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관련 수배자 양산은 국제적 망신이다. 한총련 (합법화) 문제 해결 의지 있으니 도와달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새 정부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관련 정치 수배자들의 수배 해제를 고려하고 있다는 뜻을 밝혀 주목된다. 문 수석은 지난 14일 오후 2시 광화문 종합청사에서 한총련 장기 수배자 가족대표와 만나 오는 5월까지 '한총련 문제'를 매듭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면담에는 '한총련 합법적 활동보장을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원회'(이하 한총련 합법화 대책위)의 강위원 집행국장·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장·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등도 동행해 "새 정부가 한총련 합법화를 위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면담은 한총련 합법화 대책위의 면담 요청을 문 수석이 받아들여 이뤄졌다.
약 20분간 진행된 이날 면담에서 문 수석은 "단과대학 학생회장 이상이면 자동으로 한총련의 대의원이 되는데 그것만으로 수배 대상이 된다니 이는 국제적인 망신"이라며 "다만 사회적으로 용인될만한 절차가 필요하니 같이 고민해보자"라고 말했다. 또 현재 수배 중인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자들에 대해서도 "5월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본다"며 "현재 대통령 취임 기념 특별사면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즈음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특별사면의 시기는 오는 5월 8일 석가탄신일 이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수석은 한총련도 변화의 노력을 보여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이적단체 규정의 빌미가 된) 강령 및 규약 상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완화하거나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국민들에게 뚜렷하게 밝히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 수석은 "오늘 자리에 제11기 한총련 신임 간부들도 왔을 줄 알았다"고 말해 향후 한총련의 신임 지도부와 면담할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다.
문 수석을 만난 수배자들의 부모들은 "한 시름 놓았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7년째 수배 중인 송용한(제5기 한총련 지역간부)씨의 어머니 홍동자씨는 "확답은 받지 못했지만 한결 마음이 놓인다"며 "문 수석과 새 정부를 믿어보겠다"고 말했다.
역시 수배 중인 아들 최원석(제5기 한총련 대의원)씨 때문에 7년간 속을 태워야했던 박영숙씨도 "문 수석에게 어느 정도 답변을 들으니 마음이 좋다"면서 "불안했던 마음이 많이 놓였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박씨는 "오늘 어머니들은 '목숨을 내놓을테니 우리 자식들을 풀어달라'고 호소할 심정으로 온 것"이라며 "이런 사회적 모순이 어서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 참석한 강위원(제5기 한총련 의장) 한총련 합법화 대책위 집행국장도 "성공적인 면담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 국장은 "확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문 수석이 직접 대안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내보여 기분이 좋았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총련 합법화 대책위는 이날 면담 결과를 바탕으로 한총련 합법화 및 수배해제를 위한 여론 환기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강 국장은 "이날 면담으로 (수배해제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본다"며 "재야단체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수배자 가족들의 사연을 담은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이에 앞서 민주당을 방문, 이상수 사무총장과 이종걸 의원을 만나 한총련 합법화 및 수배해제를 호소했다. 이 자리에서 이 사무총장은 "민주당에서도 이종걸 의원등이 수배해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백 퍼센트 보장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으니 믿어 달라"고 말했다. 이 의원도 "거의 10년간이나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도 참 답답한 일"이라며 "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 "몇 년 흘려온 눈물, 이놈의 샘물은 마르지 않네" "부모들이 똘똘뭉쳐 우리 아들, 딸 살려냅시다" | | | 14일 경희대 복지회관에서 한총련 수배자 가족들의 첫 만남 | | | |
| | | ⓒ강이종행 | 사랑하는 아들아
언제쯤 너에게 봄이 올까...
언제쯤 멍들고 텅 비어버린 너의 마음을 추스르고 네 마음에 무지개 빛을 담고 아름다운 세계를 담아 넣을 수 있을까!
곧 오겠지. 올 거야!(중략)
이 에미 찢어지는 아픔을 죽을 힘을 다해 견뎌내며 사랑하는 내 아들이 하루속히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멋진 의욕으로 생활하는 너의 모습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 사랑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3년째 수배생활을 하고 있는 이산라(단국대 '01년 총학생회장)군의 어머니 김낙희씨는 아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던 중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의 편지에 서울 경희대 복지회관 지하공연장은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일부 부모들은 눈물을 훔치며 공연장 밖으로 나갔다.
14일 오후 2시 30분 이곳에서는 '한총련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이하 한총련 합법화 대책위) 주최 '한총련 관련 전국 정치수배자 가족모임'이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51명의 수배학생 부모님과 100여명의 50여명의 수배학생을 포함 200여명이 참석한 이 행사는 시작 전부터 오랜만에 자식을 만나는 부모들의 기쁘면서도 설렌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한숨만 쉬는 부모, 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 없이 미소짓는 부모, 조용히 흐느끼는 부모.
이러한 부모들에게 사회를 맡은 수배 7년 차 유영업(28, 제5기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씨가 인사말로 안부를 전했다.
"저희들 걱정에 잠 못 주무시고, 잘 못 드셨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늘 희망이 보이기에 이 자리에 모시고 새로운 정치 수배의 봄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이곳에 모인 부모, 자식, 학생들의 마음을 다 모아 한총련이 이적단체의 불명예를 벗어나길 기원합시다."
이날 행사는 수배학생들의 합창으로 활기차게 문을 열었다. 학생들은 모두 밝은 얼굴로 노래를 불렀고 부모님들은 이에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 한총련 학생들의 활기찬 율동에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세 아들 모두 수배경험이 있다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아래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김순심 어머니는 "세 아들 때문에 85년부터 20년 간 땅바닥에서 지냈다. 걸어서 재판소, 싸움터 등 어디든 다녔다"며 "하지만 우리 아들은 모두 민중과 통일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 알기에 단 한순간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선배로서 용기를 북돋는 발언을 해 참석 부모님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부모들의 발언과 편지 낭독 순서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 딸은 한번도 집에 오지 못했습니다. 엄마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파요. 너무 힘들었지만 한번 더 정부를 믿어보고 싶어요." -수배 4년째인 임봉(부산대 '00 총여부회장)학생의 어머니
"하나뿐인 우리 아들은 4년 동안 학교에서 숨어살아야만 했어요. 일평생을 아들만 보고 살아왔는데... 저는 부산에 살지만 아무리 바빠도 이런 모임에는 만사 제쳐두고 올라옵니다. 우리 부모들이 똘똘 뭉쳐서 우리 아들, 딸들을 살려냅시다." - 수배 4년째인 강정호(동아대 '00 총학생회장)학생의 어머니
이날 어머니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흐느끼면서 말을 조심스레 이어갔다. 3년째 수배생활을 하고 있는 윤 석(01년 전남대 공대학생회장)학생의 어머니는 발언을 부탁하는 사회자의 말에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나가지 못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들을 위해 편지를 작성해 낭독한 김낙희씨는 "여기 오기 전까지는 아들의 고통을 내가 대신 받았으면 했지만 오늘 참석하신 부모님들을 보니 아들이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내가 빼앗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라며 "몇 년을 흘려온 눈물인데 이놈의 샘물은 마르지 않는다"라고 흐느꼈다. 김씨는 편지를 읽으며 내내 눈물을 흘렸다.
행사가 끝날 무렵 숙연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가 흐른 뒤 참가자들이 기다렸던 소식이 들려왔다.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을 만나러 갔던 대표단(권오헌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장 등 7명)이 행사장에 도착한 것.
대표단 일원이었던 권오헌 회장은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과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우리의 뜻을 전했다"며 "두 사람 모두 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수배 학생들과 부모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회를 본 유영업 학생의 어머니 이복순(48)씨는 "7년 동안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조만간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소식에 기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미소지었다.
유씨는 행사가 끝난 뒤 "수배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기뻐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다"라며 "만약 수배생활을 끝내게 되면 가장 먼저 집에 들어가 한숨 푹 자고 싶다"라고 말했다. 유씨는 7년이라는 수배생활가운데 어느 장소에서건 사람들 얼굴을 확인해야 하고 문을 잠가야 잠을 잘 수 있고, 항상 경찰에게 쫓기는 꿈을 꾸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 후유증이 더 걱정이라고 밝혔다. / 강이종행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