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발표하자 여야가 기다렸다는 듯이 지지하고 시민 사회단체가 일제히 반대하는 상황은 '보통사람(보기만 해서는 통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황당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회가 갈등으로 뒤틀리고 혼란스럽다고 스스로 자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울함을 지혜롭게 삭이지 못하면 심인성 불면증이나 신경성 소화불량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적합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 말에 '똘레랑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어 문맹이라 영한사전을 찾아봤더니 톨러런스(tolerance)로 되어 있고, 뜻은 '관용, 아량, 인내'등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기계가 작동할 때 허용 오차[公差], 약물 투여에 따른 내성[耐性]도 같은 말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강한 자가 베푸는 관용이어서 약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도 합니다만….
그런데 이 말이 프랑스에서 즐겨 쓰이는 이유는 대화의 예법, 예술과 문화, 개성을 중시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상대적 자부심 탓이라고 합니다. 말은 상대가 있는 법이어서 칼로 자르듯이 하면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 용어로 프랑스어가 많이 쓰이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습니다. 대화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상대와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뜻이겠지요. 품격 있는 말을 쓰는 사회, 이런 사회가 아마도 문명사회일 것입니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상대방의 의견을 내 의견과 타협(?) 해서 의견일치나 맹종하는 행동이 떳떳하지 않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타협이 아니고 합일점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면 대화는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용어로 이해합니다. 내 생각을 성급하게 상대에게 주입하려는 것보다 상대가 이해해서 납득하고, 가능하면 수용하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대화라는 것이지요.
미루어 짐작하면서 '똘레랑스'라는 말을 우리 생활에 옮겨보면 인내[忍耐]가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살아가면서 가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하늘에 삿대질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답답할 때 우리가 마음의 병을 얻기 전에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입장과 행동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중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내를 갖고 파병을 지지할 것인가, 성급하게 반미 대열에 나설 것인가, 심사숙고 해야할 때라고 봅니다.
지금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부시의 일방적인 전쟁을 공식(국회) 적으로 지지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반전을 외치는 시위대에 지지를 보내야 하는 마음과 행동의 모순상황, 이율배반의 갈등을 겪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제 뉴스에서 민주당 김근태 의원이 이라크전 파병반대 시위대열에 앞장선 모습을 보고 안타깝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파병을 지지하는 판이어서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대화와 인내의 시간을 좀더 갖기에는 미국의 이라크전 지지 및 요청, 독촉이 매우 급박했다는 가정 또한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지난해 미국 켈리 특사가 평양을 방문해서 핵보유 프로그램을 확인했을 때 "평양이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외과수술(북폭)'로 핵관련 시설을 제거한 다음 평양 정권을 독자적으로 신탁(점령) 통치하겠다"는 뜻을 남북 양쪽 정부 수뇌부에 강력 암시(협박)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북폭 시나리오는 1994년 불발로 끝난 계획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한국 정부에 '통첩'했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이 시나리오는 또 핵확산 금지에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베이징과 모스크바도 묵시적 동의를 표시하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전쟁광 부시의 음모가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의 입지는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는 상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시는 이라크를 점령하여 3년간 통치하면서 친미정권을 세우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하니 세계 최강 미국의 야욕에 누가 감히 맞설 수 있겠습니까.
이라크 파병으로 부시에게 받아낸 '북한핵 평화적 해결'이라는 불안한 전화약속은 부시의 전력으로 볼 때 언제 부도낼 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는 때려도 눈감을 수 있는데 북한만은 때리지 말라달라"는 간절한 애원을 담아서 부시에게 하소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만든 유엔을 부시가 무의미하게 만든 마당에, 조자룡이 헌 칼을 마구 휘둘러대는데, 누가 치명상을 입을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전을 지지하고 비전투병 파병 결정으로 얻어낸 북핵 평화적 해결 약속이 불투명하다고 여기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약한 자의 '인내'보다 프랑스 사람들이 쓰는 '똘레랑스'의 입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카우보이 횡포에 맞서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국력(자존심)이 부럽습니다. 우리 정부의 딱한 입장을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동물적인 본능이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처지가 어쩐지 찜찜하고 처량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를 점치는 사람들은 부시의 다음 먹이가 '북한'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시각이 미국 우익세력의 편협한 주장이라고 일축하기에는 한반도 민중의 사활이 너무 중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김대중 정권이 주장했던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을 믿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런 기조는 노무현 정권에서도 변함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요청한 이라크전 지지와 파병요청을 우리 정무가 수락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이해합니다. 그것이 비록 약자의 '관용'으로 비칠지라도... 거리에 나가 파병 반대, 전쟁 반대를 외치는 행동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부시의 전쟁이 명분을 따져서 수행하고 있는 전쟁인지, 온 지구인이 반대하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수퍼파워, 무소불위의 부시를 보면서 어떤 대응이 우리 민족에게 생존가능한 전략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소나기를 피하지 않고 서서 맞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터진다면 반전, 반미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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