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낮 정오 무렵, 떠나고 배웅 나온 사람들로 부산한 인천국제공항의 출국장.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성당도 아닌 공항 대합실에서 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신부가 서서 미사를 접전할 간이 탁자 위에는 십자가, 촛불과 함께 부시 미국 대통령의 험악한 사진이 함께 놓여있어 보통의 미사자리가 아님을 짐작케 했다.
참석한 사람들도 하나 같이 '전쟁반대, 파병반대'의 피켓을 들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지만 한 신부만은 굳게 다문 입이 비장해 보인다. 바로 26일 요르단 암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신성국(안중근학교 교장, 43) 신부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의 신부들과 수녀, 신자들도 미사를 함께 하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신 신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 중 몇몇은 떠나는 신 신부에게 한 상자의 의약품을 건넸다.
이들의 후원과 걱정을 안고 요르단 암만에 있는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에 합류할 신 신부의 이번 '순례'는 전적으로 신 신부 개인이 결정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떠나는 그의 표정이 더 결연해 보인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신 신부를 보내기 위한 '반전평화 미사'의 시작 성가는 여느 미사와는 달리 가수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였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과 베트남 전쟁이 평화를 증거한다
"오늘(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 93주기입니다. 당신이 순국하신 바로 오늘 안중근 의사가 저를 이라크로 보내는 것 같습니다. 안 의사는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정의를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라고 했습니다.
위기에 빠진 인류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받치라는 이 말씀에 따라 저는 오늘 이라크로 떠납니다. 평화의 순례자로 떠납니다. 그 순례 길에 순교자가 되어야한다면 저를 평화 앞에 봉헌하려 합니다. 이라크 형제들에게 여러분의 마음도 함께 전하겠습니다."
미사에서 들려준 신 신부의 말을 들은 몇몇 신자들은 그 비장함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신 신부가 생사의 길로 뛰어 들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 남다른 기억이 있었다. 65년도 당시 신 신부가 5살 때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의 베트남 참전이 바로 그것.
"65년 부산항이었어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시는 아버지를 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연합군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이후 살아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전쟁의 후유증이 너무 커서 폭력적인 모습으로 완전히 달라지셨습니다. 그 시절 우리 가정이 그렇게 전쟁 피해를 겪으면서 전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실감했습니다. 아마도 그 때의 기억이 절 이라크로 떠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신 신부는 성장기에 아버지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셈이다. 그같은 개인적 경험에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제라는 신분이 그를 결국 바그다드 전장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신 신부는 일단 요르단의 암만에 머물고 있는 반전평화팀과 합류한 다음 이라크 현지로 들어갈 계획이다. 다만 요르단 주재 이라크 외교관들이 철수한 상태여서 신 신부가 요르단에서 이라크 입국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어디가 됐든 신 신부는 그곳에서 이라크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그들이 우리와 같은 형제라는 것을 '증거'해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악의 뿌리
한편 이날 여러가지의 반전 피켓 속에서 눈에 띈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조선일보는 악의 뿌리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이었다.
얼핏 보면 낯설어 보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신 신부는 수 년전부터 지역에서 '안티조선운동'을 펼쳐온 인물임을 감안하면 조금도 이상스러울 것도 없다.
신 신부는 환손나온 사람들에게 이 현수막을 펼쳐보이면서 "<조선일보>는 부시 미 대통령처럼 악을 자행하고 국민 정신 속에 폭력을 조장하는 폭력 신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신부는 이 현수막을 이라크 현지까지도 들고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신 신부 환송차 충북 음성에서 올라온 조성학 신부는 "이 세상에 가장 억울하고 힘없고 고통받는 형제들 곁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신 신부는 지금 천당으로 가는 것"이라며 요르단으로 떠나는 신 신부를 북돋아 주었다.
미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다같이 '생명의 양식'이라는 성체 성가를 불렀다.
'내 피를 마시는 자 내 안에 살게되리 끝없는 행복 속에 평화를 누리리라 나 그를 사랑하여 나 그를 살게 하리 나 그를 영원히 영원히 살게 하리'
성가 속 '나'의 모습이 꼭 신성국 신부를 노래하는 것 같았다.
미사는 낮 2시경 끝이 났고 '온전히 주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던 신 신부는 예정대로 요르단 암만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날 신 신부 환송모임에는 신 신부의 모친 김병순씨(마리아)를 비롯해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6명과 수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5명, 일반 신자 등 총 5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