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장례가 대부분 장례예식장에서 치러지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시골에서의 상여 그 중에서도 철재의 조립이 아닌 수 십년 전부터 내려온 나무로 만든 상여를 보기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정규태(77세) 이장님은 "전부터 없애려고 하는 것을 반대했다"며 "이러한 것을 계기로 주민들이 모여서 협동심을 배가시킬 수 있는 동시에 사라져가는 전통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상여의 사전적 의미는 '초상 때 시체를 장지(葬地)로 운반하는 제구(祭具)'라고 되어 있다. 상여는 본래 영여(靈輿)와 상여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여는 2인이 드는 가마의 형태로 두 손으로 가마채를 잡고 상여에 앞장서서 가는 작은 가마로 혼백상자와 향로, 영정 등을 실어 영혼이 타고가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는 영여 대신 죽은 이의 사진을 어깨에 걸고 상여 앞에 서는 일이 많다.
상시리는 위의 영여를 '요야'라 칭하고 있으며 신위, 영정, 만장을 든 세 사람이 상여의 선두에 앞섰다.
상여는 대틀 32명, 중틀 24명, 소틀 16명으로 한칸에 4명을 기준으로 한다. 상여는 마구리, 대까래, 연촛대, 상여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시리는 중틀을 사용하고 있으며 요야꾼으로 3명이 상여의 10여m 앞에 선다. 소리꾼은 요령을 흔들며 상여소리와 함께 상여꾼들을 이끈다.
상여가 장지를 향하는 동안 소리꾼의 지휘 아래 상주 사이에 벌어지는 실랑이는 보통 호상의 경우에 많다. 강이나 냇물을 건너기 전에 상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상주는 술과 안주를 상여꾼에게 대접하고 수 만원의 노잣돈을 상여의 앞머리에 꽂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학이 많다.
잠시 쉬며 목을 축인 상여꾼들은 장지에 도착해 하관을 돕고 회닫이(흙과 회를 혼합해 관을 덮고 밟아 다지는 일)를 하게 된다. 이날 회닫이는 총 5회(괘)로 실시되었고 상여소리꾼이 회닫이에서도 소리꾼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