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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애들은 대부분 접고 고무줄로 친친 매는 것이 번거로운지 종이 구기듯 구기작거렸고, 여자아이들은 차분히 접고 선생님께 물어가며 열심이다. 뭔가 나올 듯 하다.
2. 염색
제대로 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간단한 방법만 배웠다. 먼저 모양을 만든 것을 가지고, 미리 준비된 염액에 천을 넣고 색이 잘 베어들도록 150회 정도 주무럭거린다. 우리가 가진 염액은 빨강, 노랑, 보라, 황토였다.
천과 함께 손은 점점 물이 들었는데 처음에 아이들은 행여 옷에 튀길까 걱정하며 손가락도 담그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천연염색은 잘 지워지고 손에 색이 진하게 물들수록 염색도 잘 된다는 말에 적극적이 되었다. 치자는 상처를 쉽게 아물게 하고, 아토피나 피부병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황토가 좋다고 하자 우르르 아이들이 달려갔다. 아이들처럼 철없이 오무락조무락하는 사이 허기가 느껴왔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벌써 헹구기를 하고 있었다.
3. 헹구기
여러 색을 하는 아이, 한 가지 색을 하는 아이, 벌써 염색을 마치고 헹구기에 나선 아이. 처음엔 꽤나 넓겠다했던 연습장이 점점 비좁아 보이기 시작했다. 손을 헹구고 난 후에도 한 손엔 노란색, 한 손엔 보라색 물이 들자 재미 반 걱정 반인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선생님 제 옷에도 묻었어요. 어떡하죠. 지금으로 봐선 안 지워질 것 같은데…"
"하하하. 아니야 잘 지워져. 치자 단무지 안 먹어봤니? 그 치자 단무지도 이렇게 색이 입혀진거야. 그러니 몸에 해롭지 않아. 오히려 화학옷감으로 만든 옷이 더 안 좋지."
그제서야 아이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4. 널고 난 후 개울가로
저마다 물들은 손수건을 빨래처럼 널고 서로 멋지다며 야단법석이다. 곁에서 손을 씻던 아이들이 그래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자, 치자 선생님은 개울가로 가자고 하신다. 우와하며 아이들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뛰쳐나갔는데 뒤이어 다른 학교 학생들이 염색을 시작했다.
질척이는 땅에 신발이 더렵혀진다며 털고 있는 아이.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마구 달려가며 물창을 밟고 가는 아이. 개울은 가까웠고 물이 적고 얕았다.
"이래뵈도 2급수란다. 여기엔 많은 물고기들이 살아."
"정말요?"
손가락만 담그던 아이들이 이 말에 말끔히 씻는다. 그래도 남는 물감에 손바닥을 보여주자,
"그건 제일 열심히 했다는 증거야. 제일 예쁜 색이 나올걸"
하는 치자 선생님의 말에 뿌듯해하는 녀석들의 모습이란…
5. 쑥개떡 만들기
처음엔 쑥범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가져온 쌀을 내놓고 꽤 많이 먹을거라며 우쭐대던 녀석들이 자기들 앞에 놓인 덩어리를 보며 매우 실망하는 눈치다.
"선생님 저 쌀 많이 가져왔는데, 이것밖에 안돼요? 너무해요"
"선생님 이걸 어떻게 만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손에는 아직도 물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행여나 떡에 스며들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리라.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아직은 아이들에게 설득력이 없었나보다.
남학생들은 정말 '개떡'이라는 말이 맞게 마음대로 빚어댔고, 여학생들은 동글납작하게 빚었다. 모자란다며 소리치는 아이들은 한 덩어리 더 가져다 만들었는데, 다 익을 때까지 뭐하냐고 묻는다. 그 때 참나무 아저씨가 부르신다.
6. 생태체험 - 뱀과 도롱뇽
참나무 아저씨가 과일바구니에서 뱀을 꺼내며 얼마 전 학습장 뒷산에서 잡았다고 한다. 들꽃의 유래와 생태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는데, 들에 핀 꽃이 너무 이르다며 대체된 내용이다. 참나무 아저씨의 생태계에 대한 설명과 함께 드디어 등장한 뱀. 태어나서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일 정도로 '뱀'이란 단어만 보면 온몸이 싸늘해지고 떨리는데, 아이들은 얼른 보자며 달려든다.
"누구 만져볼 사람?"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아이들이 달려가는데, 재미있게도 남자애들은 무서워하는 반면에 여자애들은 신기해하며 너무 좋아한다. 뱀 만져보니 어떠냐고 물었더니,
"많이 부드러워요. 우리 살보다 더 부드러워요."
어른인 나도 보기조차 무서운데, 뱀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굳어진 대문이 아닐까 싶다. 뱀이 다시 과일바구니 속으로 들어가자, 이번엔 작은 통이 나온다. 익살스럽게 뱀장사 흉내를 내시던 치자 아저씨가 이번엔 손등 위에 작은 도롱뇽을 올려놓는다.
또 한 번 "만져볼 사람?" 하자, 우르르 나가는 아이들. 손등에 얹어놓기도 하고, 등을 쓰다듬기도 하는 아이들. 그 곁으로 빼꼼히 들여다보았더니 아저씨가 만져보라고 하신다. 하지만 덜컥 겁이 나는 것은 뱀을 만져보라고 할 때와 같았다. 결국 만지지는 못하고 사진만 한 장 찍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그것도 못 만지냐며 웃어대는데 어쩔 수 없었다).
그즈음 되자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쑥개떡은 언제 나오냐고 허리를 찔러댄다. 그 말이 떨어지가 무섭게 치자 아저씨가 쑥개떡 다 되었으면 내오라 한다. 그때부터 오합지졸이 된 아이들은 자기가 만든 모양을 찾아 쟁반을 들었지만 자기 것은 못 찾고 다른 것을 먹게 되었다.
참기름을 바른 쑥개떡은 쑥내음보다는 참기름냄새가 더 많이 났다. 할 수 있다면 따뜻한 햇볕을 등에 쬐며 쑥을 캐고, 그 쑥을 2급수라고 하는 그 개울물에 잘 씻어 빻기까지 다 체험해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해주는 것만 먹었지 스스로 음식을 못 해본 아이들에게 수고로움으로 얻은 양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쌀 한 톨이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쳐야하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각자 염색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손수건을 들고 학습장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니 햇살이 너무 좋았다. 봄볕에 딸 내놓고 가을볕에 아들 내놓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눈이 부신 하늘을 보고 싶은 아이들은 수건을 머리에 쓰거나 목에 매어주면서 너무 좋아한다.
학교에서 조금 먼 곳이었지만, 한 달에 한 번 있는 바깥 나들이는 이렇게 아이들을 아이답게 하는구나 싶어 뿌듯했다.
*염색과정*
1. 염료와 옷감 선택 : 계절과 기호에 따라 옷감(모시, 면)과 염재(치자, 소목, 황토 등)를 고른다.
2. 초염 : 선택한 옷감에 무늬를 넣어 염료에 뒤척인다.
3. 매염 : 백반, 소금, 철 등으로 매염하여 색채가 옷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견뢰도 상승).
4. 건조 : 헹군 후 그늘에 넣어둔다(초염과 매염은 동시, 반복 가능함).
5. 세탁 : 중성세제로 개별 손빨래를 한다.
햇살 생각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날. 계발활동을 문화체험반으로 정해놓고 너무나 몰려든 아이들을 여러 말로 끊었지만, 결국 30명을 받았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 많은지라 좀 걱정을 했는데 아이들은 재미있어한다. 다음에 또 오자는 아이들의 말. 처음엔 뭐 이런 곳이냐며 투덜대더니 참나무아저씨가 과일바구니 속에 구렁이가 들어있다고하자 그때부터 호기심을 가진 것 같다. 다른 학교 1학년 쯤 되어보이는 순수한 아이들이라며 칭찬해주시던 치자선생님. 다음에 오게된다면 집에서 물들일 옷을 가져오겠다며 또 오자는 아이들. 어쩌면 또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손길이 간 음식을 많이 먹다가 스스로 빚어 만든 쑥개떡을 맛나하며 먹는 아이들을 보며 참 수고로움의 아름다움이구나 했다. 돌아오는 길에 직접 만든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목에 두른 모습이 어찌나 이쁘던지. 다음 달엔 또 어디로 나가볼까.
모처럼 맑은 공기로 숨을 드고난 아이들. 어쩐지 더 말개진 모양새다. 아이들 중 수업시간에 말도 없고 소극적인 봉훈이가 제법 멋진 수건을 만들었다. 학교에 가서 녀석을 칭찬해줘야겠다. 너무나 진지하게 해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도 손이 빨갰던 영창이도 잊을뻔 했다.
이번 체험으로 아이들이 화학염료로 만든 옷감 대신 천연염료로 만든 손수건을 직접 만들어 봄으로써 한층 우리 것에 더 다가갔을 것이다. 비싸긴 하지만 건강을 생각하는 일이라 여기니 더더욱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선물한다며 매우 좋아했다. 지하철에서 남학생들은 모두 손에, 여학생들은 목에 둘렀다. 오늘 뭐 하나 했다는 듯! 그리고 파충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으리라. 그저 징그럽다는 것이 아닌 그들이 살아있어야 다른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