5천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았다 해도 거기에 모인 사람과 호전세력 집회에 모인 사람과는 1당 100쯤 되니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자위(마스터베이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2월 촛불시위 때 시청 앞 광장을 꽉 채운 수만 군중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숫자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왜 이렇게 운동역량이 왜소화되었을까? 혹시 전술을 잘못 택한 때문은 아닌지 심각하게 자문해 보아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손자병법에도 `적을 알고 자기를 알면 백전백승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인 숫자가 문제될 것 없다고 자위하고 넘어갈 문제는 분명 아니다.

촛불시위의 거품이 빠진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제 요청도 작용했지만 일부의 과격한 반미 구호가 오는 손님을 내쫓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깊은 성찰을 요하는 대목이다.

사실 따져놓고 보면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전쟁몰이 정책으로 평화가 위협받게 되었고, 미국 안에 부시 대통령의 전쟁몰이 정책에 반대하는 수많은 평화애호세력이 있음에 비추어 `반미'보다는 `반부시'라는 말이 자주평화운동의 목표를 보다 확실하게 들어내 보이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 때만 해도 한반도에는 평화의 기운이 훈풍을 내뿜고 있었는데,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 한반도 정세가 꽁꽁 얼어붙게 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반미'보다는 `반부시'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운동권의 일부에서는 반미가 무엇이 나쁜가 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지만 미국이 우리에게 우호적 관계를 성정하고 우리를 대등한 동반자로 여기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반미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선은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내밀면서 여기에 미국이 성의 있게 대하지 않을 때 강하게 이를 비판하는 것이 순리이다.

또한 민족민주세력들의 일부에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자신도 그것이 지금 당장 실현되리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미군철수 주장은 주권국가로서 영구히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는 원칙론적 관점에서 선언적인 의미는 가질 수 있어도 현재로서는 당장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구호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현 상황 파괴에 따른 불안감을 조성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는 우군들을 스스로 멀리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지위와 역할에 관해서는 6.15남북공동선언에 따라 앞으로 남북 정상의 합의에 따라 점차적으로 결정을 내려야할 사항으로서 운동권이 함부로 언급할 사항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작년 말에 촛불시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대거 동참한 것은 두 여중생에 대한 미군의 무죄판결로 빚어진 민족자존심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미군의 무죄판결은 오만한 미국이라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반미감정으로 발전되었지만 그 동인은 반미가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민족민주진영 지도부가 촛불시위에 고무된 나머지 이것을 반미운동이라고 보았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할 수 있다. 지금 이 단계에서 시급히 요청되는 것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책동과 한반도에서의 대북 핵공격을 막아내고 북미간 합의에 의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위기의 근원이 부시 미 대통령에게서 나오고있는 상황이기에 그것은 자연스럽게 `반부시'로 될 수밖에 없고, 부시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인 조건 아래서 그것은 결국 자연스럽게 반미로 이어지는 논리구조 아래 놓여있는 것이다.

이번 3.1절 기념일에 민족민주세력이 6.15공동선언을 파탄내려고 하는 호전적 수구세력들에게 사실상 밀리고 있는 상황으로 된 근본원인은 위와 같은 논리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과 더불어 민족민주세력들이 사소한 말꼬투리에 매달려 사분오열 되다시피 파편화 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잘못은 아닐 것이다.

민족민주운동은 대중에게 영합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대중과 유리된 일부 운동가들 중심의 운동이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운동가 중심의 운동이 아니라 대중 중심의 운동으로 거듭나야한다는 사실을 이번 3.1절 행사는 분명한 교훈으로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자주평화 범국민운동본부(이하 평범본) 결성이 필요하다

이번 3.1절 기념 남북민족공동행사를 7개 종단이 주관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하여 종단이 앞장서서 자주평화연대를 발족시키려는 움직임이 구체화 되고있다고 한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로서 뒤늦은 감마저 있다. 종단의 이런 움직임이 종단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민화협과 통일연대 민중연대 그리고 전체 시민운동당체를 망라한 민족민주운동의 총 집결체로서 자주와 평화를 위한 범국민운동체로 승화된다면 우리의 자주평화운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 평범본 조직에 있어서는 각 주체들이 마음을 비우고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강령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최소강령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일반대중의 생활 옹호를 위한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수호운동이어야만 한다. (민생 제1주의의 원칙),
2) 평화수호를 위해 북미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운동을 전개해야한다.(전쟁위험 제거의 원칙).
3)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고 있는 것은 6.15남북공동선언이므로 그 실현을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한다. (6.15공동선언 실현의 원칙).
4) 각 종단은 물론 노동조합연합체, 농민단체연합체, 시민단체연합체, 학생운동연합체를 비롯하여 광범한 전국의 평화옹호단체들 및 민족운동단체들과 반듯이 연대 연합을 실현해야 한다. (개방적 연대연합의 원칙).
5) 조직운영에서 반듯이 공개성을 지키고 여러 주체의 자발적 참여의 문호를 활짝 열어주고 민주적 관행을 지켜야한다. (참여민주주의의 원칙).
6) 운동의 방식은 최대한 평화적인 방법을 택해야한다. (평화적 운동방식의 원칙)


이상 여섯 가지 최소강령이라면 민족민주세력의 다양한 주체들을 사상과 이념, 종교와 신조, 계급과 계층 등 모든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원칙에 따라 광범하게 하나로 모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민족민주세력들은 고비고비마다 300인선언, 700인선언, 2002인선언 등으로 지침을 제시함으로써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들 선언들은 어디까지나 1회성 성명에 그침으로써 제한성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러한 제한성을 시급히 탈피하지 않으면 호전적 수구세력들에게 밀려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지속적으로 효과적으로 한반도 평화수호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평범본'과 같은 광범한 연합운동체를 하루 속히 조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길만이 3.1운동, 4.19혁명, 5.18, 6월항쟁 촛불시위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온 민족 민주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이 운동에 신명을 바친 애국선열들에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보답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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