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검찰이 SK그룹의 심장부인 SK구조조정본부를 압수수색했을 때 재계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 모두가 경악했다. 검찰이 5대기업 안에 드는 재벌과 그 총수를 향해 그렇게 기습적으로, 노골적으로, 직접적으로 칼을 들이대는 예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언론과 재벌 홍보실 관계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검찰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은 사전 교감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사실'과 정황들을 다 취재하기도 전에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미 예단을 내렸다. SK수사 시작 다음날 <오마이뉴스>의 머릿기사 제목은 <노무현 개혁의 시동....>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오마이뉴스>는 '대통령 노무현'을 단독인터뷰했다. 당연히 초미의 관심사였던, SK에 대한 수사를 대통령이 사전에 알았는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노 대통령은 그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머뭇거림없이 말했다.
"나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 다음날 아침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 제일 먼저 드는 걱정이, '어이쿠, 보도에서는 재벌 길들이기로 나오지 않겠나'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수준이 아니고 아예 그것이 사실인 듯이 한 일부 보도도 있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기획해서 본때를 보여주는 식의 개혁을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기업 경영이 투명해져야 하고 원칙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정치적 의도로 또는 기획에 의해서 개혁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고 성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정말 이런 것을 기획해서 본때를 보여주는 식으로 개혁할 생각이 전혀 없다. 가도 자연스럽게 가기를 바란다. '검찰이 새 정부의 기류를 고려해서 이리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동안 미뤄두었던 것을 일거에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적절치 않다."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그가 취임 이틀 후 장관 인선 브리핑을 하면서 검찰을 향해 "평소 실력대로 시험치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정말 검찰은 새 정부의 어떤 고위층과도 SK수사에 대한 사전교감을 하지 않았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이 거듭 "사전에 전혀 몰랐다"고 하니까 그렇다 치자. 그러나 한국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수 있는 재벌그룹에 대한 전격수사에 대해 검찰은 대통령 당선자는 아니더라도 민정수석 내정자나 인수위의 경제담당자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을까?
최근에 기자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인수위 시절의 고위 경제담당자를 만났다. 그는 검찰의 SK수사에 대해 문재인 민정수석은 물론 자신도 사전에 몰랐다고 했다.
"전혀 몰랐다. 당시 무슨 요일인가, 인수위원들이 모두 모여 인사관련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문재인 수석(내정자)이 회의 중간에 갑자기 어디론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때서야 이리저리 알아봤다. 인수위원 모두가 가판을 보고 검찰수사를 안 거다.
나도 놀랬다. 그래서 당선자와 인수위원들이 함께 하는 티타임에 내가 이야기를 했다. '검찰이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이다. '아니 우리가 참여정부라고 해놓고 집권초기부터 무슨 점령군처럼 기업들을 때리면서 가면 누가 좋게 보겠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물어봤다.
"그렇다면 왜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물론 민정수석 내정자나 인수위의 고위 경제담당자에게도 알리지 않고 SK수사를 전격적으로 한 것으로 보느냐."
그의 답은 이랬다.
"나는 두 가지로 파악하고 있다. 첫째는 노무현 새 정부에 대해 검찰이 '한상 차려 바치기'를 한 것이다. 또 하나는 '강금실 거부'에 대한 사인이었다. SK 수사 전부터 강금실 변호사가 법무장관으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자 검찰에서는 여러 통로를 통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래도 노무현 당선자가 강금실 카드를 밀어붙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검찰이 새 정부에 알리지도 않고 'SK수사'라는 카드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요약하면 정치적 고려와 검찰조직 보호를 위해 'SK칼'을 빼들었다는 것이다. 그 후에 벌어진 상황은 그의 분석을 뒷받침한다. 검찰의 SK수사에 원칙이 없다. 검찰은 SK 최태원 회장과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재벌 총수들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사정속도 조절론'에 대해서도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8일의 대통령-평검사 토론회에서 SK수사를 담당했던 평검사는 '여권과 현정부의 고위관계자'가 외압전화를 했다고 폭로했다. '기획된 폭로'로 여겨질만했다.
평검사의 그같은 폭로로 '외압'당사자로 확인된 민주당 이상수 총장과 이근영 금감위원장의 전화통화 내용이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이 부당한 외압이었다면 당사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검찰의 SK수사에 대해 진정 규명되어야할 핵심은 따로 있다. 다음 두 가지다.
1) SK전격수사가 노무현 새 정부의 출범에 맞춰 기획된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치는 '한상 차리기'였나.
2) SK전격수사가 강금실 법무장관 임명을 거부하기 위한 시위였나.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항명 검찰'의 상층부는 정치검찰이며, 조직보호를 위해 무리하게 칼을 휘두른, 위험천만한 이들이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검찰은 전화외압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의 '사정속도 조절론'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소신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SK에 대한 수사가 검찰조직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와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대기업과 총수들에게도 그 칼을 들이대야 한다.
노 대통령은 '신선한 파격'이었던 평검사들과의 토론회에서 "검찰 상층부를 믿지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노 대통령이 언제부터 현 검찰 상층부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찰의 SK수사 방식이 노 대통령의 검찰에 대한 불신을 더 깊게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과 때맞춰 '벼락치기 수사'를 결정한 검찰 상층부를 '평소 실력대로 시험을 치르지 않은 기회주의자', '정치적 환경에 따라 칼을 제멋대로 쓰는 정치검찰'로 규정했을 것이다.
SK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상당수도 검찰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들의 'SK칼'이 조직보호를 위한 것이었는지, 경제정의를 위한 것이었는지.
검찰은 11일 SK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최태원 회장을 구속했다. 언론은 이를 "재벌 총수의 비상장주식을 이용한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첫 사법처리라는 점에서 향후 검찰의 수사확대 여부와 재벌그룹의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다"(연합뉴스)고 보도했다.
서울지검 박영수 2차장은 11일 SK수사를 발표하면서 그 배경과 의미에 대해 "작년 12월 언론보도와 1월초의 참여연대 고발을 통해 내사해왔다"면서 '정권출범초기 기획수사설'을 부인했다. 그리고 "역사앞에 부끄럼없는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검찰의 SK수사가 진정 '부당내부거래와 불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막고, 법대로 그리고 공평하게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다른 재벌의 구조조정본부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소식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노무현 시대의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강금실 장관과 인사문제로 왈가왈부할 시간이 아까울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 신뢰다.
대통령을 상대하지 말고 국민을 상대하라.
'SK칼, 그후'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검찰을 살리고 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