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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가 열렸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진달래 개화시기를 잘못 맞추는 바람에 외지에서 기대를 갖고 일부러 찾은 관광객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진달래 축제 추진위에서는 뒤늦게 사과문을 내긴 했다. 하지만 주최측의 무성의한 행사 준비로 멀리서 온 관광객들에게 지역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는 책임을 면키는 어려울 전망이다.

▲ 두어 차례 내린 비로 올해 진달래는 일찍 지고 말았다.
ⓒ 정병진
그런데 여기서 나는 영취산 진달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하나 짚어 보고자 한다. 작년에 처음 영취산을 찾아, 10만여 평 이상 만개한 진달래를 보고서 들었던 의문이다.

진달래는 본디 공해에 강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영취산의 광활한 진달래 군락지 형성과 국가산단의 공해와의 관련성은 없을까? 나는 이 점이 몹시 궁금해졌다. 아마도 영취산을 등산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봄직 하다. 그만큼 바로 인접해 있는 산단에서 내뿜는 공해물질로 대기의 공기가 매우 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취산에는 현재 진달래 외에 다른 나무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 몇몇 업체들은 "진달래를 가슴에 담아가세요"라는 현수막을 달기도
ⓒ 정병진
나의 의문점들을 풀어 보기 위해 여수 출신의 아는 선생님을 만나 물어 보았다. 그도 심증은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확실한 건 잘 모르겠으니, 그 인근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분에게 물어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한 공해가 문제라면 N화학이 있는 뒷산에는 진달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지적했다.

집으로 돌아와 진달래와 공해의 연관성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LG 상록재단에서 산림청 임업연구원과 함께 영취산 토양조사를 실시한 자료를 어렵사리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LG 상록재단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자료

대기 오염과 산성비 등으로 인한 자연환경 오염이 심각해짐에 따라 LG상록재단은 산림청 임업연구원과 함께 산성화된 산림을 생명의 숲으로 살리자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 첫 시작으로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한 전남 여수시 영취산에 서 LG상록재단이 산림청 임업연구원과 합동으로 영취산 토양을 채취하여 오염도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산성비의 영향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취산 30개소에서 재취한 토양은 PH 4.3~5.0으로 평균 4.5였으며 부식질(유기질) 함량은 3~4%였다. 이는 PH가 전국 평균 5.5보다 1포인트나 낮은 것으로, 식물이 살 수 없는 4.0에 가까운 것이며 부식질 함량도 전국 평균 10%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에 따라 영취산에 주로 자생하고 있는 화백나무의 경우 생육 상태가 극히 나쁜데다 잎 끝이 마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비교적 공해에 강한 진달래 등 일부 식물만 크게 번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LG상록재단은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따라 우선적으로 99년 4월 26 일에서 5월 15일까지 30일간 영취산 일대 9만여 평의 땅에 석회, 고토비료, 칼슘, 인산 등이 담긴 토양중화제 103,000kg을 살포했다. 이는 토양산도를 교정하고, 유용한 토양생물 증식과 낙엽 부식화 등을 촉진함으로써 수목생장을 원활하게 하여 건전한 산림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싶어서 보다 정확히 알아보고자 산림청 임업 연구원에 직접 연락을 해보았다. 다음은 임업 연구원에서 임업 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는 정진현씨와의 전화 통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정병진
- 임업연구원에서 LG 상록재단과 함께 영취산 토양 조사를 실시한 적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도 이런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있는가?
"영취산 토양조사는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15년째 매년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토양이 산성화되어 그것을 개량하기 위해서 중화제라 할 수 있는 석회를 뿌리는 일도 병행한다. 이런 토양조사는 영취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전국 여러 곳을 선정하여 하는 것이다."

- 알다시피, 영취산에는 10만여 평에 달하는 진달래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과 토양 산성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진달래는 본디 산성화된 토양에 잘 견디는 식물이다. 그래서 지표식물(Indicator plant)이라고 부른다. 진달래가 많은 곳은 토양 산성화 정도가 높은 곳이라고 보아도 된다."

- 영취산이 이처럼 산성화된 것은 인근에 위치한 산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실제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아무래도 그 영향이 상당히 클 것이다. 공단 굴뚝이 내뿜는 이산화황 같은 대기 오염물질이 강우와 섞여 토양이 산성화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의 작물은 중성 토양을 좋아한다. 산성화된 토양에서는 거기에 적응력을 갖춘 한정된 작물만이 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토양 산성화는 숲의 단순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보통 숲이라면 다양한 나무들이 어울려 자라야 하는데 산성화가 강한 토양에서는 다양한 나무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보통 소나무만 자라는데, 소나무도 사라질 정도가 되면 그 자리에 진달래가 들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진달래꽃이 많은 피는 곳은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숲의 건강성은 심각한 곳이다."

▲ 영취산 진달래 군락
ⓒ 정병진
- 그동안 토양 개량사업으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나무가 잘 자라는 PH의 적정치는 PH 5.2 ~ PH 5.5 수준이다. 우리가 98년도에 영취산을 조사했을 때 PH 4.3이었다. 이 정도면 매우 강산성에 속한다. 그래서 꾸준히 개량사업을 실시하면서 조사한 결과 99년도에 PH 4.8로 나왔고, 2001년도에 PH 5.2에 이르렀다.

올해 것도 있지만 아직 발표가 되지 않았다. PH 1포인트가 작은 수치인 것 같지만, PH 4.3에서 PH 5.3으로 바뀌었다면 토양 정화능력이 10배 정도 호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수치는 PH 5.5 이다."

- 그렇다면, 영취산 전체의 토양이 그만큼 좋아진 것인가.
"실험은 영취산 전체지역을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시험지역에 한해 실시한다. 영취산 전체를 하려면 엄청난 석회가 들어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
- 토양개량 사업으로 당장 토양은 좋아질지 모르지만, 공단이 공해물질을 계속 배출한다면 임시방편일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지 않은가.
"공해와 관련해서는 해당 전문부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 환경부가 관장하는 데, 환경부만 해도 워낙 하는 업무가 다양하다."

▲ 영취산에서 내려다 본 산단
ⓒ 정병진
여수시 관계 부서에선 영취산에 대한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락해 보았다. 산림 보호과 담당 공무원은 영취산에 진달래가 많은 주된 원인은 "산불"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도 영취산에는 세 차례나 산불이 났는데, 그로 인해서 소나무가 다 없어졌고 진달래가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달래 축제를 위해서 시에서 진달래를 일부러 심기도 한다고 말했다.

산단의 공해는 과거 N화학 때문에 심했었지만, 지금은 산림을 오염시킬 만큼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란다. 하도 답답해서, 임업 연구원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잠깐 소개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산불이 난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산단의 공해물질과 영취산 진달래가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제야 "그것은 아니라"며 슬쩍 한발 물러선다. 뻔한 사실을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으로 애써 감추려는 것 같아서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도 여수시는 영취산 진달래 축제를 위해 보조금 형태로 매년 2천만 원 가량의 거액을 지원하고 있다. 숲이 거의 사라지고 진달래만 가득한 마당에, 그걸 관광 자원으로 삼아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축제를 벌인다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화려한 축제의 그늘에는 공해로 인한 심각한 환경오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축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숲을 살리는 데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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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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