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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프랑스, 독일, 러시아는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뚜렷한 역할을 보여주었다.

이들 3국은 미국이 이라크 침략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대량 살상 무기 보유 의혹에 대해서도 UN 주도의 무기 사찰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이들은 미국이 인류 사회의 평화적 염원에도 불구하고 UN의 결의 없이 영국과 함께 이라크를 침략한 것에 대해서 국제 질서의 룰을 침범한 것으로 간주하여 계속 반대해 왔다.

사실 이들 3국은 미국과 적대적인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과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략에 대해서 반대했던 것은 우선적으로 이라크에서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권·영향력을 침해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예상되면서 이들 3국은 이라크의 재건 사업에서도 전후 특수를 미국이 독식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UN 주도의 전후 재건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했던 것도 인류 사회의 보편적 원리보다는 자국의 이해 관계에 기초한 측면이 컸다고 사료된다.

어떠한 동기에서 출발했든, 이들 3국이 이번 전쟁을 반대한 것은 21세기 세계 체제의 구조와 행태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의 징조로 해석된다.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국가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는 특별한 견제 없이 미국의 의도에 따라 일방적으로 관철되었다.

21세기 들어서서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는 더욱 강화되는 듯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그 결정판처럼 보여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상호 긴밀한 연대 속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하여 단호하고 일관되게 반대·비판한 것은 국가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확고해진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에 최초의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이 지금까지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에 대해서 방관·방조해왔던 모습에서 탈피하여 사안에 따라서는 나름대로 비판과 견제의 관점을 견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실 프랑스와 독일은 EU(유럽연합)의 수립과 강화를 통해서 미국의 세계 패권을 견제하고자 지속적인 노력을 펼쳐왔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은 대단히 눈부셨다.

그는 냉전 체제에서 미국, 소련 등 초 강대국으로부터 프랑스의 자주 노선을 견지했던 드골 전 대통령의 후예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드골주의는 민족적 자존심을 강조하는 프랑스인의 기본적 정서와 그 맥을 같이하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미국에 대한 시라크의 자주 노선은 그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한편 독일의 슈뢰더 총리는 지난 총선에서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한 상태에서 경제 상황의 악화로 최근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프랑스, 러시아와 함께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반대하면서 국민적 지지세가 일정한 반등을 보이고 있다.

비록 프랑스와 독일은 역사적으로 심각한 경쟁·대립 관계에 있었지만 유럽의 옛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 강력한 EU의 건설에 뜻을 같이해 왔다.

그 결과 EU는 자본, 시장, 기술 등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급성장해 왔다.

특히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EU는 미국보다 훨씬 우수한 지위를 점해왔다.

EU는 인류사에서 사회 복지 체제를 최초로 체계화시켰으며 EU의 문화·이념적 전통은 미국의 척박한 문화적 풍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이제 EU는 강력한 경제·사회·문화적 기반에 기초하여 미국과 정치·외교·군사적인 경쟁 관계로 전환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EU는 고도의 연합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번 전쟁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주도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덴마크, 스페인 등 일부 국가와 미국의 경제 지원에 유인된 동부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입장에 동조함으로써 EU 내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지도력에 상당한 상처를 안겨주었다.

이처럼 미국이 EU 내부의 일부 세력을 분할, 견인한 것은 강력하고 통일된 EU를 수립하고자 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의도를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지를 뚜렷이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현 단계 EU는 대외적인 정책 노선에서 일관되고 통일된 모습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는 결국 EU 내부에서 프랑스와 독일 등 미국에 자주적인 강력한 유럽 진영을 수립하고자 하는 진영이 영국을 필두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시키고 하는 세력에 비해서 확고한 주도권을 행사하기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요망됨을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프랑스와 독일은 기존 15개국에 동부 유럽 제국을 비롯한 유럽의 주변 10개국을 EU에 신규 가입시킴으로써 EU의 양적 확대에 주력해 왔다.

향후 프랑스와 독일은 이러한 EU의 양적 확대에 기초하여 EU의 정치·경제·외교·군사 등 제반 측면에서 일관되고 통일된 EU의 내부 단결력을 제고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움직임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 역시 소련이 붕괴되면서 국가 사회주의 체제를 이끌었던 과거의 영광은 무너졌고 지금도 붕괴된 경제 기반을 복구하는데 전력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것을 방조하는 대신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의 안정적 편입에 주력해왔다.

따라서 경제 성장에 여념이 없는 현 단계 러시아로서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수장인 미국과의 관계 악화는 국익을 고려해 볼 때 별로 탐탁치 않을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집권 초기에 이전 옐친 정권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긴밀한 우호 관계를 맺는데 주력해왔다.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는 시장 경제의 틀이 정착되고 유가 급등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물가도 안정세를 이루고 있다.

사실 푸틴 대통령은 KGB 출신으로 러시아 제일주의로 확고히 무장된 사람이다.

얼마 전 체첸 반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무자비한 단호함은 그의 이념적 지향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러시아는 EU와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는 경제 성장을 위해 미국과 협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세계 패권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보여진다.

사실 EU와 러시아는 동일한 유럽권으로서 지정학적·문화적·역사적으로 친숙한 관계에 있다.

또한 EU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러시아에게 거대한 자본, 시장, 기술 등을 제공할 수 있고 러시아는 경제력에 비해 군사적 측면에서 열위에 있는 EU에게 강력한 군사력을 제공할 수 있다.

사실 프랑스와 독일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서 유럽에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시켜려는 미국의 의도를 배제시키기 위해서 독자적인 군사 체제(EU신속대응군)를 갖추고자 노력해왔다.

이렇듯 보완 관계에 있는 러시아와 EU의 연대는 미국에 비해 정치·경제·외교·군사적으로 열위에 있는 양 진영을 미국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비상시키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한편 중국은 지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이번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원론적 수준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면서도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서 일관되고 뚜렷한 비판을 자제해 왔다.

따라서 중국은 현 단계 지상 과제인 고도 경제 성장의 안정적 틀을 조성하기 위해서 미국의 패권주의와 대립하기보다는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에 타협하고 협조하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중국의 소극적 태도와 견주어 확고하고 일관된 반대와 비판을 표명했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 3국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 인류 사회는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다.

현 단계 이들 3국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견제할 만한 역량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과의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대립과 충돌은 회피하면서 특정 사안에 대해서 UN을 주축으로 연대, 국제 여론을 주도하면서 미국의 세계 패권을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이들 3국은 정치·경제·외교·군사 등 모든 영역에서 미국과 균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EU라는 큰 틀 속에서 연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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