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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가 미군에 의해 점령된 것은 몽고의 훌라구가 바그다드를 함락한 직후 745년만의 일이다. 745년전의 일이니 만큼 차이점도 많겠지만 그때와 지금을 한번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1. 당대 세계 최강대국이 바그다드를 공격했다. 알고 있다시피 당시 몽고의 기마대는 세계 최강이었고, 현재 미국의 전력은 세계최강이다. 당시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나 현재 이라크의 후세인은 모두 강제적인 협상을 거부했다.

2. 바그다드 함락 전 예루살렘을 둘러싼 분쟁이 있었다. 745년전에는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인한 예루살렘 공방전이 있었고 현재는 아랍권과 이스라엘간의 다툼이 있었다.

3. 암살단파와 알카에다 745년전에는 알라무트가 이끄는 이스마엘파의 한 분파인 암살단파가 몽고군의 진격을 저지하려 했다. 이들은 아사신(Assassin)이라고 불렸으며 영어 '암살자'의 어원이 될 정도로 유명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몽고군에게 무너졌다.

현재는 빈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가 미국에 맞서고 있으며 그들 세력의 중심지인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에게 점령당해 있는 상태다.

4. 짧은 기간의 포위 끝에 함락 당한 바그다드 745년전의 바그다드는 수주일만의 포위 끝에 함락당했다. 현재의 미군은 전쟁개시 3주만에 바그다드를 함락시켰다.

5.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갈등 표출 당시 몽고군에는 시아파인 나시룻딘이 고문으로 있었다. 나시룻딘은 시아파와 기독교도를 제외한 수니파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할 것을 훌라구에게 조언했다. 이로 인해 바그다드 주민 10만명이 학살당했다.

현재는 미군의 첨단무기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주민을 학살하고 있으며 수니파 정부의 차별에 불만을 가졌던 시아파 주민은 미군의 진격을 환영하고 있다. 미국 역시 이 갈등관계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6. 고립된 바그다드 당시 압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가 무너지고 칼리프가 처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세계에서 이를 도와주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국가는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무슬림 세계는 수많은 군소 국가로 갈라져 있었고 이 분열이 너무나도 심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다구나 압바스 왕조가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 점도 주요한 요인이었다.

현재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었음에도 아랍권은 친 서방권 국가들이 공식적으로는 이를 방관하는 입장이며 이란과 시리아 등은 미국의 다음 행동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까지가 공통점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며 예상을 해보고자 한다. 물론 끼워 맞추기 식 예상이니 어디까지나 현실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7. 앞으로도 745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어떨까? 시리아로 진격을 하던 몽고군은 몽케황제가 죽었다는 사실로 인해 진군을 멈추고 그 땅에 일한국을 세웠다. 시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던 미국이 부시의 내년 선거 패배로 그대로 공격을 멈추고 이라크의 친미 정권을 유지하려고만 하면 비슷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8. 아랍권의 분열이 심화될지 모른다. 몽고 침입 후 아랍권의 분열과 반목은 심화되었는데 현재는 친서방권 국가와 반미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와의 반목이 심화될지도 모르고 거꾸로 범 아랍권 단일화의 움직임이 있을 지도 모른다.

9. 쿠르드족은 아랍권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바그다드 함락 전에 몽고족과 싸워왔던 이란의 지도자 잘랄 딘은 쿠르드족 자객에 의해 살해당할 정도였다. 현재 미군에 협조하고 있는 쿠르드족은 이용만 당할 지도 모른다.

10. 결국 침략과 영토확장을 즐기던 몽고제국은 역사 속에서 소멸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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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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