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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다리
추억의 다리 ⓒ 한미순
봄에 오는 눈은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롭게 느껴졌던가. 대학 1년, 새내기 환영회 때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솔가지에 소복히 쌓이던 눈이 좋아 껑충대며 거침없이 카메라를 눌러대던 기억이 새롭다.

고즈넉이 숨죽인 산중의 봄눈. 교수님과 새내기 재학생이 한데 어우러진 환영회파티. 경건하게 축시 송시가 오가고 산나물 비빔밥에 툭진 막걸리가 인정을 풀어주고 노 교수님의 그윽한 샹송이 공간을 누빌 때 우리는 그것만으로 가슴이 타올랐었지-.

밖에는 봄눈 내리고 그때 우리는 만남 하나만을 축복하기에 여념이 없었지. "사람은 누구나 만남에 황홀해 한다"고 누군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억압과 질곡의 80년대-. 그리고 저항. 민중에 대한 순결한 애정과 역사에 대한 든든한 믿음을 담보하지 않는 일체의 양심과 행동은 다 거짓이고 헛것이며 부정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하고 뿌리깊은 애정과 믿음, 그것을 표현해내는 도덕적 행위. 우린 그것을 '운동'이라 했다.

그때 우리의 담론은 늘 치열하고 진지했다. '동지가'를 부르며 함께 부대끼며 느낀 동지애는 늘 각별하고 따뜻했다. 아무도 역사의 대장정에서 비껴난 삶을 살 수 없었다. 굴곡이 많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장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모두가 숨죽였던 80년대. 우리의 과녁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더하여 우리의 '운동'은 필생의 위업으로 청사에 영구히 빛날 것이라 믿었다. 전진도상에서 수없이 흘렸던 뜨거운 눈물과 함께 역사의 금자탑으로 길이길이 기억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시대가 변한만큼 우리들도 조금씩 변했다. 순수하고 절박하여 걷잡을 수 없이 격렬했던 20대의 흥분을 지나 이제는 평온과 진지함으로 사물을 관조할 줄 아는 신중함도 배웠다. 그 많은 흥분과 감정의 소비를 겪고서 말이다.

다시 봄. 왜 이리 봄이 오면 그리운지. 지난 아름다웠던 추억에 자꾸만 눈시울이 뜨겁다. 그시절 입던 청바지를 장롱 옷걸이에서 꺼내 벽에 걸어도 보고 노-트를 꺼내 조용히 그때 내 가슴을 꽉 채워두었던 숙제들을 더듬어본다.

<<에피파니: 새로운 각성, 이미 있었던 일을 어느 순간에 새로이 인식, 새로운 감동 종소리 등이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가 그 언젠가 계기가 생겨나면 의식 속에 떠오르게 된다. 어떤 환상적 내지 승화된 이미지로서….>>

그렇다. 하나의 문학작품에 있어 시간은 때로 역전, 정지될 수도 있다. 정경묘사일 수도 있겠고 작중 인물의 성찰이 있을 때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문학작품이 아니고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라면 어떨까.

내가 봄마다 꺼내볼 수 있는 것, 한번씩 폭풍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지나온 시절에 전율하여 환희에 젖곤 하는 그런 것, 그리고 이내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그걸 나는 임의대로 삶의 <에피파니>라 명명해본다.

지척에 몇 몇 소식 끊기지 않은 친구들을 불러보고 싶지만 한번 이별한 우리라설까. 만남 하나만으로 웃음 주던 그때와는 사뭇 달라진 우리들이다. 연연해하기 보단 그냥 한 편의 추억에 가까워하리라.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다시 읽으며 부디 설레는 봄을 눌러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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