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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지난 1월 7일 워싱턴서 열린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 회의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이태식 외교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야부나카 미토지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
(AP)지난 1월 7일 워싱턴서 열린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 회의에 앞서 악수를 나누는 이태식 외교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야부나카 미토지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 ⓒ 연합뉴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다자 회담을 성사시킨다는 계획하에 미국, 중국, 일본 등 관련 국가들과의 접촉을 강화해나갈 예정이다. 특히 다음달 중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목표를 갖고 외교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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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다자 회담 수용이 갖는 의미

북한이 조건부를 달긴 했지만, 다자 회담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은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국가전략을 둘러싼 북한 내부의 논쟁에서 온건파의 입지가 다시 강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길게는 90년대 중반 이후, 짧게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 내부에서는 제네바 합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해왔고, 작년 10월 핵파문 이후 강경파들의 입지가 크게 강화되어 왔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협상이 실패할 경우 억제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핵무장 시도 가능성도 내비쳐왔다.

그러나 핵무장 자체도 쉽지 않을 뿐더러, 핵무장에 성공하더라도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은, 지금까지의 경직된 태도에서 벗어나 다자 회담 수용 의사를 천명한 것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으로 잠시 좌절된 탈냉전 시대의 생존전략, 즉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생존을 모색한다는 근본적인 전략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 변화는 부시 행정부 내 온건파의 입지를 강화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미국은 이라크 조기 점령 계획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듦에 따라 향후 외교안보전략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딕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파들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대북정책과 관련해 북한의 완전한 핵포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협상은 없다는 강경론을 주도해왔고, 문제 해결 방식으로 대북한 제재와 군사적 압박 강화를 선호해왔다. 북한의 태도가 유연해지지 않았다면, 한층 대북 압박이 강화되었을 것이라는 전망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다자 회담 수용 의사를 밝힘에 따라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상대적으로 온건파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줄곧 요구해온 다자 회담을 북한이 수용한 만큼, 어떤 형태가 되었든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를 더 이상 피할 명분은 없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직접 북한의 다자 회담 수용을 "훌륭한 진전"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이번 조치는 노무현 정부의 외교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마땅한 수단이 없어 곤혹스러워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주변국들을 상대로 활발한 외교를 펼치고 있을 때, 북한이 전격적으로 다자 회담 수용 의사를 밝힘으로써 노무현 정부의 외교는 한층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의 긍정적인 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향후 정세를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북한이 다자 회담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이 완화되지 않으면 북한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다. 미국 역시 여전히 대북정책의 목표와 수단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내부의 논쟁이 조기에 정리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힘들다.

존재하지 않는 다자 회담의 틀을 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일본, 남한 등은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지만, 공식적인 제안은 없는 상태이다. 5개국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남북한, 일본, 호주, EU를 참여시키자는 '5+5'안부터, 유럽을 제외한 동북아 6개국으로 하자는 의견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고, 이 틀을 정리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다자 회담의 '의제'를 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신속하고 검증가능하며 완전한 방식으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종결시키는 방안을 의제의 최우선 순위로 하자고 할 것이고, 북한은 이와 병행해, 혹은 이보다 앞서 불가침 조약 체결 등 미국의 대북체제안전보장 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맞설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향후 외교의 핵심은 조속히 실현될 수 있는 다자 회담의 형식을 정하고, 회담 의제를 선정해 관련 국가를 설득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안의 성격상 다자 회담의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틀은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6개국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이사국인 유럽연합이 참여하는 7자 회담틀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의제와 관련해서도 한꺼번에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것보다는 1차적으로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방지하고, 2차적으로는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을 핵 파문 이전으로 되돌리며, 궁극적으로는 제네바 합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합의틀을 마련하는 순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의제를 조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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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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