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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교실은 이들의 지친 삶에 더 없는 즐거움이 되고 있다.
장구교실은 이들의 지친 삶에 더 없는 즐거움이 되고 있다. ⓒ 이국언
장구교실 강사인 정영래(50)씨가 이들과 인연이 닿은 건 지난해 12월. 취미 삼아 익힌 장구가 주변에 알려지면서 한 자원봉사센터에서 장구교실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장구교실은 매주 목요일 한차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다.

어렸을 때 어깨너머로 꽹과리나 북을 배워왔던 정씨가 뒤늦게 다시 풍물을 접한 것은 지난 97년. 취미 삼아 한 농협 주부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였다. 한동안 잊었던 가락과 장단은 늘 그녀의 손끝을 맴 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 길로 가면 기생된다고 극구 반대하셨지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서 그런지 내 눈엔 꼭 그것만 보이더군요."

정씨는 일찍부터 가무(歌舞)의 길을 가고 싶었지만 이런 말까지 오고 가는 집안분위기에서 다른 방도는 없었다. 정씨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우도농악 설장구로 유명한 김동언 선생을 찾아 본격적으로 우리가락을 전수 받아오고 있다.

정씨가 자원봉사에 참여해 오기 시작한 것은 5년여 전 그가 광주시립장애인복지관에 공공근로를 하면서부터다. 공공근로는 3개월 단위로 정해지는데 그때마다 늘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공공근로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 날부터 그는 일이 없을 때에도 이들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손발이라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욕심부리지 않고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장구교실 강사 정영래씨
장구교실 강사 정영래씨 ⓒ 이국언
생활이 막막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필요한 곳을 찾아 자원봉사에 나서게 됐다. 노인당을 찾아 점심을 대접하기도 하고 잔치가 있을 때에는 노래봉사에도 참여했다.

그가 평소 익힌 풍물과 민요는 이럴 때 더없이 빛을 발휘했다. 어디서 보이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기가 좋아 취미 삼아 하는 일이었지만 독거 노인을 모신 자리나 경로당 잔치에 우리가락은 더없는 위안이고 흥이었다.

장구는 그런 오묘한 힘이 있었다. 오동나무 통과 말 가죽이 어울려 품어내는 장구가락은 채가 가죽에 부딪힐 때마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며 이들 수강생들에게도 묘한 흥으로 다가왔다.
벌써 2시간째 이어지는 장구교실. 연신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도 누구하나 쉬자는 말이 없었다.

장구교실에 참여하고 있는 김모(44)씨는 "병원에 있으면 답답하기만 한데 여기 나오면 이것저것 다 잊을 수 있다"며 "햇빛도 보고 바람도 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장구강습이 있는 날을 잊지 않기 위해 달력에 표시를 해 둔다는 노모(36)씨는 "어렸을 때 동네 마을잔치 할 때 흥을 맛보고는 처음"이라고 했다.

알코올상담센터에서 근무하는 강필선씨는 "우리가락은 발림과 추임새가 들어가 내적 갈등을 해소하는데 더없이 좋다"며 "장구교실에 참여하면서부터 표현력이 늘고 동작이나 목소리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말을 잘 않던 사람들이 지금은 그동안 사는 것이 힘들었다고 가끔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보여줄 뿐인데 재미있다고 해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장구는 끝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정씨. 그는 지금, 가락을 더 익혀 언젠가 이들과 함께 자그마한 공연을 선보일 욕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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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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