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보수언론들이 위의 '운영방안'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은 거의 소개하지 않고 단지 '사무실 방문취제 제한' '취재실명제' 및 '취재응대의 통보' 등만 가지고 침소봉대하며 '악의적 왜곡'시비를 낳고 있다. 여기에 보수언론을 맹목적으로 지원 엄호하고 있는 한나라당도 덩달아 문화부의 운영방안을 '신보도지침'으로 규정하고 있다.
'신보도지침'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박대변인의 '신보도지침론'은 언론통제의 '원조'격인 구보도지침이 존재했다는 것과 그것이 언론계 매우 심각한 해악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보도지침은 상대적으로 구보도지침보다 훨씬 나쁜 언론통제지침을 의미한다.
보도지침의 원조는 한나라당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박대변인은 언론통제지침의 원조인 구보도지침의 실제 내용과 형성배경을 과연 알고서 이 용어를 사용했는지가 그것이다. 구보도지침은 한나라당의 모태인 민정당이 만들었고, 지금 한나라당을 지배하고 있는 다선의원들 대부분이 민정당 출신인 소위 '민정계'임을 설마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 성명서를 보면 '반성없는' 한나라당의 뻔뻔스러운 '용어차용'인지 아니면 박대변인 개인의 역사의식 부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3월19일 박대변인이 발표했던 "'신보도지침' 철회하라"는 성명은 '군사정권하에서도 없었던 신보도지침'이라며 문화부를 비판한다.
여기서 박대변인의 성명은 역사도 없고, 현재도 없는 좌충우돌만 존재함을 확인한다. 군사정권이 나빴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군사정권의 잔재가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세력인 '민정계'를 '부정'함으로써 한나라당 스스로 누워서 침뱉기를 하고 있다.
또 '군사정권하에서도 없었던 신보도지침'을 주장함으로써, 보도지침의 내용도 모른 채 남들이 사용한다고 덩달아 사용하는 부화뇌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소한 보도지침과 관련해서 역사의식이 전무함을 스스로 폭로한다.
그래서 박대변인에게 '보도지침'이 무엇인지 그리고 '신보도지침'으로 비판하기 위해서 가장 적당한 사례는 무엇인지를 알려주고자 한다.
논조·보도방향·활자체·사진의 크기·카메라각도까지
보도지침은 전두환 정권이 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을 장악한 후, 1986년 9월, 당시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 등이 월간 '말'지를 통해 그 실체를 폭로한 후 세상에 알려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홍보조정지침'인 이 보도지침은 당시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이 하루도 빠짐없이 각 신문사에 은밀하게 시달하는 보도통제 가이드라인이다. 기사의 논조와 보도방향에 대한 간섭은 물론 구체적인 활자체와 사진의 크기, 카메라 각도까지 세밀하게 분류해 두었다.
그리고 이 기준을 적용하여 '가(可), 불가(不可), 절대불가' 등 3단계의 등급에 따라 사건이나. 상황, 사태의 보도여부는 물론 보도방향과 보도의 내용 및 형식까지 구체적으로 결정 시달했다. 이 지침을 따르는 제도언론은 취재한 뉴스의 비중이나 보도가치에 구애됨이 없이 '절대불가'면 기사를 주저없이 빼고 '불가'면 미련을 가지다가 삭제해버리며, '가'면 안심하고 서둘러 기사를 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는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세모는 네모로, 럭비공은 축구공'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사소한 일은 대형사건으로, 대형사건은 사소한 일이거나 없었던 일'로 뒤바뀌는 대중조작이 일상화됐다.
최소한 이 정도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은 알아야 '신보도지침' 운운할 수 있다. 그런데 박대변인은 이런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군사정권하에도 없었던 신보도지침'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알아야 면장도 할 수 있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신보도지침 사례는 바로 이것
여기서는 이와 같은 보도지침을 빗대어 '신보도지침'이라고 할 만한 사례를 이제 가르쳐주고자 한다.
"…피의자도 아닌 이정연씨 얼굴을 자료화면이나 어깨걸이는 물론 본문에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은연중에 범법자 취급하는가 하면, 4주 연속해서 정연씨 이름 앞에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앵커와 기자 모두 반복해서 사용해 이회창 후보 흠집내기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표현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해 6월 한나라당의 '공정방송특별위원회'가 주요 지상파 방송사에 보낸 공문의 일부다. 취재대상, 자료화면의 선택, 기사의 내용, 수식어, 보도횟수 등 '구보도지침'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내용이다.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신보도지침'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
바로 이런 사례를 보면, 한나라당 대변인이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서 '신보도지침' 운운하기에는 아직도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민정계' 의원들만 '보도지침'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나라당 의원들도 '보도지침'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박대변인은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정보공개법'을 만들어야
그래서 한나라당은 '신보도지침' 운운하며 갑자기 '언론자유'와 '취재자유'의 수호신처럼 자극적인 용어로 국민을 속일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시각'에서 진정 '언론자유'와 '취재자유'를 생각했다면, 지금 국회에서 낮잠자고 있는 '정보공개법'을 개정하거나 아예 새로 제정하여, 언론자유와 취재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위협'해야 했다.
사무실 방문취재의 제한, 취재실명제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 중 하나는 '정보공개법'이다. 한나라당이 최대정당으로 마음만 먹으면 '취재자유'의 범위를 대폭 확장할 수 있다. 무책임한 보수언론에 부화뇌동하면서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임'을 회피하고 '취재자유'를 제도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한나라당이라는 일각의 지적은 바로 이런 점에서 틀린 주장이 아니다.
반개혁적 기도가 아니기를
결론적으로, 최근 문화부의 '운영방안' 즉 언론개혁의 가장 낮은 차원으로써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취재관행의 개선안'은 충분히 의미있고, 한국 언론학계에서 수십년간 지적해온 사안이다. 그런데 이 '운영방안'이 가지고 있는 개혁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서 부정적 측면만 부각시키는 보수언론과 이에 동조하고 나선 한나라당의 의도가 궁금하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의도가 이후 전개될 '언론개혁'에 대한 제도적 개혁을 방해하기 위해서, 현재의 사소한 문제마저도 발목을 잡아 '무산시키려는 기도'의 일환이 아닐까 의심하는 언론관련단체들이 있다.
만약 이런 의도라면 지금의 현상은 언론개혁 전반에 대한 '저항'의 전주곡으로 간주될 만하다. 그리고 반언론개혁세력의 선봉에 한나라당과 박종희 대변인이 서 있는 것이다.
박대변인은 십수년간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는 '자랑'이 앞설 것이 아니라, 기자로서 경험이 '언론개혁'을 위해서 실제 활용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용어 하나 표현 하나 그리고 이를 둘러싼 충분한 역사적 의미까지 숙고하고 성명이나 논평을 발표할 때 많은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보도지침'과 같은 민감한 용어는 더욱 이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19일 성명서에서 '권력기관을 감시 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인 목탁적 기능을 포기하라고 종용…'은 잘못된 표현이다. 언론의 기능 중 목탁적 기능은 '교과서'에 없다. 이런 경우에는 '환경감시기능' 또는 '사회감시기능'이라고 한다. 또한 '목탁적 기능'이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목탁'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려면 '언론은 사회의 목탁' 또는 '사회적 목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국어사용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성명] '新보도지침' 철회하라
이창동 문광부장관이 말썽많은 소위 '홍보업무 운영방안'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유감이다. '취재통제'는 곧 권력기관을 감시·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인 목탁적 기능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여론의 지적을 외면하는 처사다.
노무현대통령조차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는데도, 이장관이 이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버티다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중요한 언론정책을 놓고 대통령과 주무장관의 입장이 이처럼 엇갈리다니 말이 되는가? 더구나 이장관이 "나는 노무현대통령의 분신"운운한 바 있어 노무현정부의 진짜 언론정책의 방향이 무엇인지 더욱 헷갈릴 뿐이다.
'군사정권하에서도 없었던 新보도지침'이라는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대통령은 짐짓 제동을 거는 척 하고 그 분신인 장관은 그냥 밀어붙이는 식이라면 매우 비겁한 행위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중의 하나가 언론자유라면 언론정책은 그 언론자유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정상이다.
노무현대통령은 당장 취재통제를 겨냥한 '新보도지침'을 철회시키고 언론자유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언론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2003. 3. 19
한 나 라 당 대 변 인 박종희
[성명] 新보도지침' 왜 철회하지 않는가?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이 밝힌 소위 '新보도지침'의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론통제, 알권리 침해 등 거센 역풍에 부딪히자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정부가 지침 같은 것을 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제동을 걸었지만 아직까지도 이장관은 철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장관은 관련 보도가 오도되고 왜곡됐다며 이마저도 언론의 탓으로 돌리는 독선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가판구독 금지, 오보와의 전쟁선포, 브리핑제 도입 등에 이어 이번 조치까지 마치 무슨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위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결과 투쟁의 시대가 아니고 토론을 통한 대화와 타협의 실질적 민주주의 시대라고 선언한 참여정부가 중요한 언론정책과 관련해 공론화라는 '참여과정'을 거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말로만 참여정부이지 실제로는 非참여정부가 아닌가?
우리당은 기자실의 브리핑룸 전환 등 취재시스템의 변화는 필요하다고 보지만 언론환경이나 홍보문화의 변화없이 편협한 인식과 단견으로 이렇듯 보도지침을 내리는 현정부의 언론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가조직의 권력남용을 감시하고 이를 알리는 언론취재는
더욱더 적극 보장되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이다.
'新보도지침'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
2003. 3. 20
한 나 라 당 대 변 인 박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