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가 북한이 이라크와 다르다고 주장해온 근거들은 첫째 북한은 이라크와 달리 지난 10여년간 주변국을 침략하지 않았고, 둘째 11년이 넘는 이라크 무장해제의 역사에 비해 북핵 문제가 발생한 것은 수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셋째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집단과 직접 연루되지 않았으며, 넷째 김정일은 핵포기의 대가로 경제적 혜택을 바라지만 후세인은 주변국을 협박하고 지배하며 공격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설명은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기 위한 '자의적인 해석'으로밖에 볼 수 없다.
첫 번째 근거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남한을 침공할 계획을 포기했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대북강경책 및 강력한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북강경책을 합리화할 때는 북한의 '호전성'을 강조하고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할 때는 북한이 최근 주변국을 침공하지 않았다는 편의적인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에 있어서도 부시 행정부의 자기모순은 여실히 드러난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진 것은 1989년부터이고,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가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다며 그 무용성을 주장해왔다. 무엇보다도 부시 행정부의 핵심적인 관리들은 출범 전부터 북한을 대량살상무기 확산 주범이라고 몰아세우면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등 군사력 건설을 주장해왔다.
특히 작년 10월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추방,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영변 핵시설 재가동 준비 등을 해온 반면에, 이라크는 유엔의 무기 사찰 활동에 협조하고 자진해서 미사일을 폐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을 이라크보다 더 시급하게 다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져온 것이다. 북한과 협상은 하기 싫고, 무력 사용을 추진하자니 이라크 침공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해 '대화 없는 평화적 해결'을 주창해온 것이다.
세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알-카에다와 연루되지 않았듯이, 이라크 역시 알-카에다를 지원했다는 증거를 부시 행정부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네번째 문제 역시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은 경제적 혜택이 아니라 체제안전보장이라는 점에서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협상은 거부하고 위협론을 한껏 부풀리면서 MD 등 군비증강의 정당성을 강화해온 태도에 비춰볼 때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이라크와 달리 보는 것은 북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 침공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왔기 때문이다.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비롯해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북한이 노력했던 시기에 이라크, 이란과 싸잡아서 "악의 축"이라고 규정할 때가 불과 1년여전인데, 정작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마무리되면,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태도도 한층 강경해질 가능성이 높다. 핵문제와 관련해 상황의 진전이 없거나, 오히려 악화되면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자발적으로 무장해제를 선택하던지, 아니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던지 양자택일하라"며 북한을 강하게 몰아붙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북한이 이라크와 다르지 않다거나,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군사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미국에게 배신을 당한 이후 '반미'를 통해 체제 결속을 강화해온 후세인 정권과는 달리, 김정일 정권은 근본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체제 생존을 모색해왔다.
또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핵문제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북한이 협상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평화적 해결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는 없는 것이다.
북한과 이라크의 '근본적인 차이'
실제로 북한과 이라크의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차이는 다른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는 미국의 북폭론의 근거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다른 하나는 북폭론의 가능성을 높이는 근거가 된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 이라크와 북한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라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점령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반면에, 북한에 대해서는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유 확보를 통한 에너지 통제력의 강화와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 질서를 친미적으로 재편함으로써 패권주의를 공고화하려는 부시 행정부에게 있어서, 이라크는 반드시 점령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강력한 정치적 기반인 군수산업체 및 석유재벌, 일부 건설회사 등에 막대한 이윤을 보장해줌으로써 2004년 재선의 강력한 후원자로 계속 남겨두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반면에 북한의 경우에는 이라크와 같은 '확실한' 전략적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목표는 분열될 수밖에 없다. 흔히 미국의 대북정책의 근간이라고 하는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 정책 역시, 부시 행정부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외교를 통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협상이 불가피한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포기에 대한 반대급부로 체제안전보장을 해줄 경우, 후세인 정권과 함께 대표적인 "악의 축"으로 규정한 김정일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즉, 부시 행정부는 비확산정책과 정권교체(regime change)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라크처럼 무력을 사용하기도 쉽지 않고, 제재와 봉쇄를 통해 북한의 붕괴를 유도하는 것도 현실적인 선택이 되기 힘들다는 점에 부시 행정부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문제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한시적'으로 방치하고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및 주한미군 재편 등 군사적 목적 달성의 근거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를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해결하지 않고서는 재선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북한위협론' 활용 전략도 계속 고수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는 이라크와는 달리 북한에게는 남한,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에서의 전쟁이나 북한의 붕괴를 '강력하게' 원하지 않는 국가들이 있다는 점도, 부시 행정부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이라크와 북한의 차이점이 북폭론의 근거를 약화시키는 것이라면, 또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 즉 이라크-미국, 북한-미국 사이의 관계는 북폭론의 위험성을 높이는 측면을 안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라크는 나름대로 미국의 침공 회피 노력을 한 반면에, 북한은 전쟁불사론에 가깝다는 것이다.
미국의 침공이 임박해지자 이라크 정부는 유엔의 무기 사찰 활동에 거의 전적으로 협력하고 사정거리 150km 이상의 미사일도 자진해서 폐기하다가 '폭격'을 맞고 말았다. 이는 위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부시 행정부의 대이라크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라크 점령에 있었기 때문에, 이라크 정부가 아무리 전쟁 회피 노력을 해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달리 한반도의 위기는 단순히 미국의 대북강경책에 의해서만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북미간의 상호 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유념에 둘 필요가 있다. 미국에 대한 배신감이 어느 때보다 강한 북한은 전쟁이 벌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굴복하지 않겠다며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북한이 전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초강대국 미국과 대치 상황에 있으면서, 더욱 중요하게는 이라크의 사례를 보면서 북한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항전 의지만이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기회의 창'이 될 것으로 믿었던 제네바 합의가 '배신의 늪'이 되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고, 이는 곧 북한이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기 때문에, 미국이 북폭을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미국이 진지한 태도로 북한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극히 낮고, 북한이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할 가능성도 극히 낮은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미국의 북폭 가능성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차 높아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