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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니가 한국 서점가에서 '석유황제'로 부활했다?

"평화와 상관없는 전쟁놀이이며, 이 전쟁의 후유증은 재앙에 가까울 것이다."

야마니는 2003년 2월 6일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 도서전 초청연사로 참석, 이라크 전쟁을 이렇게 예언했다. 아랍세계의 위기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1960년대 이후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이라크 폭격 직전에 나온 제프리 로빈슨의 <석유황제 야마니(유경찬 번역, 이라크네)>가 유난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 책의 부제 '야마니를 알면 석유전쟁의 실체가 보인다'에서 한결 명료해진다.

미국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해소할 수 없는 석유라는 '검은 황금' 주도권 쟁탈전이 있고 그 복판에 언제나 아메드 자키 야마니라는 사우디 석유장관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1962년부터 1986년까지 25년간 사우디 석유장관, 초대 OPEC(석유수출국기구) 사무총장을 지낸 야마니가 침묵을 깨고 이라크 전쟁을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과도한 에너지 장악의도를 꺾기 위해 일생을 바쳐온 '지혜롭고 용감한 베두인족 사나이 이야기'를 제프리 로빈슨은 치밀한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했다.

야마니가 1973년과 1979년 제1, 2차 석유 위기를 어떻게 유도하고 극복했는지 생생한 비화를 마치 어제 일처럼 풀어내고 있다. 사우디 왕실과 아랍권의 이익을 위해 국제 테러단의 인질이 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석유 주권'이 야마니의 일생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들을 로빈슨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에게 현실의 문제로 던지고 있다.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미국의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 세계 여론이다. 중동에 있는 전쟁무기의 대부분은 미국이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은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더 위험한 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지 않았는가"하고 야마니는 반문한다. 그런데도 부시는 북한 문제는 평화적으로 풀겠다고 말하면서 이라크를 스텔스와 토마호크로 폭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어떤가. 200여 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미국의 비호 아래 무기 사찰을 한사코 거부하는 한 중동평화는 요원하다고 야마니는 분노한다. 그는 중동에서 미국의 두 가지 목표, 즉 이스라엘과 석유가 조화를 이룬 적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걸프만 석유 통제를 위한 무력에 아랍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어리석은 아랍 국가들 덕분에 미국은 항상 성공하고 있다"고 야마니는 한탄하고 있다. 야마니는 미국이 벌이는 이라크 전쟁의 목적이 '석유'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도를 바꾸어 이스라엘이 중동의 패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4반세기에 걸쳐 사우디 석유장관을 역임하고 사우디가 현대 국가로 탈바꿈하는 데 누구보다 공헌한 사우디 최초의 국제변호사 겸 에너지 황제 야마니의 이라크전 전망은 지극히 비관적이다. 국력이 약한 나라일수록 어린이, 여성, 노약자들의 피해가 큰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강조한다. 야마니가 걱정했던 전쟁참상 우려를 우리는 요즘 날마다 이라크전을 보도하는 알자지라 TV 화면에서 만나고 있다.

미국이 후세인을 축출(제거)한다고 해도 혼란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 미국은 이라크 점령 후 3년 통치를 분명히 하고 있고, 영국은 이라크의 분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야마니는 미영(美英)의 음모가 유전 분할이라고 예언한다. 이렇게 해서 요르단강 서안지역(West Bank)에서 팔레스타인을 축출하려는 이스라엘 샤론 총리의 꿈이 실현되면 요르단이 혼란에 빠져들게 되는데 샤론이 미국을 업고 괴롭히게 될 다음 상대는 이란과 시리아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지역 맹주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랍인들의 불길한 예측이고 동시에 미국인들의 음모라고 야마니는 온 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미국이 이라크전을 일으킨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배경을 알아보는 일은 소홀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은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왜 '깡패국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부시 때문이 아니라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패권주의, 미국적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저자 제프리 로빈슨은 야마니의 입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요즘 세계 각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반전여론은 미국이 이미 '세계경찰'의 자격을 상실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점령으로 세계 에너지 지배를 목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9.11 사태를 빙자한 미국의 '세계평화'가 얼마나 허구인가 알 수 있게 한다. 미국의 '세계 에너지' 지배 야욕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하고 일생을 바쳐 아랍의 '석유주권'을 지켜내기 위해 온몸으로 투쟁해온 '베두윈족 사나이' 야미나의 평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사를 던지고 있다. 제프리 로빈슨의 탁월한 다큐멘터리 '석유황제 야마니'는 미국과 아랍, 중동, 이스라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안목을 제공한다.


석유전쟁

정기종 지음, 매일경제신문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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