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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민주광장에 금식기도회 천막이 쳐져있다
고려대 민주광장에 금식기도회 천막이 쳐져있다 ⓒ 류종수
화창한 날씨에 봄꽃들이 기지개를 피는 대학교정. 싱그러움으로 가득 찰 것만 같은 교정의 한가운데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햇살을 무색케 할 정도로 보기만 해도 추워 보이는 간이 천막이 허술하게 쳐져있다.

무심한 발길과 학내 스피커를 타고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말 속에서도 천막 앞에 붙은 '금식기도회 7일째'라는 큼직한 대자보는 의연하기만 하다.

31일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을 찾은 이날, 이불 하나에 서로의 다리를 묻고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이 천막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오전 기도 중이다. 각자의 성경책이 펼쳐져 있고 맞잡은 두 손에 간절함이 묻어난다.

꺼칠하게 자란 수염으로 기도를 이끌어 가는 강현석(29세) 한국기독교청년학생연합회(이하 한기연) 간사와 아직은 앳된 얼굴의 김바울(고려대 정치외교학교 학생. 22세) 한기연 연합회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의 참석자들은 그곳에 작은 천막 교회를 세우고 있었다.

기도하는 곳, 그 곳이 곧 교회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 류종수
"오늘 오전에 또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4000여명의 아랍인들이 폭탄테러에 지원했다는 뉴스를 보고 이 전쟁이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음으로 몰아세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는데 지금은 죄를 미워해서 사람을 죽이는 이상한 전쟁을 보고있습니다.

미국의 이런 탐욕적인 전쟁이 하루 빨리 중단되고 오만한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명확한 심판이 내려지길 기원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침묵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우리들은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계속 내야하고 폭탄을 안고 가는 이라크 민중의 평화를 위해 기도 드려야 합니다."

강현석 간사의 기도에는 같은 기독교 선교단체의 각성을 촉구하고 그들의 동참을 호소하려는 소망이 묻어있다. 기도는 계속됐다.

"내 처소에서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지금 당장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각자 소리내 기도를 했다. 기도문을 읊는 몇몇 학생은 눈물을 훔쳤다.

오늘로 7일째를 맞이하는 '금식기도회'는 깊어 가는 전쟁의 비극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한기연 전체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한기연의 대표성을 가진 김바울 회장과 강현석 간사만이 금식기도회를 이어가고 있지만 4월 4일부터는 전체 서울 지부(총 10개 지부) 모두가 동참할 예정이다.

그들이 음식을 먹지 않는 방법으로 기도를 이어가는 이유는 명료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인간이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억제하면서 인간이 참을 줄도 알고 함께 살아갈 줄도 아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거부하는 탐욕스런 전쟁은 그래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위이기 때문에 이런 전쟁이 중단되어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가운데 있는 강현석 간사가 기도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가운데 있는 강현석 간사가 기도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류종수
김바울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 금식기도회를 이어가면서 소망하는 바가 있다면 기독교사회에 대한 반성과 동참이라고 말한다.

"다른 많은 단체들이 잘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역량으로 기독교 사회의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이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진정으로 사람과 생명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전체 기독교인들이 공유하면서 전쟁반대에 다함께 나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부시 미 대통령의 기독교 근본주의와 시청 앞을 성조기로 가득 메웠던 한국의 우파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판도 이들은 빼놓지 않았다.

강현석 간사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의한다는 부시의 미국과 성조기를 흔들며 파병까지 찬성하는 일부 기독교가 과연 무슨 신앙을 가진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신앙을 잘못 알고 행동하면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종교가 아편이 되는 것이다. 아편은 자기만 망치게 하지만 잘못된 종교는 남까지 무너지게 한다"고 말해 진정한 기독교인은 전쟁을 반대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기도에 참석한 황영준(23세)씨는 "수많은 죽음 앞에 자신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부시를 보며 전에는 분노했지만 지금은 같은 종교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런 생각은 오늘 낭독한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는 구절로 끝나는 성경의 루가복음 11절에서도 잘 나타난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한 유대인의 율법을 어기고 병자를 고친 예수의 행동이 바로 사람과 생명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였다는 걸 이 구절이 증명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믿는 신자들은 당연히 생명을 죽이는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를 넘어선 사람에 대한 사랑

김바울 회장(왼쪽)과 강현석 간사
김바울 회장(왼쪽)과 강현석 간사 ⓒ 류종수
아직은 작은 목소리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 고통이 기독교사회에 전쟁의 참상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강경대 열사 사건 이후 신앙 속에 개인과 사회를 같이 넣고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92년도에 IVF(한국기독교학생회)에서 전화(轉化)해서 한기연을 만들었던 그들의 역사가 지금의 금식기도회를 증언해주고 있다.

지붕만 있는 천막에다 한 겹의 비닐로 바람을 막은 이 작은 '교회'에 29일 밤에는 불교학생회에서 한 학생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 학생으로부터 "금식기도까지 하는 모습이 너무 놀랍고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격려의 말을 들었다는 강현석 간사는 "종교는 달라도 사람에 대한 사랑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너무 감사했다"고 전한다.

천막 안에는 단과대학 학생회에서 보내 준 온풍기도 놓여져 있었다. 허름한 '교회'에는 두 사람만이 금식기도를 이어가지만 사람과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2월말에 결혼했다는 강현석 간사의 허리가 조금 안 좋다고 했지만 이들은 아직 견딜만하다고 한다.

김바울 회장과 강성현 간사가 시작한 이번 금식기도회는 4월 4일에 한기연 서울지부 전체로 확산되고 부활절(4월 26일)까지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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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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