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목숨을 다하면 세상을 달리 한다.

27일 충청북도 단양군 상시리의 한 상가에서 전통상여로 장례를 치른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7시에 기상하였다.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어 차려 입었던 복장의 변화가 불가피했다.

웃옷을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서 일행과의 약속장소인 아파트 구내의 옆동으로 이동하였다. 이 지역에서 '단양 띠뱃놀이'의 보유자로 유명한 소리꾼 박정석(65세) 선생님을 비롯한 일행 5명과 함께 상시리의 상가로 향했다.

상가에 도착하니 88세로 세상을 달리하신 고인의 장례로 분주했다.

잠시 후 마을창고에서 꺼내온 조립되지 않은 상여가 마당에 놓여져 마을주민들에 의해 조립되기 시작했다.

상여의 기본 틀 마구리, 대까래, 연촛대 등으로 구성된다.
ⓒ 정홍철

상여뚜껑 기본 틀 위에 얹혀 질 뚜껑의 조립이 한창이다.
ⓒ 정홍철

▲ 기본틀 위에 관을 얹고 그 위에 뚜껑을 덮는다.
ⓒ 정홍철
지금의 장례가 대부분 장례예식장에서 치러지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시골에서의 상여 그 중에서도 철재의 조립이 아닌 수 십년 전부터 내려온 나무로 만든 상여를 보기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정규태(77세) 이장님은 "전부터 없애려고 하는 것을 반대했다"며 "이러한 것을 계기로 주민들이 모여서 협동심을 배가시킬 수 있는 동시에 사라져가는 전통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상여의 사전적 의미는 '초상 때 시체를 장지(葬地)로 운반하는 제구(祭具)'라고 되어 있다. 상여는 본래 영여(靈輿)와 상여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여는 2인이 드는 가마의 형태로 두 손으로 가마채를 잡고 상여에 앞장서서 가는 작은 가마로 혼백상자와 향로, 영정 등을 실어 영혼이 타고가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는 영여 대신 죽은 이의 사진을 어깨에 걸고 상여 앞에 서는 일이 많다.

발인제 고인이 살던 집을 나서며 발인제를 지내고 있다. 발인제에 맞춰 비는 멈췄다.
ⓒ 정홍철

발인 발인제를 마치고 상여꾼들에 의해 장지로 향한다. 이날 소리꾼은 요령을 흔들며 소리를 하고 상여꾼들은 "어허 오야~" 등의 후렴구를 한다.
ⓒ 정홍철
상시리는 위의 영여를 '요야'라 칭하고 있으며 신위, 영정, 만장을 든 세 사람이 상여의 선두에 앞섰다.

상여는 대틀 32명, 중틀 24명, 소틀 16명으로 한칸에 4명을 기준으로 한다. 상여는 마구리, 대까래, 연촛대, 상여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시리는 중틀을 사용하고 있으며 요야꾼으로 3명이 상여의 10여m 앞에 선다. 소리꾼은 요령을 흔들며 상여소리와 함께 상여꾼들을 이끈다.

상여가 장지를 향하는 동안 소리꾼의 지휘 아래 상주 사이에 벌어지는 실랑이는 보통 호상의 경우에 많다. 강이나 냇물을 건너기 전에 상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상주는 술과 안주를 상여꾼에게 대접하고 수 만원의 노잣돈을 상여의 앞머리에 꽂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학이 많다.

해학이 있는 실랑이 가던 상여가 다리 앞에서 멈추었다. 냇물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상주는 술과 노잣돈을 건네고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한 상여꾼들은 다시 장지로 향한다.
ⓒ 정홍철
잠시 쉬며 목을 축인 상여꾼들은 장지에 도착해 하관을 돕고 회닫이(흙과 회를 혼합해 관을 덮고 밟아 다지는 일)를 하게 된다. 이날 회닫이는 총 5회(괘)로 실시되었고 상여소리꾼이 회닫이에서도 소리꾼을 맡았다.

좁은 길도 무난 상여는 좁은 길도 무난히 통과 할 수 있다. 외나무 다리도 건널 수 있을 정도라고 하며 키의 크고 작음에 상관 없이 수평을 유지할 수 있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수 있다.
ⓒ 정홍철

"부디 하늘 나라로" 이 세상에 나시어 가족들과 이별을 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하늘나라에 가시어 편히 쉬시옵소서...
ⓒ 정홍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