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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악수를 나누는 전.현 대통령 부부
지난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악수를 나누는 전.현 대통령 부부 ⓒ 김재홍
김 정부는 한미동맹 관계나 한미일 공조체제도 중시했지만 북한과의 조율을 위한 비선 라인을 적절히 유지했다. 이런 대북정책으로 김 정부는 국내외 비판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 대신 얻은 것이 남북관계의 신뢰였다. 서울과 평양의 남북대화 축이 한미관계나 북미관계보다 실질적으로 우위에 있었다고 평가된다.

미국은 남북관계보다 한미동맹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또 북한은 남북대화보다도 미국과의 평화협상에 더 무게를 두고 추구해 왔다. 그러다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의 제1항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원칙'으로 남북대화 우위가 규정됐다. 김 정부 임기 동안엔 그런 6.15선언의 취지가 지켜졌다. 그것이 노무현 정부 들어서 거꾸로 바뀌어가는 모습이다.

한미동맹이 남북관계보다 우선시되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처음엔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협상에서 '중재역할'을 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미 조지 부시 행정부는 한국이 미국과 함께 북한의 핵의혹에 대처하지 않고 중재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대통령직 인수위 업무로 눈코 뜰새 없던 윤영관 위원팀이 급거 워싱턴에 갔다. 새 정부와 미 부시 행정부간 정책조율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노, 투명성 앞세워 대북송금 특검법 전격 수용...북한 동교동계 발끈

노 정부 출범 후엔 윤 외교부장관이 부시 행정부가 제시한 북 핵문제 논의를 위한 다자회의를 공개 지지했다. 이는 핵 문제에 관한한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고수해온 북한 입장에 반대한 결과다. 중재한다는 자세에서 미국과 함께 하는 정책으로 명백하게 선회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에 대해 지지를 선언하고 파병결정을 내린 것도 한미동맹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서약 의미가 크다. 이라크전 파병결정도 그렇지만 한미동맹 중시는 실용주의에 따른 것이다.

노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라크전 반대 평화운동에 앞장섰을 게 틀림없다고 믿는다. 역시 최고 국정책임자의 행위규범은 일반인과 다를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해주는 예다.

그는 정부 출범 후에도 개혁의지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조절은 있지만 원칙의 포기는 없다고 했다. 언론과의 관계에서 '긴장'을 강조하는 것도 그 한 이유로 해석된다. 그런 가운데서 유독 외교에서는 실용주의 요소를 대폭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것은 미국에 할 말은 하면서 떳떳한 대등관계를 확립하겠다던 초심을 수정했다는 뜻일 것이다.

노 정부가 김 정부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 계기는 한나라당의 대북송금 특검법 요구를 수용한 조치였다. 남북대화가 평화 유지의 최선책이라고 보고 투명성보다도 비공개주의를 지켰던 김 정부와 차별화한 것이다.

특검법은 큰 폭으로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찬성의 논리는 갈린다. 하나는 대북 비밀송금을 철저히 파헤치고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로 김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비판적인 층이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비밀송금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국열분란으로 치닫기 때문에 그것을 최종적으로 정리해줄 수 있는 권위가 사법부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특검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노 대통령은 첫 번째에 가까운 한나라당의 특검법안을 원안 그대로 공포했다. 그는 민주당의 의원총회가 절대다수 의사로 반대를 결의했고 국무회의에서도 거의 모든 장관들이 남북관계 손상을 우려하며 반대했지만 그런 결단을 내렸다.

시대와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5년전의 대북정책 이행과정을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큰 방향과 목표는 동일해도 정책 실천을 위한 방법이 개선되지 않으면 먹히지 않는다. 정책에도 내성(耐性)이 생겨서 국민 지지를 받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중 어느 것이 우위에 있느냐는 물음은 방법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근본적인 정책철학일 수 있다. 그런 논쟁이 국회 상임위에서 벌어졌다. 바로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차별성과 동질성에 관해 많은 시사점을 읽을 수 있는 광경이었다.

15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이 윤영관 외교부 장관에게 대북정책에서 김대중 정권과 차별화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윤 장관은 "전 정부의 햇볕정책과 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추 의원은 구체적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과 남북 평화교류의 지속적 확대가 서로 상충관계인가, 아니면 병행 발전돼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는가"고 물었다.

윤장관은 이에 대해 "중장기적으로는 상호 보완관계다. 단기적으로 배치되는 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미동맹이 제대로 돼야 북한관계가 잘 풀릴 수 있다"고 답변했다. 결국 외교부 장관으로서 한미관계를 더 중시하는 것은 일종의 업무 챙기기니까 탓할 것만도 아니다. 반대로 통일부 장관이라면 남북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사.정당개혁 등 지나친 차별화로 호남 민심 동요 등 일부 부작용 초래

그러나 초심의 수정이 비단 외교에서뿐 아니라 여러 분야로 전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기반인 개혁세력 쪽에서 마찰을 느낀다고 토로한 것은 그 증거다. 그는 개혁에 대한 비판을 언급하면서 보수 세력의 저항에 대한 설득과 극복에는 자신감을 보였다. 오히려 변화와 개혁을 유도하는 쪽의 마찰과 갈등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한다고 토로했다.

자신을 지지해 온 진영에서 문제가 생겼음을 드러낸 것이다. 짐작컨대 민주당 내 신주류와 구주류의 갈등뿐 아니라 신주류 내부에서의 당 개혁을 둘러싼 이견 노출이 그렇다. 다음으로 이른바 호남민심 이탈론도 아직 실체와 진상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일단 그에겐 의외이고 실망일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신념에 차 있고 열정적인 그가 이례적으로 사기저하 증세를 보였다.

인사정책의 경우 노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가 실패한 전철을 결코 다시 밟지 않으려고 강한 개혁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김 정부의 인사는 지역편중보다도 더 좁은 '내 사람 챙기기'였다. 호남의 바닥정서가 김대중 정부의 인사정책에 비판적인 이유는 그 지역에서나마 신망받는 인재를 기용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 정부도 내각과 고위직 인사가 끝난 뒤 호남 소외론에 부닥쳤다. 정부는 고위 공무원의 출신지역별 통계를 내 보이며 지역차별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호남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특히 검찰, 경찰, 국세청, 행자부 등 이른바 권력부처에 호남배제가 심하다고 반발했다. 일반적인 통계자료가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정부측은 호남 민심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청와대의 정찬용 인사보좌관에 이어 문재인 민정수석, 김두관 행자부장관 등이 광주전남 지역에 내려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전남 신안 출신으로 민주당 신주류의 핵심인 천정배 의원은 호남 소외론은 오해이며 구기득권 정치인의 나쁜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사들은 호남 소외론에 대해 일부 그 지역 출신 의원과 언론이 퍼트리고 있다고 본다. 여론주도층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이 일반 민중차원에 전파되는 과정을 밟는 것은 정한 이치다. 아직 호남 민중에 확산되지는 않은 단계일 것이다.

한국 민중의식과 개혁노선의 본고장이랄 수 있는 호남 민중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한다. 나는 그들이 개혁정권인 노 정부의 인사에 대해 개혁성보다도 지역균형 여부를 잣대로 비판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주의 역사의식과 정치적 선택은 위대했음이 수차 입증됐다. 지난해 민주당 국민경선에서의 선택과 대선 승리를 위한 집중이 그 중 하나다. 이제 새로운 시대정신의 창출과 개혁정치의 실천을 위한 집중이 요구되고 있다. 나는 호남의 민중의식이 그 견인차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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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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