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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숲
900 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선뜻 책 소개가 망설여지는 건 단순히 그 부피가 주는 중압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베트남에 대해, 호치민에 대해 권위를 내세울 만한 1차 자료가 별로 없는 우리 현실에서 윌리엄 듀이커의 책 <호치민 평전>은 분명 그 없음을 보충해주는 훌륭한 사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30년에 걸쳐 '호치민이 한 식구로 느껴질 정도로' 그 인물과 베트남을 연구해온 동기 자체가 '객관적'이지는 않으며, 미국인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자체도 (미국의 입장을-인용자) 의식하는 한 방식"(844쪽)이라고 할 수 있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책의 군데군데 덧칠되어 있는 미국인의 시각을 만나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1965년 통킹만 사건(미군 군함이 북베트남 해안에서 북베트남 해군의 공격을 유도한 사건) 이후의 대미항전의 시기에 대한 서술은 9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과 30쪽도 채 되지 않는다. 미국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게 두려웠던 것일까?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 입은 자존심의 발로?

이 '의도된' 통킹만 사건으로 인해 미국이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고, 북베트남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부었던 도발적 행위를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 지은이의 의도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더군다나 호치민의 개인 간호사가 호치민의 아들을 낳았으며 1957년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따위의 근거가 불확실한 '야사'를 "진실이라는 느낌이 드는 사건"이라며 상세하게 묘사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말이다.

"베트남에서 미국인들은 5만 5천 명 이상 죽었지만, 전쟁 기간 베트남인은 남북을 합쳐 1백만 명 이상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호 아저씨의 동포들은 꿈을 실현하겠다는 그의 결의 때문에 상당한 댓가를 치렀던 셈이다."(804쪽)

이 대목에 이르면 읽던 책을 집어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만든다. '상처입은' 미국의 자존심의 발로(?)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심한 망언이다. 베트남 민중의 희생이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 호치민의 '결의' 때문이었다니…. 이건 극우파들이나 할 소리가 아닌가?

지은이는 전쟁 당시 베트남의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베트콩이 남베트남 정부군보다 규율이나 사기 면에서 앞서 있다는 점에 당혹감을 느껴" 이 문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이 노 혁명가를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베트남 주재 미대사관에서 근무했다고 하지만 CIA 요원으로 근무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 정도로 지은이의 사고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장점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미국인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서 오는 이런 시각의 왜곡을 읽어낼 수 있다면 이 책은 그 어떤 호치민에 관한 전기보다 풍부하고 방대한 자료를 제공한다.

20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수집이라는 지은이의 말에 진실이라는 힘을 실어줄 정도로 오랜 비밀 활동으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던 1945년 이전 호치민의 삶을 정교하게 복원한 것만 해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호치민(1890~1969). 19세기의 막바지에 태어나 유학과 신학문을 고루 접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교적 교양을 쌓은 인문주의자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이며, 베트남 독립을 설계하고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대항한 투쟁에서 승리한 민족주의자.

듀이커는 이런 호치민의 이력의 이면에 있는 모습을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낸다. 유교적 소양을 쌓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호치민은 스물 한 살 때 프랑스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활동으로 수배된다. 그는 할 수 없이 조국 인도차이나를 떠나 여객선의 요리사 보조 노릇을 하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을 떠돈다. 호치민의 혁명적 삶의 초석은 바로 이 시기에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호치민이 베트남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부각되는 과정, 쉰 번이나 이름을 바꿔가며 혁명을 배우고 선전하던 시절, 수감과 탈출, 베트남의 초대 주석에 올라 분열을 일삼던 동지들을 화해시키고 영감을 불어넣는 모습.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된 뒤에도 '아저씨'라 불릴 정도로 검소한 옷차림과 소박한 말투와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베트남 인민들의 '호 아저씨'.

이렇듯 호치민은 헌신적인 공산주의자이자 민족 독립을 열망한 민족주의자였으며, 국제정치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듀이커는 그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 베이징, 워싱턴과 끈질기게 협상함과 동시에 냉전 체제하의 이들 강대국의 반목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던 호치민의 전략을 충분한 자료를 토대로 세밀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이제 그가 죽은 지 30여 년이 지났고, 조국 베트남도 새로운 사회체제의 시험 속에 있지만 <호치민 평전>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갸날픈 몸매와 긴 턱수염이 오늘의 세계정치 상황과 자꾸만 '오버랩'되는 것은 필자만의 감상일까?

'천년고도' 바그다드의 점령군으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맘껏 누리고 있는 미국의 현재의 모습은 혹 30년 전 인도차이나 반도의 한 모퉁이에서 상처받았던 지난날의 역사에 대한 보복은 아닐까?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는 다소 '진부한' 역사의 교훈을 무시한다면 말이다.

아마도 미국이나 미국인들에게 비친 호치민의 모습은 이 책의 지은이인 듀이커의 시선만큼이나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 당혹스러움이 다음과 같은 그들의 헌사로 나타나는 것이리라.

1969년 9월 호치민이 죽었을 때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민족지도자 가운데 그만큼 오래 적의 총구 앞에서 버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쓴 것은 헌사일까 자기위안일까? 호치민에 관한 또다른 전기를 쓴 바 있는 미국인 찰스 펜 또한 리비우스가 영웅 한니발에게 바친 묘비명을 다시 호치민에게 바치고 있다.

"그의 강철의지 앞에서는 높은 산도 몸을 낮춘다."

호치민 평전

윌리엄 J. 듀이커 지음, 정영목 옮김, 푸른숲(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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