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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에서 가장 먼저 꽃 피우는 성미 급한 동백나무.

내가 단식중인 부용리 마을 회관 앞에는 그 동백나무가 신장처럼 버티고 서 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소식은 이 작은 섬 마을까지도 어김없이 날아와 박힙니다. 전쟁광 부시가 저지른 학살 전쟁으로 또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가뭇없이 스러져갈까요. 나는 더 이상 학살자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할 염치가 없습니다. 학살자 부시와 그를 지지한 모든 세력에게 저주가 있기를 염원합니다.

완도군에게 댐을 대신할 대안까지 알려줘가며 문화재 훼손하는 댐 공사를 중지하라고 호소하는 단식을 시작한 지 보름째. 완도군으로부터는 어떠한 응답도 없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시민들의 간절한 호소에 귀를 틀어막은 미국이나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굳이 가뭄에 무용지물인 댐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완도군이나 그 행태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수백 억의 예산을 들여 윤선도 유적지 발굴복원공사를 진행중인 바로 옆에서 수백 억의 예산을 퍼부어 그 유적지를 훼손하는 댐 공사를 하겠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지요. 하지만 완도군은 여전히 문화재 지역에 막무가내로 댐 공사를 강행하려 합니다.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불법으로 공사를 하다 적발됐으면서도 여전히 문화재보호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대충 서류 절차를 밟아 공사를 해보겠다고 나대고 있습니다.

불법 행위가 발각되어 공사가 중단되자 완도군은 어쩔 수 없이 문화재청에 현상변경 허가신청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반려되고 말았지요. 문화재에 무지한 관련 공무원들이 먼저 공사가 문화재에 미칠 영향 등을 검토하는 문화재지표조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표조사도 없이 허가를 내달라고 문화재청에 떼를 쓰다가 망신만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이토록 의식이 없는 완도군과 관련공무원들이 제 정신을 차려 댐 공사를 중지할 수 있으리라 바라는 것은 참으로 난망 해보입니다.

이제 기대할 곳은 문화재청밖에 없습니다. 문화재청은 주민들이 다 반대하고 문화재훼손이 불을 보듯 환한 댐 공사를 절대 허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댐을 대신할 해수담수화란 대안까지 있으니 문화재청으로서도 홀가분하게 불허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를 비롯한 주민들은 문화재청이 해야할 일을 대신 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문화재 훼손을 막지 못한다면 문화재청의 존재 이유란 어디에도 없겠지요.

날이 갈수록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집니다. 봄 햇살 쏟아지는 창가에 누워 있습니다. 면에 근무하는 공무원인 이웃 동네 형님이 부러 찾아왔습니다.

"몸은 괜찮 한가. 보름씩이나 굶었으니 어디 괜찮 하것 능가.
"괜찬하요. 버텨 봐야 알 것지만 아직은 괜찮소야"
"나도 옛날에 노조 일을 했었네. 그때 나도 단식을 했는디, 아따 그거 디게 못 참겠 든 만이. 그래, 가서 그냥 묵어부렀어. 그라지 말고, 이제 그만 묵으먼서 하소. 힘들어 갔고 어치케 싸워지겠능가. 금방 끝날 쌈도 아닌디."
"아니라우, 굶는 게 외려 맘은 편하요"

"댐 저거 증축 돼봤자 말짱 헛것인디. 우리도 다들 알고 있제 잉. 미안하네 잉, 나도 맘 같아서는 같이 반대하고 싶지만 녹을 먹고 있다보니 어쩔 수 없네이"
"먼 말을 그랗고 한다우. 그 맘 제가 다 알지라우. 맘만으로도 충분히 고맙소잉. 그나저나 완도군이 어째 그 모양으로 꽉 막혔는지 모르것소. 노화도에 담수화 시설을 해서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하면 보길이나 노화 서로 좋을 것 인디 말이요.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올 때는 기존의 보길도 댐으로 물을 먹고, 가뭄이 들어 댐이 마르면 담수화 시설로 만든 물을 먹고, 가물어도 걱정 없고, 문화재도 보호하고 얼마나 좋은 일이요."

군사정권시절 기존의 댐이 처음 만들어질 때도 그랬지만 이번 보길도 댐 증축의 주요한 목적도 보길도보다 인구가 두 배 이상 많고 상업 시설이 발달한 노화도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한 것이지요. 댐 증축으로 물 공급을 받게 될 가구수의 80% 이상이 노화읍에 있습니다.

"그래 말이시, 완도군은 아직 5,6공 시대여. 아직도 즈들이 상전인중 안다께. 보길도 사람들을 알로 보고 밀어 부친 거랑 께."
"금메 말이요. 일 처리하는 걸 보니 내가 봐도 5,6공 시대란 말이 딱 맛 것 소."

맞는 말씀이지요. 댐 증축공사 백지화를 위한 나의 단식과 주민들의 저항은 어찌 보면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투쟁도, 예산낭비를 막기 위한 투쟁도, 환경운동도 아닙니다. 아직껏 독재적인 완도군 지방 정부에 대항하여 벌이는 민주화운동이지요. 중앙 정부는 많은 부분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지역 토호 세력이 활개치는 지방 정부는 여전히 암흑시대입니다. 지방자치가 과거에는 경제권력만 가졌던 토호들에게 정치권력까지 쥐어준 꼴이 되고 말았지요.

"댐 저거 공청회 때도 안 그랬당가. 보길도에 댐을 증축하는데 공청회 자리에 다 해서 54명이 참석했어. 노화가 31명, 보길이 23명이 왔어. 거기서 보길도 주민들은 다 반대했다고. 근디 노화 사람들은 다 찬성했제. 그랑께 참석자 과반수 이상이 찬성했다고 그냥 밀어 부렀어. 보길도에 댐 하는디 반대하는 보길도 사람들은 무시하고 말이여. 노화에도 큰 저수지가 4개나 있응께 댐을 만들라면 노화에다 만들면 될 거 아닌가. 머할라고 굳이 문화재 훼손 해 가며 보길에다가만 댐을 만들라고 그 난린지 모르것네잉."

"글세 말이요. 완도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께. 보길도 주민들이 노화에 물 안 줄라고 댐 반대한다며 기를 쓰고 지역 갈등을 조장시키는 놈들이 있습디다. 그거 다 아이피를 추적해 봉께 완도군청에서 나온 겁디다. 군청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군민 화합을 위해 일하지는 못할 망정 지역갈등을 조장해서 쓰것소. 우리가 언제 노화에 물 안 줄라고 반대했소. 기존 댐에서도 이미 노화 사람들이 보길 보다 두 배 이상 많이 먹고 있지 않다우. 그거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시요. 댐을 늘려봐야 가뭄에는 무용지물잉 께 쓸데없는 예산 낭비하지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거신디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일은 안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주민 갈등이나 조장시키고 있으니 참 한심한 노릇이요."

"그래 말이여, 전라남도에서도 젤로 개혁이 필요한 곳이 완도군이랑께. 강진이나 해남 가서 이런 야그 하먼 사람들이 웃어 부러. 주민들도 문제여. 아직도 관만 보면 무서 해. 나도 공무원이지만, 면장은 말 할거 없고 면 직원이나 순경들, 심지어 농 수협 직원, 우체국 직원 앞에만 가도 말을 잘 못해 분다 께. 다 주인 의식이 없어서 그런 거시어."
"맞는 말씀이요. 그래서 이번에는 주민들이 나선 거 아니것소. 주인노릇 하려 드는 머슴들을 일깨워주고 주인 자리 찾자고."

"강진이나 해남 사람들 같았으먼 일 안했을 거신디. 보길 면민 전부가 완도 군청 앞에 가 한 사날 꽹가리 처부렀으먼 진작에 군수가 백기 들고 나왔을 거신디."
"보길도 사람들이 너무 순한 게 탈이요"

"그라고, 관하고 싸울라먼 아주 정확하게 해야 하네잉. 딸싹도 못하게 공겍을 해야 해.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 댕긴께."
"그래야지라우. 공부도 많이 하고 있소."

"공무원보고 철밥통이라는디, 난 아니라고 보네, 귀신이여, 귀신. 행정 공무원 한 이 삼 십 년 하면 귀신이 된당 께."
"하긴 그랗기도 하것씁디다. 쭉 지켜 봉께 미꾸라지 맨치로 잘도 빠져 댕깁디다. 책임회피에는 귀신입디다."
"그라께 맹심 해야 쓰네이, 나도 공무원이지만 안 죽고도 귀신 된 놈들이 공무원들이란 말이시. 고생하소. 나 갈라네."

귀신이라고. 안 죽고도 귀신 된 사람들이 공무원이라고. 아주 딱 맞는 말입니다. 그럼 이 싸움은 민주화운동이 아니군. 귀신들과의 싸움이라. 나에게는 부적도 없으니 이제 이 귀신들을 어쩐다!

덧붙이는 글 | 귀신들이 어떻게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내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완도군청 홈페이지 게시판을 방문해주십시오. '고스트 바스터'가 되어 귀신을 퇴치 하고 싶은 분들도 함께 초빙합니다.

 완도군청 게시판 http://www.wando.go.kr/plaza/wan20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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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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