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노벨상 100주년 기념으로 특별한 상이 만들어진다. 노벨상이 만들어지기 이전, 현대 과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노벨상과 같은 의미의 '거꾸로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한 것이다. <산소>는 5명의 노벨상 위원회 위원들이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며 그 첫 번째 수상자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노벨상 위원회에서는 1회 '거꾸로 노벨상'을 산소를 최초 발견한 사람에게 주기로 결정한다.
산소의 최초 발견자는 과학사 책을 뒤져보면 쉽게 나올 것 같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연구를 한 세 사람이 등장하면서 복잡해진다. 스웨덴 출신의 화학자 셸레는 산소를 발견했고, 영국 출신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공식적인 개념으로 발표했고, 프랑스 출신의 라브와지에는 산소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정립했다.
노벨상 위원회 위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18세기의 과학자와 그들의 아내들까지 조사하고 나서도 위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결국 연극은 그 첫 번째 수상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고 끝난다. 이는 이 연극이 단순히 <산소>의 최초 발견자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연극은 노벨상 위원회 위원들이 산소의 최초 발견자를 찾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명예욕과 같은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김광보 연출이 지속적으로 관심 가져온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지난 4월 8일 <산소>가 공연중인 대학로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김광보 연출과 작품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 공연하고 있는 <산소>는 어떤 작품인가?
"과학연극이다. 목적극의 형식을 띠고 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과연 이 작품이 연극인가 고민을 했었다.
지금까지 제가 관심 가졌던 부분이자 연극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가 인간에 관한 것이다. 이 작품을 배열을 해 나가면서 세 과학자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1777년도와 2001년을 오가며 세 과학자의 삶을 비교 대조를 통해 과학자들의 순수 이면의 인간적인 욕망과 이것은 순환구조를 띠면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과학연극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본 속에 포함되어있는 과학적 의미들을 많이 제거시켜 관객들에게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 자막을 통해 연도와 장소를 설명하고 있다. 다큐드라마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가?
"픽션과 논픽션이 혼재 해 있다. 라브와지에 부인 같은 경우는 논픽션이다. 라브와지에 부인은 실질적으로 라브와지에(Lavoisier, Antoine Laurent)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앞서가는 여성이였다.
실제 우리 무대 뒤에 라브와지에 그림이 있다. 저 초상화는 실제로 존재한다. 얼마 전에 어느 신문에 <아내>라는 책이 소개되었다. 그 책표지가 저 그림이었다. 그 밑에 어떻게 해설되어 있었냐하면 '라브와지에가 자기 부인에게 영감을 구하고 있는 듯한 모습' 이렇게 설명되어있었다. 라브와지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프리스틀리(Priestley, Joseph)나 셸레(Scheele, Karl Wilhelm)같은 경우도 실존인물로서 논픽션이다. 하지만 세 사람이 만나 인간적인 관계를 갖는 것들은 다 픽션이다.
이들 모두 대단히 유명한 화학자이고 프리스틀리 같은 경우 미국에 화학분야에 관한 프리스틀리 메달이있다고 알고 있다."
- 희곡을 쓴 칼 제라시(Carl Djerassi)와 로알드 호프만(Roald Hoffmann)은 유명한 화학자이다. 호프만의 경우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데 이 작품 속에는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 관한 풍자, 지식인들에 관한 조롱이 숨어있다.
"원작에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전혀 재료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실제 다양한 소스들이 대본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부각시키려고 했던 게 인간적인 관계, 인간의 욕망이라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이 더 많이 표현되었다.
칼 제라시(Carl Djerassi)와 로알드 호프만(Roald Hoffmann)이라는 사람이 자기 반성적 입장에서 대본을 쓴 것은 분명한 것 같다."
- 이 연극에서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자의 아내들도 조명을 받고 있다. 이는 과학분야에 있어 여성이 소외 받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반성적인 부분인 것 같은데?
"그렇다. 이 극에서 소른양의 논문주제가 <18세기 화학자들에게 있어서 여성의 삶>이라고 설정되어있다. 또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여성의 역할, 아내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폴 부인이나 프리스틀리 부인 같은 경우 덜 표현되어있으나 라브와지에 부인은 돋보이는 여성상으로서 부각되어있다. 이 연극에서 라브와지에 부인이 가지고 있는 선도적 입장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 암전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1777년에서 2001년으로 순간적으로 장면이 계속 반복되면서 바뀌고 있다. 그것을 무대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바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인류최초의 키스>에서도 사용했지만 음악을 반복하면서 암전 시키지 않은 채 무대전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무대 전환이라고 해서 굳이 암전을 시킬 필요가 뭐가 있는가 생각했다. 노출시키면서 전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연극적 재미가 아닌가 생각을 했다. "
- 배경 막 뒤에 공간을 두고 배경을 회전문처럼 해서 사용하고 있다?
"무대 디자인은 오윤균 선생님이 했다. 무대는 서재로 설정하고 있고 과학을 상징할 수 있는 실험도구들을 진열해 놓았다. 그 다음에 뒷 배경 뒤에 라브와지에 부인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곳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장소이다.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 의자의 위치를 바꿔가면서 무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의자의 위치를 변화시키면서 공간을 이동시키는 그런 방법을 선택했다. 작년에 공연했던 <헨리4세>에서와 마찬가지이다. 뭔가를 움직이면서 공간을 설정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 부과되는 조명, 수반되는 음악 이런 요소를 가지고 시공을 뛰어넘게 만들었다."
- 라브와지에 부인 역을 제외하고 모두 1인 2역을 했다. 이 중 박용수와 정규수가 연기한 배역은 1777년과 2001년의 모습이 정 반대이다.
"기본적인 욕망의 구조는 과거와 현재가 똑같다. 이렇게 배우들에게 설명을 했다.
현재의 인물이 과거의 인물을 연기하는데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인물은 맞닿아 있다. 그렇다고 연기적인 표현에 있어서 똑 같이 할 필요는 없다. 극의 재미를 불어넣기 위해 인물의 성격을 과거와 현재를 상반되게 표현했다."
- 협찬 받은 산소청정기를 광고하는 듯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산소청정기는 협찬을 받은 것이다. 산소청정기 뿐만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협찬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제가 제작자가 아니니까 얼마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업에서 협찬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산소청정기를 연극적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연극 속에 집어넣어 봤다.
90년대 중반까지 실연광고라고 연극하기 직전에 제품광고를 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애교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 핸드폰 울리는 장면도 애교인가?
"핸드폰 장면은 실제로 대본에 있다. 칼 주라시와 로알드 호프만 할아버지 두 분이 재기 발랄하게 대본을 썼구나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관객을 이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들도 재미있게 연기의 맥을 확 풀어버리자 생각했다."
- 다음 공연에 대해서
"7일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국립극단 공모에 당선된 정영문 작, 김광보 연출의 <당나귀들> 이라는 작품을 한다. 공연은 5월 22일부터 5월 30일까지이다. 그게 끝나면 앞에 연습하다 중단된 작품이 있는데 6월 15일부터 연습 들어가는 <프루프>라는 작품이 있다. 그 작품이 8월 15일부터 9월말까지 제일화재 쎄실극장에서 공연된다. 그게 끝나게 되면 10월에 코펜하겐이라는 작품을 한다. 올해는 희한하게 화학연극, 수학연극, 물리학 연극을 하게 됐다.
올해 마지막 작품으로 <인류최초의 키스>를 썼던 고연옥씨가 쓴 우리 극단(극단 청우)의 히든카드 <웃어라 무덤아>라는 작품을 공연한다. 또한 <인류최초의 키스>는 12월 중순부터 내년 1월 사이 앵콜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 다음 공연 <당나귀들>때 다시 뵙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