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극단과 소속 배우들을 보고 공연 관람 여부를 결정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연극을 자주 접하다보니 익숙한 배우군들이 생기고, 그러면서 친근감과 안정감이 생기고, 다음 공연에서 그들을 또 보길 원하게 된다. 결과 내 지갑은 극단 차이무와 애플씨어터의 공연에는 주저 없이 열 수 있게끔 되었다.
이중 애플씨어터는 순간의 자극보다는 정감 있는 인간의 얘기로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어 좋다. 특히 <강택구>가 그랬고 이번 <깡통시장 blues>도 그렇다. 이 두 작품은 김노운 연출, 권오진 출연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는데 둘은 남북분단이 낳은 생채기를 뼛 속까지 느껴지게 한다.
에두와르도 데 필리포의 <나폴리의 백만장자>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깡통시장 blues>는 그 분단이 야기한 비극을 한 가족사를 통해 조망하고 있다. 전후(戰後), 부산의 깡통시장에서 꿀꿀이죽을 팔지만 행복했던 가족과 이웃, 그들이 어떻게 해체되는가를 연극은 사실적인 방식으로, 코믹스럽게 전개해 나간다. 그러면서도 가슴을 후려칠 때는 정말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이는 연출의 힘보다는 훌륭한 배우들 덕이 크다. 한 예로 실종된 줄로 알았던 아버지(권오진)가 가족, 이웃들과 차례로 해후할 때, 웬만한 배우였다면 뜻하지 않은 실소를 자아내게 할 수도 있던 장면을 여러 배우들은 감동적인 장면으로 만든다. 특히 권오진씨는 표정과 성량 하나 하나가 예술이다.
질곡의 삶을 사는 여인 역을 드라마틱 하게 연기한 박묘경, 먹보 아들 김경민, 마당발 아주머니 한승희(나중에 사복 입고 무대인사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저런 청담동스러운 미인이 쭈글탱이 할머니 역을 감쪽같이 해내다니!), 구수한 아줌마로부터 새침떼기 조카 역까지 호연과 천의 얼굴로 즐거움을 준 김현옥(나중에 배우론을 쓸 기회가 있기를!), 한 얼굴 하는 죠지 Lee 역의 김대건, 요즘 연극무대서 자주 볼 수 있고 점점 연기가 늘어감이 보여지는 딸 역의 유지연, 하와이 할배 정태동, 부두 양아치 이동수 또한, 어느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자연스런 연기로 앙상블을 이룬다. 이들에게선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러한 '극스럽지 않음'은 실제 소품을 통한 행위로부터도 전해진다. 물통에서 물을 길어 머리를 감고, 걸레도 빨고. 감자도 깎고, 고추를 장에 찍어도 먹고. 또 꿀꿀이 죽까지 해먹는 실제의 소품과 행위. 이는 관객과 배우 간의 약속이기 쉬운 연극의 속성에 가려진 커튼을 제친다. 이 리얼리티는 현장감을 주며 극에의 몰입을 더한다.
이러함에도 이 작품은 큰 아쉬움이 남는다. 보다 갈등을 더해 비극과 주제를 극대화 할 수 있었음에도 <깡통시장 blues>는 너무나 전형적인 수법으로, 너무나 간단하게 비사를 던지고, 마무리해 버린다. 때문에 느닷없는 마지막 장례식장 모습에선 어리둥절해진다. <깡통시장 blues>는 3부작 드라마를 기대했지만 2부에서 종영해버린 느낌, 파란만장을 기대했으나 파란만 일으킨 작품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