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인연이 있께랑. 나한테는 아무 짝에 쓸모없는 책들도 다른 사람한테 발품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은 소중한 책이 있게 마련이제. 나는 그 인연을 돈을 받으면서 만들어주는 사람이랑께."
구수한 사투리로 책과의 인연에 대해 거침없이 말씀하시는 아주머니는 30년 가까이 청계천에서 헌책방을 운영하였다. 책과 함께 한 해, 두 해 나이 먹는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아주머니는 나름대로의 책에 대한 철학으로 '하나의 빛'이라는 헌책방을 꾸려가고 계셨다.
" 나가 30년동안 책장사를 하고 있응께 주위에서 되지도 않는 장사를 못허러 하냐고 따지는 분들이 있지. 하지만 문화와 세월이 묻어있는 이런 책들을 나가 찾아다니고 팔지 않으면 그냥 쓰레기더미에 파묻히지 않겄어? 나가 하는 일이 구질구질허다고 말하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고 나는 스스로 애국자라고 생각하고 있당께."
아주머니는 쑥스러우신지 코를 만지시며 웃음을 지으셨다. 돈이 되는 책들만 파는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먼저가 뿌옇게 쌓인 책들을 보물처럼 여기시는 아주머니가 그저 순진한 할머니로 보였다. 더불어 책을 좋아한다고 자부했던 나로 하여금 아주머니의 책에 대한 열정은 부끄러움을 안겨 주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 좋은 책을 왜 안 읽는지 모르겠당께. 우리 집에 오는 대부분의 단골 손님은 머리가 훌러덩 벗겨진 할아버지랑께. 헌책방이라고 하면 퀘퀘한 냄새나는 창고라고 생각 하나벼. 여기 <난중일기> 이런 책은 70년전에 만들어졌는데, 맨날 교과서에나 난중일기 보지 직접 이런 책을 만져볼 수 있기나 하간디? 젊은 사람들이 헌책방에서 보물같은 책들을 많이 발견해갔으면 하는게 내 바람인디."
"팔기 아까운 책이 있냐구? 아이구, 이 양반! 책은 우리 물건이라 다 소중하당께. 어쩔수 없이 버리는 것도 소중하고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소중하제. 책이 팔리는 거이 아까운게 아니고 임자가 소중한 책을 참 잘 샀다고 고마워하며 가지고 갈때가 제일 행복한 것이제. 우리는 그 때 보람을 느낀당께. 가지고 있는것만이 능사는 아니제."
헌 책 몇 권 팔아서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 생각을 하는 일로도 힘들다는 것이 헌책방 일이다. 하지만 책으로 사람과의 인연 만드는 일이 좋아서 책과 함께 보낸 그 세월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한번쯤 헌책방에 들러 먼지 쌓인 책 속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것도 삶을 살찌울 수 있는 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